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청우(靑宇)이다.어려서 부터 문학에 남다른 소질이 있어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여 양주동(梁柱東)같은 유수한 선생들과 학연을 맺으면서 문학에의 원대한 포부를 안고 청년기를 맞았다.6.25전쟁 중에는 피난지 부산에서대학을 졸업하고 전시체제의 경남지구 계엄사령부 민사부에 봉작하면서 인생관을 넓히게 되고 또 폭 넓은 대인관계를 펼치게 된다.휴전 후 선친인 우당공 최갑환(崔甲煥)이 5대 국회에 진출하자 선친의 의정 활동을 보좌하면서 정치에 입문하였다.그러나 대학시절에 연마한 문학에의 의욕은 식지않아 경기여지대학에 국문학 강사로 출강하는 등 문학활동도 쉬지 않았다. 선친인 우당공이 51살에 급사하자 어려운 생활현실에 직면하였으나, 원레 타고난 성품이 밝고 적극적이며 긍정적이었기 때문에 어려운 현실을 슬기롭게 타개하면서 세로운 세계에 도전해 나갔다. 모교인 동국대학교 학생처장 봉직 때 전국 대학생 대표 파월장병 위문단장으로 위문단을 인솔하여 다녀오는등 학생들과 고락을 함께 하였으며 건설공제조합 이사장과 대한 건설협회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넓고 깊은 식견을 갗추어 나갔다. 이를 바탕하여 선친의 지역구 였던 고향(고성)에서 8대 국회 의원으로 진출하였다.정국의 전환으로 나라가 새로은 국면을 맞게 되는 등 예기치 못했던 파란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천부적인 감각과 기량으로 대응 극복하고 4선을 거치면서 한국정계에 확고 부동한 중진으로 부상하였다.국회경제과학위원장. 한국국민당 부총재. 신민주공화당 부총재.민주자유단 상임고문.신한국당 상임 고문등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한일의원 연맹 부회장과 한일 협력 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외교에 많은 업적을 쌓았으며 체육계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대한농구협회 부회장과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역임 하면서 한국 체육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 중 21회 몬트리올 올림픽 대회에 선수 단장으로 참가하여 올림픽 사상 처음 금메달을 따는 쾌거로 국위를 선양하여 체육훈장 맹호장에 서훈되었다. 동국대학교 7-10대 총 동창회장을 맡아 운영해 오면서 지역동창회를 설치 하는 등 동창회를 조직화 하고 모교발전에 전력하여 모든 동국인 (東國人)들로부터 추앙을 받았으며, 이 후 동국학원 이사에 선임되고 총동창회 명예회장을 거쳐 고문으로 추대되었으며 모교에서 명예문학 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 한국산업은행 이사장을 마지막으로 오랜 공직 생활을 마감하였다. 그 동안 여러 곳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 청우문집(靑牛文集)인 「나의 문학과 정치」를 펴 내면서 자서(自序)에서 “ 이제 청운의 잎을 떨구어 버린 나목(裸木) 같은 본래 면목의 인생으로 서 있다.“ 라고 하였다.(靑牛碑文, 최재혁) (주)최재구(崔載九): 통덕랑공 최흥호의 후이고 우당공 최갑환(崔甲煥)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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