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학봉 도쿄 특파원 입력 : 2013.06.10 03:04
차학봉 도쿄 특파원
도대체 어떤 곳에서 노후를 보내야 하나."
고령화 대국(高齡化大國) 일본에는 노인 복지시설 종류가 10개가
넘다 보니 선택의 고민에 빠진 노인에게 컨설팅해주는
업체까지 등장했다. 특별 양호 노인 홈, 간병 요양형 의료 시설,
케어하우스, 고령자용 공공 임대주택, 서비스 제공 고령자 주택,
간병 유료 노인 홈, 치매 대응형 공동생활 간병 시설,
시니어 전용 아파트….
건강 상태는 물론 재정 형편, 성격까지 고려해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노인 복지시설 종류가 늘어난 것이다. 가령 부유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원할 경우에는 주택형 유료 노인 홈에, 24시간 간병이 필요하고
재정적 여력이 없다면 특별 양호 노인 홈에 입주하는 식이다.
특별 양호 노인 홈은 간병 보험이 적용돼 비용이 저렴하지만,
입소 자격이 까다롭다. 대기자가 많아 지역에 따라
입주에 1~2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임종을 맞을 곳을 찾지 못해 떠돈다는 뜻의
'미도리 난민'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녹색이라는 뜻의 '미도리'는 노인을 의미한다.
죽은 지 며칠 지나 발견되는 고립사(孤立死)가
연간 3만건이 넘는 일본의 현실을 감안하면
임종 난민(臨終難民) 문제는 결코 과장된 것은 아니다.
복지시설이 수익성 문제 때문에 대규모 수용을 원칙으로
하는 데 따른 부작용을 우려한 시민 단체들이 일반 가정집 등을
활용한 시설도 만들고 있다. 5~6명 정도가 가정적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는 소규모 시설로, 간병인이 24시간 상주한다.
간병인의 노인 학대, 화재에 따른 집단 사망 사건 등 대규모
시설의 짙은 그늘이 드러나면서 대안 시설로 주목받고 있다.
노인과 젊은이가 함께 사는 '세대 공존(世代共存)형 하우스'라는
것도 있다. 젊은이들은 임대료가 저렴한 집에 사는
대신 노인들과 교류하는 조건이다.
고도성장기에는 어린이와 젊은이 시설이 태부족이었지만,
고령화 시대는 정반대이다. 일본의 보육 시설 대기 아동이
전국적으로 2만5000명으로 감소했지만, 노인 복지시설
대기자는 40만명을 넘는다. 85세 이상 노인의 40%가
치매 환자라는 조사 결과도 있는 만큼, 노인 시설 수요는
향후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
한정된 재원 때문에 무작정 시설을 지을 수도 없어 일본 정부는
본인이 거주하는 집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24시간 간병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이를 위해 식사·목욕·건강체크가 가능한
'데이 서비스 센터'가 동네마다 들어서고 있다.
건강한 노인들이 이웃의 병약한 노인을 간병해주는 '노노(老老)
지원 시스템'도 도입 중이다. 노인에게 일자리도 제공하고
부족한 시설을 보완할 수 있다. 집에서 지내다 건강 상태가
나빠지면 단기간 입소, 간병을 받다가 퇴원하는 시설도
늘어나고 있다. 일본 정부는 IT를 활용, 집에서
정기적으로 건강을 점검받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집중 연구 중이다.
인구 성장기 일본도 한국처럼 주택은 일종의 재테크 수단이었다.
하지만 본격적 고령화 시대를 맞아 주택에 건강한 노후와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는 곳이라는 의미가 더해지고 있다. 한국도 공급
위주 주택 정책에서 탈피, 노인이 안심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주택을 정책화할 시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