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위기가 닥치면 단결해서 극복하는 데는 뛰어나다.
마치 끓는 물이 담긴 냄비(pot)에 던져진 개구리가
재빨리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쇼크(충격)나
위기가 없어도 잘 대응하는지 의문이다.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와 같이 냄비 밖으로 뛰어나가지 않는 것이다.
"최근 '제2차 한국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를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로 묘사한
리처드 돕스 매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 소장은 한국이 당면한 문제로
'위기 불감증'을 꼽았다. 지난 23일 서울 수하동 센터원빌딩 20층 매킨지
서울 사무소에서 만난 돕스 소장은 "IMF 외환 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에서
보듯이 밖(외국)에서 볼 때 한국은 위기가 오면잘 단결한다는
인상을 준다"며 "그렇지만 안(한국 내)에서 보면 위기가 닥쳐야만
단결하고 움직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영국인인
돕스 소장은 지난 6년간 한국에 거주하면서한국 경제를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는 "한국이 눈에 보이는 위기를 맞지 않더라도 정치권이고 노사(勞使)고,
함께 경제문제를 토론하고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돕스 소장은 최근 미국의 외교 전문 매체인 포린폴리시
(Foreign Policy)에 한국 경제의 성장 정체 현상을 경고하는
기고문 '멈춰버린 기적(Stalled Miracle)'을 실었다.
그는 한국 경제의 보이지 않는 위기의 근원으로
'기존 성공 공식이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을 들었다.
그는 "한국에서 수출 제조업이 더 이상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고, 국민의 생활수준을 높이지
못하고 있다"며 "수출 제조업 외에 성장을 이끌 축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돕스 소장은 한국인의 위기의식이 경제문제에 집중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북핵 문제보다는 경제성장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며 조국 영국의 경험을 들었다.
"영국은 1970년대에 소련의 핵무기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노사문제 등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 1970년대 말 대처 총리가 들어오면서 경제의
구조적 문제, 낮아진 생산성 등에 국민이 관심을 갖게 됐다.
북핵 리스크는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이슈지만 핵무기
사용은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일어나기 쉽지 않은 일이다.
과거 영국 경험으로 볼 때 초점은 국가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 맞춰야 한다."
돕스 소장은 그런데도 한국이 기존 성장 전략을 쓴다면
세계경제가 회복되더라도 한국 경제가 과거와 같은 4~5%
성장세로 회복되기는 어렵다고 봤다. 그는 "앞으로 세계경제가
나아져도 미국·유럽 등 선진 시장은 저성장하고 신흥 시장은
고성장하는 등 세계시장의 성장세는 양극화될 것"이라며
"지금처럼 한국이 미국, 유럽에 대한 수출을 주로 하는 제조업
중심 경제를 유지한다면 저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저성장에서 벗어나려면 신흥 시장
수출을 늘리고 서비스업을 활성화하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돕스 소장은 한국 경제가 서서히 뜨거워지는 냄비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으로 '중산층 부활'을 들었다.
그는 "당장 소비 주체인 중산층의 가계 부채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며 "중산층에게 저금리 장기 모기지론(주택 담보대출)을
제공하는 동시에 은행의 LTV(주택 담보 비율)를 높여 고금리
제2금융권 대출을 저금리 은행 대출로 갈아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처드 돕스 소장은 지난 23일 인터뷰에서“‘서서히 뜨거워지는 물 속의 개구리’와 같은
상태인 한국 경제가 활로를 찾기 위해선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만들어 다양한
이해집단이 토론을 통해 당장 어떤 행동에 나설지 아이디어를 합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명원 기자
장기적으론 서비스업을 육성해 과거 제조업이 만들었던
괜찮은 일자리를 서비스업에서도 만들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돕스 소장은 "한국은 스마트폰, TV, 반도체,
철강 등에서 세계 최고 제조업을 만들어 냈다"며
"앞으론 제조업의 성공 전략을 서비스 분야에도
반복 적용해서 경쟁력 있는 서비스산업을 육성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돕스 소장은 최근의 엔저(低)가 한국 수출 제조업이 더는
원화 약세의 이점에 기대기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시켜줬다고
했다.그는 "한국 기업은 엔저 시대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술 개발을 하고, 안정적 부품 공급처를 확보해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선 G20(주요 20개국) 회의에서 (일본 등의) 대규모
평가절하에 항의하고, 재정 정책 완화 등으로 대응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돕스 소장은 "한국 경제 입장에선 앞으로 10년이 매우
중요하다"며 "한국 경제를 가까이서 지켜본 경험으론 한국이
위기 때 보였던 역동성을 지금이라도 발휘해 단결하고
아이디어를 모은다면 반드시 서서히 뜨거워지는
냄비에서 뛰어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