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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내 (Gaenea)
世德叢覽(全州崔氏 按廉使公 宗會)

주요인물(主要人物)-13)인물: 載衡 26世-顥林 26世-俊林 26世-蒼林 26世 [38]

by joolychoi 2013. 1. 15.

 

 

  

세덕총람 (世德叢覽)   

 

  8. 주요인물(主要人物)   
13) 인  물(人 物)-[38]  
재형(載衡 26世)
호는 학초(鶴初)이며 어릴 때 부터 촟명하고 이채(異彩)로와 7살 때 자회(字會)를
지어 좌중을 놀라게 하였다.마산상업학교를 나와 실업게로 진출하여 금융조합
서기로 부터 유원산업(有元産業) 회장이 되기까지 천신만고와 7전 8기로 그 민완
(敏脘)을 휘둘러 사업가로서 일국에 명성을 떨쳤다.유원산업.대선소주,유원원료.
유원건설,남방개발등의 창설과 마산상공회의소 회장. 마산일보 사장.마산공고,
삼현여고, 한국기원 등의 이사장, 경남대학 이사. 경남은행 감사 등을 역임하면서
정재(淨財)를 쾌척(快擲)하여 세인의 찬탄과 숭앙을 받았다.
용모가 단정하고 외유내강한 성품으로 대담 솔직하며 근검역행(力行)하여 경제에
밝았으나 의리를 위하여는 천금도 아끼지 않았다. 효우가 지극하여 부형(父兄)의
말씀이면 조금도 어김이 없었으며 생계가 곤란한 종형제에게 일일이 분재(分財)
하였고 조선(祖先)의 일에는 거금을 독담(獨擔)하였다. 사람과 사귐에는 담담하되
독실하고 조밀하고 호탕하여 시서(詩書)와 기주(棋酒)로서 일국의 명사들과
교우하였다. 또 국내의 명산대천과 세계의 풍물을 주유역람(周遊歷覽)하고 산수에
심취하였다.만년에는 산수가경(山水佳景)한 곳에 학초재(鶴初齋)를 세워 형제일실
(兄弟一室)에서 시서자오(詩書自娛)하며 속진(俗塵)을 씻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채 타계하였다.(아천문집)
(주)최재형(崔載衡):통덕랑공 최흥호의 후이고 우졸재공 최홍순(崔弘淳)의 증손
ㅇ 호림(顥林 26世)
자는 윤직(允直)이고 호는 덕초(德樵)이다. 성품이 온화하고 재주가 명민하여
어려서 부터 독서를 좋아했다. 장성해서는 경사(經史)를 섭렵하고 학문이 뛰어나
해몽집(解蒙集) 1 권을 저술하여 당세에 이름을 떨쳤다.(세헌록)
(주)최호림(崔顥林): 충순위공 최윤재(崔潤才)의 후이고 가선공 최낙복(崔洛福)의 자
 
ㅇ 준림(俊林 26世)
자는 기언(基彦)이고 호는 봉초(鳳樵)이다. 천품이 탁월하여 지기(志氣)가
꿋꿋하고 밝았으며, 어려서 부터 효도와 우애가 아주 지극하였다.
장성해서는 여러 책을 두루 섭렵하고 글이 고아하고 통달하여 논어와 역경
공부에 더 많으 노력을 하였다. 장래를 보는 감식안이 있ㅇ어 학당을 지어 봉초(鳳樵)라
이름하고 종형인 가수공(稼수公). 덕초공(德樵公)과 학문에 대해 강론하는 등
학문과 덕행으로 향내에서 추중되었다. 유고가 있다.(세헌록)
(주)최준림(崔俊林): 충순위공 최윤재(崔潤才)의 후이고 최낙민 공(崔洛敏公)의 자
ㅇ 창림(蒼林 26世)
자는 태의(泰義)이며 찰방공 최진호의 후이고 송고공 최규경(崔圭璟)의 조카이다.
일찍 일본에 건너가서 생활의 터전을 잡았으며 전주 시조 묘소의 안내비 건립사업에
적극 참여하여 안내비신을 최채호(崔采鎬)공과 공동 헌성하고 수비일에는 현지까지
방문하여 숭조의 정신을 발휘하였다. 특히 재일교포가 출연하여 건립한 고성고등학교
(전 고성종합고등학교)의 이사장을 장기간 역임하면서 고국에 대한 애국심과
애향정신으로 2세 교육에 전념하여 조국 근대화 사업의 일익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또 안렴사공 파조의 재실을 고성군 구만면 당산으로 이전하는데
부지 200여평을 출연하는등 종중 대 소사에 협조하여 향리에서
칭찬이 자자하였다.(현지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