정월 대보름 날의 기억 [13] 고향 흔적
우리에게 남아있는 몇 안되는 명절 중의 하나가 된 정월 대보름 날.
대 보름 명절은 초 하루부터 시작된 정초 명절이 끝나는 날이기도 하다.
우리 기억엔 어려웠던 시절 어머니께서 정성들여 모아 두셨던 오곡으로
(쌀.보리.콩.조.기장)전날부터 준비하시어 오곡밥을 지어 주셨고,
보름날 말려 두었던 피마자 잎(아주까리 잎)을 삶으셔서 아침에 피마자
잎나물과 함께 쌈을 싸서 먹으면 봄에 꿩알을 잘 줍는다는 이야기에
입이 찢어지도록 쌈을 싸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피마자 잎으로 쌈을 많이 먹어 설사를 한 추억도 있고,어느 해인가
봄 따뜻한 날 동생들과 뒷 동산에 오르다가 묘소가 있는 소나무 숲에서
후닥닥 놀라 날아가는 꿩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으나, 꿩이 날라갔던
풀섶에서 옅은 누르스레한 꿩알 2개를 주워 보았던 기억도 난다.
보름 아침에 가족이 둘러앉아 오곡밥과 준비한 여러 가지 만든 나물로
아침을 먹으며, 생선을 먹지않으면 비리가 오른다고 하여 장날 또는
고기 행상하시는 분으로부터 곡식을 주고 교환한 갈치를 굽거나,
무를 썰어 만드신 갈치매운탕을 꼭 먹어었다. 그리고 “귀밝이 술
[명이주(明耳酒)을 먹어야 귀가 밝아진다”고 하시면서 집에서 담으셨던
노랑 청주를 데우지 말고 조금씩 마시게 하시기도 했다.
또한 밤이나 호두를 준비하시어 나이대로 이빨로 깨물며 올한해
부스럼(피부병)이 나지 않도록 빌으라고 말씀하셨다.이것이
“부럼깨기“이다. 이 풍습이 아직 남아 전래되고 있다. 보름 날은 하루에
세집 이상의 것을 먹어야 그 해 운이 좋다고 해서 집집마다 서로 나눠어
먹기도 했지만,아침 일찍 세집이상 밥 얻으려 가면 이웃집
아주머니께서 오곡밥을 주셨던 기억이 난다.
하루에 밥 9끼를 먹어야 좋다고 한데서 유래 되었을것이다.
배가 고팠던 시절이었지만 이 날 만은 배부르게 먹기도 했다.
철 모르고 지냈던 어린시절이다.
보름 날 오후가 되면 동네 청년들의 중심으로 달집 짖을 생소나무
3그루를 구해 마을 앞 넓은 마당(논)으로, 그 사의에 생 대나무,
생 소나무 가지,짚등 썩어 움집 지붕모양 삼각형으로 뾰족하게 짖고
달집 문은 달이 뜨는 동쪽을 향하도록 만들었다. 달집에는 불이 잘 붙도록
한가운데 짚뭇으로 심을 박고 나무 사의에 생대나무, 소나무 가지등을
넣어 폭죽 효과(대나무 터지는 푹푹 하는 소리)를 낸다.
달집은 달이 솟아 오르는 순간에 불을 붙여 태우는데 달집에 맨 먼저
불이 붙이는 사람은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로 마을에서 아들 낳지못한
사람들의 치열한 경쟁을 하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은 달집에 소원을
글로 써서 달기도 하고 태우기 전후에 달집을 보고 합창하며 자기의
소원을 빌기도 하고 횡액을 불에 실어 보내기도 하였다.또한 달집
위에는 액막이가 된다하여 주소, 성명을 쓴 연을 함께 태우기도 했고,
달집 태운 불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다리미(주물로 만든 숯불 넣어
옷 다리는 다리미)에 콩이나 쌀을 볶아 먹으면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 풍습이 있었다.
나 어릴 때 머리에 부스럼이 많아 바위에 난 바위손(학명은?.바위 위에
자란 이끼 종류 풀)을 따다 끊여 고와서 머리에 부쳤던 기억이 있다.
지금 내 머리에 그때 생긴 흉터들이 있는 것 보면 부모님께서
무척 걱정 하셨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때 쯤이면 윗 동네 아랫 동내 아이들이 꽝통에 여러 구멍을 내어
숯불을 넣어 돌리면 동심원을 그리며 쥐불놀이를 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귀하던 꽝통은 이 놀이를 위해 구해지면 잘 보관했다가 사용하기도했다.
이제 추억으로 남는 정월 대보름 날이지만 전국 각 곳에서 달집
태우기등 옛 대보름 행사가 명맥을 유지되고 있음은 반가운 일이다.
정월 대보름 날. 오곡 밥,부럼깨기,귀 밝이 술, 달집 태우기등 행사가
가정에서, 지역에서 최근까지 전승됨과 유지 됨은 우리 문화가 계속
유지 발전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며, 이날의 옛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기억되여 다행한 추억이기도 하다.
정월 대보름 달 집 태우기
쥐 불 놀 이 풍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