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릴 때 동네 아이들과 함께 줄을 서가며 책보따리,
도시락들고 노래 부르고, 동네 형님 구령에 따라 하나.둘
발마쳐가며 학교가던 초등학교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단기4285년(서기1952년)3.25일에
졸업했으니 벌써 54년이 지났으며, 그 이전인 1940년대 후반쯤
학교 다닐 때의 이야기와 생활모습 들이기도 하다. 그 때는 무척
가난해서 어려울 시절이였다. 가난했지만 정겹던 그 시절,
지금도 잊어지지 않는 고향 향수가 많다.
우리가 자랄 때 신발은 짚신(조리:짚으로 만든 신발)을
삼아 신고다녔으며 우리도 짚신을 직접 삼아 신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변해 그 후 신발은 검정 고무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장날 닭이나 곡식을 가져 가셔서 장에서 팔아
검정 고무신을 사 오시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초등학교 다닐 때 신고 다닌 신발이지만 아껴 신는 다며,
포장 안된 자갈길(비 포장 도로)에 손에 고무신을 벗어들고
다니기도 했읍니다.발이 아프면 길 가운데 많이 다녔던 다져진
부분에 맨발로 걷기도 했지만, 발가락을 돌에 채여 피가 나면
치료로 낳을때까지 옥도정기(바르는 빨간 물약으로서
그때 귀했던 약:민간요법으로 상처에 된장을 바르기도 했음)를
구하여 상처에 바를 정도였읍니다.
책은 남녀 학생 구별없이 책보따리(보자기)에 쌓아 허리나 등에
메고 다녔으며, 양손이 자유스러워 달음박질 하기도 좋았고
활동하기에도 편리하였습니다.
하교길에 우마차를 만나면
“ 아져씨 우마차(구르마:일본말):그때는 그렇게 불렀었다)
좀 태워 주세요” 하면 마음씨 고운 아져씨는 태워 주시기도 했지만
같이 가는 동네 학생이 많으면 탈수가 없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처음 다녔던 학교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학교 였습니다.
처음 입학할 당시에는 본교가 아닌 간이학교에 다녔으며,
학교에서 가끔 나눠워 주는큰 눈깔사탕(애미다마;일본말])은
당분 습취가 어려운 그때는 참 달고 맛이 있었지요.그 후 간이학교는
폐교되고 본교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지금 간혹 큰 알사탕이나
박하사탕을 보게되면 그 향수가 남아있어 먹어 보기도 합니다.
학교 점심 시간도 되기 전 밖에 나갔다 오면
도시락 누가 꺼내어 먹을 것 같아 가끔 확인하는 알루미늄
사각 도시락(밥.찬은김치,가지나물등).
그때는 남의 도시락을 몰래 먹었던 일도 있었읍니다.
책과 도시락을 함께 넣어 김치 국물이 흘러 냄새가 나고 벌겋게
물던 책과 공책들을 가지고 다니던 추억.떠들고 장난하다가
선생님에게 들켜 누구나 한번 정도 겪어봤던 복도에서
의자들고 벌서기.도시락,밤.찐쌀,쑥덕.감등 준비하여 30여리
(12KM) 걸어서 갔던 봄. 가을의 즐거운 원족(遠足:지금의소풍).
추운 겨울이면 교실 난방 난로용 솔방울 줍기로 반 친구들과 함께
학교 뒷산에 올라 솔방울 줍던 일. 학교 갈 때 교실 난방하기 위해
집에서 장작5-6개를 새끼로 묶어 가져 갔던 일.나무로 된 책걸상.
물 걸레로 교실 마루바닥 닦으며 청소하던 일.
“누구하고 누구하고 그렇고 그렇다“하며 놀리던 철없을 때의
친구들의 모습등이 생각나지 않은가요?
우리학교 다닐 때 학교 숙직( 토요일?)은 마을별로 한조씩 만들어
학생들이 학교 숙직실에서 하루밤을 보내기도 하고(숙직) 밤에
교내합동으로 순찰도 했읍니다.어느 추운 겨울 숙직하는 밤이였다.
그날은 갑자기 바람이 많이 불었지요. 숙직실 옆에 학교 변소가
있었는데 강한 바람으로 인하여 변소 문이 잠기지 않아
“쾅쾅 드르럭 우당탕 쾅쾅” 하며 변소 문이 부서지는 소리에
겁이나고 무서웠읍니다.그 때는 밤에 귀신이 나온다고 했으며
짐승도 산에서 내려온다고 하여 무서워 밖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전기도 없어 등잔불을 켜 놓고 공부하던 시절이 였습니다.
아무도 무서워서 변소 문을 닫거나 용변 보러 갈수가 없었읍니다.
서로 떠 넘기기만 하고, 새벽쯤 되어 숙직실 안에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무서워서 모두 엉쿠리고 누워 코를 막고
그냥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람이 그치고 날이 밝아져
아침이 되어, 집으로 오는 길에 “ㅇㅇ야! 너 똥 쌋지”하고
다구쳐 물었지요? 조금 있다가 하는 대답이 “조끔 그거”라고 했지요.
추운 겨울 아침에 길에서 함께 오던 학생들의 깔깔 웃는
웃음소리가 진동 했읍니다.또 이어 개살궂은 친구가 지금 당장
“개울에서 씻어라”라고 했더니 그 추운 겨울 아침에 길옆 개울의
흐르는 차거운 물에 엉덩이 씻던 그때 모습이 생생하기도 합니다.
오래 전에 먼 곳으로 떠나고 말았지만 마음 아프기도하며
가끔 생각나기도 합니다.
이 모두가 어릴적 학창시절의 추억이기도 합니다.
함께 다니던 학교는 폐교 된지도 오래 되었으나 그때 학교의
조그만한 건물 일부가 폐허된 채 그 자리에 남아 있어 학교
다닐 때의 추억도 새롭지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일부 흔적
때문에 고향가서 볼 때마다 묘한 갈등을 부르기도b 합니다.
왜 철거라도 하지 않은지?.
이 이야기들을 기억해 보면 초등학교 때의 바보스런 내 모습
같기도 합니다. 우리학교 다니던 때가 생각나 초등학교 동창모임
청칠회(淸七會) 라는 모임을 한지 24년이 되어 한달에 한번
(매월 2째주 일요일)씩 부산.마산에서 월레회를 가지며
옜 이야기도 나누면서 정답게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허물없고 아무 일없이 순수한 어릴 때
마음으로 만나고 있으며 오래전부터 아내들도 함께 모여
이야기 하며 즐기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