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가 늘수록 표정은 굳어진다. 20여 개 안면 근육의 잔
움직임이 줄어든 탓이다. 자신은 미소 짓는 표정이라고 생각하지만
근육의 경직으로 뜻한 바 표정이 섬세하게 나오지 않는다.
표정의 디테일 감소로 괜스레 무뚝뚝한 인물로 비칠 수 있다.
본인은 원래 따스한 사람인데도 말이다.
시력의 저하는 많은 것을 놓치게 한다. 멀리서 다가오는 지인의
반가운 눈인사를 무시하는 사람이 된다. 다정한 나를 봤음 직한
거리에서도 모른 체하는 무심한 인간을 만든다.
노년의 시각(視覺)은 화려한 색에 불안감을 느낀다.
무채색에 안정감을 느끼니 회색과
검은색 옷만 선호하게 된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전체적인 인상이 다소 어둡고 보수적으로
비칠 수 있다.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하고 화려한 옷차림은
그들에게 시각적으로 산만하고 불편하며 불안감을 유발할 수 있다.
이처럼 의학적인 이유로 장년 세대는 젊은 세대와 어긋나고
충돌하기 쉽다. 그 갈등과 시비의 현장이 지하철이고,
시청광장이며, 종로다.
왕성한 활동으로 근육을 단련하지 않으면 금세 근육량이 줄고
근섬유 위축이 온다. 지난한 삶을 지탱해온 노년기의 관절은 닳고
닳아서 강도 높은 하체 운동을 하기 어렵다. 다리 운동 부족은
골 소실을 불러서 골다공증이 오게 한다. 이로 인해 근육의 지구력이
떨어져 오래 서 있기 힘들어진다. 버스와 지하철의 노인석은
공경의 배려이기도 하지만 의학적 처방전이다. 노년에는 팔과 손
근육 움직임의 조화로움도 무뎌져 무언가를 쉽게 떨어뜨리고
흘리게 된다. 옷에 음식물이 묻어 냄새가 배곤 한다.
침샘의 노화로 타액의 분비도 줄어 웬만큼 깔끔하지 않으면
입 냄새가 나기도 쉽다. 노년의 불편한 진실이다.
장년과 청년 세대가 서로 불편하고 탐탁지 않아 하는 것들을
의학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젊은 세대가 나이 든 세대의 신체 변화를 안다면 그들의 세계를
한결 더 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갈수록 출산 연령이
늦어지면서 연대기적 세대 차이는 점점 길어지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과 젊은 세대들에게 '노인 의학'을 가르쳐야 한다.
골다공증이 왜 생기는지를 소년 소녀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그게 세대 차이를 줄이는 시작이다.
장년 세대는 청년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미래'를 이미 겪었다.
이제는 스스로의 노화 현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알게 모르게
자신에게 찾아오는 육체 변화가 세대 갈등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리고 아래 세대는 위 세대의 몸을 이해하고,
위 세대는 아래 세대의 정신을 이해하는 교집합이 커진다면
'신·구 세대 갈등'은 확연히 줄 것이다. 많은 이들이 고령사회를
걱정하지만 나는 낙관적이다. 우리 사회에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생태계의 원리가 항상 작동한다고 믿는다.
출처: /waple club -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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