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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내 (Gaenea)
정약용과 목민심서로 배우는 지혜

다산 선생의 묘제(墓祭)

by joolychoi 2007.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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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금연주/티끌같은 이 마음

 

 

다산선생의 묘제(墓祭)를 마치고


1836년 음력 2월22일은 그해 양력으로는 4월7일이었습니다. 그날은 회혼(回婚)의 날, 즉 다산이 15세에 혼인하여 부부가 함께 60돌을 맞이하는 날이었습니다. 일가친척들과 제자들이 모여 성대한 잔치를 베풀려던 참인데, 75세를 일기로 오전에 조용히 눈을 감고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그런 특별한 우연도 있을 수 있는지,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혼인한 날과 운명하는 날이 일치할 수 있었을까요.

그제 4월7일은 다산서세 171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기일을 기념하여 우리 연구소에서는 소박한 제수(祭需)를 준비하여 묘제를 올리고 또 간단한 기념강연도 개최하였습니다. 소식을 들은 남양주시 조안면 조안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60여명의 학동을 데리고 오셨고, 이천시의 전 시장은 다산목민교육원 관계자 40여명과 함께 참석하셨고, 묘소 인근 분들뿐 아니라 남양주시청 관계자분들 및 서울과 기타 지역에서 모여든 남녀노소 400여명이 묘소에 제주를 올리고 머리 숙여 재배를 올렸습니다.

탁월한 학문적 업적과 우국애민(憂國愛民)의 격조 높던 선생을 숭모하는 세상 사람들의 수효는 갈수록 늘어나고, 그분에 대한 연구결과가 쌓일수록 그분의 지혜를 빌려 오늘의 시대적 고민을 풀어보려는 식자들이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위대한 학자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가 역경에 처할수록 그런 난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그분의 학문에서 찾으려는 욕구 때문에도 더 그분에 대한 숭모의 정을 느끼게 하기 마련입니다.

봄이 한창 무르익어 산에는 진달래가 만발하였고, 넘실대는 한강의 봄물은 온갖 어려움을 포용이라도 할 듯 출렁거리면서 다산을 애도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강연에서 김상홍교수가 역설하였듯이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매우 도덕적인 삶을 살다 가셨던 다산선생의 풍모는 우리민족의 영원한 사표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기일을 맞아 새삼스럽게 흠모의 마음이 치솟는 선생, 무슨 찬사를 올려야 마땅할까요. 중국 한(漢)나라 때의 엄자릉(嚴子陵)에게 바쳤던 “선생의 사상과 정신, 산처럼 높고 강처럼 길도다”(先生之風 山高水長)라는 글귀만 생각납니다.
-. 박석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