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출신으로 김일성종합대학 연구사인 리평의 아내였으나
어느 날 갑자기 김정일의 눈에 띄어 남편과 헤어져 최고권력자의
정부(情婦)로 살아야 했던 성혜림. 정식 부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아들도 빼앗긴 성혜림을 두고, 성일기 씨는 말합니다.
“그런 지경인데, 정신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겠나.
김정일이 남의 마누라를 빼앗아 취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북한에서는 (마음놓고) 결혼할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지금 프랑스 파리에 망명해 살고 있는 동생 성혜랑도 모스크바에서
성혜림과 있을 때 한번 만났을 뿐, 이후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성일기씨는 조카인 이한영과 만났을 때의 이야기도 들려줬습니다.
성격이 적극적이었던 이한영에게 “너무 까불고 다니지 말라”고
외삼촌이 조언하자, 그는 “메뚜기도 한 철이다”라고
맞받았다는 겁니다.
그가 암살당한 후, 성일기씨는 동생 혜랑을 모스크바에서 만났다고
합니다. 동생은 “한국에서 한 짓”이라고 믿고 있었더랍니다.
“이 바보야, 너를 유인하려고 해도 아들이 살아있어야 너를
유인할텐데, 한국이 왜 그 아이를 죽이겠느냐.”
그제서야 성혜랑은 사태를 짐작했다고 합니다.
“이념? 다 쓰잘데기 없는 것”
그에게 대체 ‘이념’이 무엇이냐 묻자,
그는 “다 쓰잘데기 없는 것. 다 쓰잘데기 없는 것”이라고
두번 말했습니다. 이데올로기가 가족을 분해하고,
삶을 분해하는 경우를 우리는 꽤 여러번 보아 왔습니다.
그러나 성씨 가족의 경우처럼, 이렇게 3대에 걸쳐 수난이
이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부모의 ‘사상적 허영(虛榮)’은 멀쩡한 아들을 빨치산으로,
어여쁜 딸을 권력자의 정부로 만들었고, 그 자식의 자식들은
유랑하거나 암살을 당하게 했습니다. 그 수난의 가운데서
사건을 목격한 성일기 씨야말로‘사상의 쓰잘데기 없음’을
실증으로, 온 몸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소원을 물었습니다. 부모의 산소를 가보고 싶다거나,
여동생을 보고 싶다거나, 창녕에서 살던 유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얘기할 줄 알았습니다.
“남자라면 죽음 앞에 떳떳해야 하는데 그건 어려울 것 같다.
이제는 그저 조용히 세상을 떠나는 게 소원이다.”
이 양반,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허무로 덮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녹화를 마치고 성씨에게 악수를 청했습니다.
그가 왼손을 내밀었습니다. “언제 기회가 되면 다시 보자”고
하시더군요. 저 역시 그를 더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그에게 더 물을 것이
많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번 더 기회가 생긴다면, 질문자는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었으면 합니다. 이른바 ‘리무진 리버럴’
‘캐비어 좌파’ ‘강단 좌파’로 불리는 이들이 이 양반과
한번쯤 깊은 얘기를 나눠보면 어떨까 합니다.
그들은 원치 않을까요?
출처: waple chosun.com./wapl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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