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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내 (Gaenea)
좋은 미디어 기사

[스크랩] 내 고향 익어가는 곡식, 그리고 가을...

by joolychoi 2006. 11. 15.
 

 

 

덥다는 말이 입에서 떠날 줄 몰랐던, 그래서 이 여름이 언제가려나 했는데 이제 제법 아침ㆍ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니 가을님이 오시나 봅니다. 새벽녘에는 쌀쌀함에 옷장 속에 넣어 두었던 이불을 꺼내 덮을 정도니, 가을을 실감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낮에는 30도 안팎으로 덥고 습한 날씨를 보이고는 있지만, 얼마 전까지의 더위할아버님에 비하면 손자뻘에 속하니 ‘이까짓 더위쯤이야 우습지!’ 하면서 그 두렵던 무더위를 한껏 비웃으며 오는 가을님을 기다립니다.

 

가을이라! 참 좋은 계절이 아닌가 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했듯이 모든 곡식과 열매들이 여물고 알알이 익어가는, 그래서 세상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모든 것이 풍요로움으로 가득한 계절이니 각박한 세상의 건조함을 이 때만이라도 넉넉함으로 채워주니 말입니다.

 

우리네 농부님들, 봄에 새싹을 틔워 어린 자식 돌보듯 정성스러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여름 장마에 병이 들까 태풍에 쓰러질까 노심초사하며 자식처럼 키운 벼가 이제는 쑥쑥 자라‘농부님, 저 이렇게 자알~ 컸습니다. 농부님 감사합니다.’하면서 고개를 숙이니, 우리네 이 땅에 황금빛 물결이 넘실거릴 날이 멀지 않았네요.

 

 

 

 

 

 

 


들녘의 곡식들이 황금빛으로 변해갈 때, 가을에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해줄 주전부리 과일들도 비바람 여름의 시련을 견디고 하루가 다르게 단단함을 더 하면서 어서 빨리 화사한 가을햇살님이 자신들을 살갑게 안아주길 기다립니다.


요즘에야 백화점이나 할인점에 가면 사시사철 계절에 상관없이 과일들을 사 먹을 수 있는 세상이라 하지만, 온실에서 곱디곱게 자란 그 놈들과 비바람 견디면서 인고의 시간을 고스란히 품에 안고 있어 생명의 소중함이 깃들인 열매님들과 어찌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을 런지요.

 

 

오는 가을님이 반갑지만 가는 여름님이 서운한 님도

 

 

 

 

 

 

 

 

오는 가을님이 반가운 님이 있으면 가는 여름님이 아쉬운 님도 있겠지요. 한 여름 입맛 없는 우리네 식탁에 올라, 때로는 새콤달콤 고추장 무침으로, 때로는 시원한 오이냉채로 입맛을 돋우던 텃밭의 오이는 다음 여름 또 다시 태어나기 위한 씨앗을 몸에 품은 채 아름다운 황혼으로 접어듭니다.


먹기 좋게 송송 썰어 매운 고추 하나 넣고 보글보글 끓이던 호박된장찌게. 달랑 호박 하나 넣고 끓인 된장찌개지만 어머니의 그 구수한 손맛에 밥 두 공기는 뚝딱 해치우곤 했지요.  논두렁 개울가에서 잡은 우렁 넣고 끓인 쌈장에 싸먹던 호박잎들은 또 어떠한지요.


텃밭과 둑에서 자라면서 자신이 필요할 때만 찾아오고는 제대로 돌보는 발걸음조차 하지 않지만, 그래도 서운하다 하지 않고 자신의 할 도리를 다 하고 텃밭의 오이처럼 다음 여름에 또 다시 태어나기 위한 씨앗을 몸에 품은 채 아름다운 황혼으로 접어드니, 그 말없던 침묵에 그저 고맙다는 말이나마 전하고 싶습니다.


여름밤 별님을 헤아리며 내 어머니와 아버지와 아이들과 하모니카를 불던 옥수수, 탄저병 하나에 1년 농사 망칠까 늘 마음 졸이게 하던 고추도 이제 조금씩 조금씩 세월의 뒤안길로 접어드니, 새삼 서두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채 순리대로 살아가는 자연의 이치에 작아지는 한 인간을 보게 됩니다.

 

 

 

 


토끼구름 양떼구름들이 파란 하늘에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리고, 한들한들 가을바람에 춤을 추면 꿀을 먹던 호랑나비도 너울너울 함께 춤을 추고, 문 밖에서는 매미를 울음소리 대신 귀뚜라미가 소리가 들리겠지요.


이제 제 할일을 다한 들녘과 텃밭에는 새로운 생명들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날 것입니다. 겨우 내 우리 식량이 되어 줄 김장김치와 파가 푸른 싱싱함으로 지난 간 여름의 쓸쓸한 텃밭의 빈자리를 채우게 되겠지요.



이제 가을님이 오시나 봅니다!

출처 : 텅빈 충만을 위한 진보
글쓴이 : 장희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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