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미국에선 자고 일어나면 압류된 주택들이 쏟아져나왔다.
빚에 몰린 사람들은 뉴욕의 부자 동네 롱아일랜드에서도
집을 잃고 노숙자 쉼터로 들어갔다.
한편에선 압류된 집들을 구경시키면서 파는
'포클로저(압류) 투어'라는 마케팅 상품도 등장했다.
한때 미국 은행들이 압류한 주택 수는 700만채를 넘었다.
당시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주택 압류 사태가 일어나지 않은 이유로
두 가지가 꼽혔다. 미국에선 집으로 진 빚은 주택만 던지면 월급 등이
압류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보다는 상대적으로 쉽게 집을 포기할 수 있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집을 잃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일해서 이자를 갚아 나간다는 것이다.
최근 하우스푸어 문제가 부각되고 있지만
한국에서 주택 압류 사태가 본격화되지 않는 것은
주택담보대출 비율(LTV) 규제 등 당국의 선제적 조치 이외에도
빚과 집에 대한 한국인 특유의 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현재 하우스푸어 대책이 먹히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은행이 2개월 미만 연체한 주택 담보대출자를 대상으로
지난해 7월 실시한 '신탁 후 임대' 프로그램 대상자는 725명이었다.
이 은행의 전체 주택 담보대출자 46만명 중 0.16%다.
이 가운데 3명만 이 프로그램을 신청했을 뿐이다.
이 프로그램은 살던 집에서 계속 저렴하게 살면서
3~5년 뒤 빚을 상환하면 집을 우선적으로 돌려받을 수
있지만, 대출자들은 집을 일단 은행에 넘기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이자가 한 달이라도 밀린 집주인에게
집을 잃을 수도 있다고 통보하면 대부분
집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원리금을 갚는다.
하우스푸어 대책의 핵심은 빚을 깎아주는 대가로
지분을 넘기고 손실을 분담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하우스푸어들은 빚에 쪼들려도
집을 내놓기 싫어하고, 부득이 집을 내놓는 경우도
손해 보면서 팔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우스푸어 대책이 약발이 듣는 것은 고사하고
아예 시작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당국이 정말 가계 부채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을 위한
대책을 내놓으려면 우선 '하우스푸어'라는 용어를 버려야 한다.
하우스푸어에는 너무 다양한 계층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강북의 세입자가 낸 세금으로 강남의 하우스푸어를
구제할 수는 없다. 하우스푸어 대부분은 여전히 자기 집에
대한 타당한 욕망과 자기 셈법을 갖고 있다.
이는 시장에서 해결될 수 있을 뿐이다.
정부는 집값 및 소득 안정 대책을 통해 거시적으로
이런 사람을 뒷받침하면 된다.
정부 구제가 시급한 쪽은 집이 있든 없든 관계없이
감당할 수 없는 빚으로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다.
사회안전망이 담아내지 못한, 생존을 위해 빚을 진 사람,
사업을 하다가 실패해 집이 빚에 잠긴 사람을 위해
채권 금융기관과 감독 당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
하우스푸어가 아니라 악성 가계 부채에 몰린 사람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 지원해야 할 대상도 분명해지고,
사회적 합의도 훨씬 쉽게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waple club - view
blog.choseu.com/waple club
와플(Waple)은 현명한 사람(Wise People)을 의미합니다
현명한 사람(Wise People)회원님께 드리는 '와플레터' 서비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