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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내 (Gaenea)
世德叢覽(全州崔氏 按廉使公 宗會)

주요인물(主要人物)-13)인물: 載浩 26世- [37]

by joolychoi 2013. 1. 9.

 

 

 

  

세덕총람 (世德叢覽)  

 

  8. 주요인물(主要人物)   
13) 인  물(人 物)-[37]  
재호(載浩 26世)
자는 양오(養五)이고 호는 아천(我川)이다. 통덕랑공 최흥호의후이고 우졸재공
최홍순(崔弘淳)의 증손이다. 고향인 학동(鶴洞)을 떠나 진주(晉州)에 서 터전을 잡아
생활하면서 처세는 원만하여 모나지 않아 비록 일반사람들과 다르게 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하루도 배움에서 떠난적이 없었다. 일찍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골든 주립대학에서 명예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글 시를 짓는
솜씨는 매우 뛰어 났었고 더욱 서예에 솜씨가 있었다.
 
1940년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시작으로 진주사범학교와 부산해동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진주 전분.한양 양조 사장을 역임하였다. 경남일보 사장에 취임하면서
"일본으로 부터 고속도 윤전기를 도입하게 되어 우수한 기술과 쳬제를 개선 강화하여
전통의 필연성을 증거하며 민족의 현실성을 똑바로 봄으로서 강호 애독제현의 평소의
은혜에 보답코자 한다 " 고 했다. 해인대학교 , 경남대학교 강사와 해인종합고교 등
중등학교 교사, 그리고 삼현여자중교교 교장때 집무실 책상이 옛날 전분공장 사장
시절에 쓰던 낡은 것을 그대로 쓰는 소탈하고 검소한 정신을 수범한 교육자이며
경남일보 사장시절 일본에 윤전기 구입하러 갔을 때, 그 국민의 생활상을 보고는
이국의 여창에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2치 세계대전에 패전한 일본과 독일이 재기(再起)한 공통점은 일본여성의 교양과
독일 여성의 근면에 있음을 깨닫고 귀국하여 여학교 설립의 설계를 하여 설립한
학교가삼현(三賢)여자 중. 고등학교이다. 삼현(三賢)이란 현민(賢民), 현처(賢妻).
현모(賢母)의 머리글자 셋이 모여져 지어진 이름인데 이 모두가 민족교육으로
선진여성 양성에 앞장섰던 것이다. 그리고 한편 순리와 풍류의 교육자이기도 하였다.
손수 글씨를 쓰고 시를 읊고 감격하면 울기도 잘하는 모습은 몸 전체, 생활의 전부가
그대로 풍류였다. " 책 읽는 것이 휴식이고 일하는 것이 취미 " 라고 하면서 항상 쫓기는
시간 속에서 열심히 살아온 것이 공의 삶이였으며, 그 일이란 대부분 남을 위하는
일이고 남을 즐겁게 해주는 일이었다. 지역사회 활동도 눈부시게 들났다.
문예활동으로는 한국문협 진주지부장과 한국예총 진주지부장. 한국자유교양추진
위원회 경님지도위원. 경상남도 문화위원.경상남도 문화상 심사위원을 지냈다.
개천예술제 운영위원장과 대회장을 역임하였을 때 개천예술제 대회장의 대회사에서
"모든 예술의 궁극의 목적은 착하고 아름다움에 있다고 할 때
예술운동은 하나의 인간개조 운동이다." 라고 했다.
 
공의 선친(麒煥)께서 불행하게도 일찍 불치의 병으로 거동이 불편하였기 때문에
공은 조부(夏亭憲模)의 무릅위에서 자랐으며 영원한 길을 떠나신 그 날까지 조부의
슬하에서 떨어져 본 일이 없다고 하였다. 하정공이 임종하시기 3년전 봄에 서재로 부터
귀가하여 평소에 자깅의 서상(書箱)을 가져 오라 하고는 " 대인(大人)은 수훈(垂訓)과
유서를 남겨 후세에 유익(有益)을 끼치는 것이나 범인(凡人)은 도리어 타소(唾笑)를
끼치ㅣ기 쉬운 것이니 다 태워 버려라." 는 명에 따라 뒷날 하정시집(夏亭詩集)을
만들 때 그 수백수(數百首)를 태워 버렸던 것이 애석하기 그지 없었다.
 
한편 경상남도 교육위원. 경남사학교장 회장. 진주시 교육회 회장 등 교육분야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경남체육회 고문과 재건국민운동 경상남도 지부장을
역임하여 향토체육발전과 조국근대화에 발 맞추어 국민의식 개혁운동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시조집「 비취단장(翡翠斷章)」과 번역시집인「 하정시집(夏亭詩集)
「 아천시집(我川詩集)」그리고 「 아천문집(我川文集)」이 있다.(아천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