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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내 (Gaenea)
좋은 미디어 기사

[스크랩] 참 사랑

by joolychoi 2006. 11. 17.

저는 해마다 수능 볼 때 쯤이면 느끼는 것인데,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감에 자식들이 없으면 내 내면의 성장이 참 더딜 거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 나이 스물 다섯 겨울 동갑내기 남자와 중매로 선 본지 두 달만인 1986년 봄 얼떨결에 결혼해서  그 해 가을에 첫 아이를 낳고 뭐가 그리 맘에 안드는지 일요일 날  둘이 같이 있기만 하면 싸워서 저녁에는 밥도 같이 안먹고 했었죠.

그렇게 다투면서도 그럭저럭 살다보니 마음의 상처를 입히는 날도 있었기에

이혼한다고 난리도 폈던 20대, 30대 중반까지 그랬던 거 같습니다.

 

30대 중반에는 벌써 큰 아들이 초등학교 중반이 들어서니 반항기 시작되고, 사춘기 맞으며

속도 어지간히 썩히니 40대가 되대요.

 

고등학생 때까지 공부도 제대로 안하고 방황을 해되니 아빠와 큰 아들은 말로 해결 할 수 있는 것도 툭하면 왈력으로 몸으로 싸우니 그런 원수지간도 없더이다  이럴 때는 아들과 남편 중간에서 나만 애 간장을 태우며 전전근긍 남편 이해 시키고, 아들 이해시키며 화해시키느라 바빴지요. 이런 지경이니 애는 애라서 이해가 됐지만 남편은 어른이라서인지 저는 남편이 이해가 안가니 남편이 고렇게 얄밉더라구요. 그러니 늘 남편은 얄미운 존재로 제 마음에 자리잡고 있으니 제 마음 속에는 은근히 남편의 미운 점만 보여졌습니다.

 

그러다 아이 수능 보는 날 아침에 남편은 아이 수능 본다고 휴가를 냈다하대요.

수능 볼 학교 교문으로 들여보내고는 30분이 넘도록 교문을 바라보는 남편 등 뒤를 바라보면서

'아~ 저 사람도 아버지였구나~'

참 안쓰럽게 느껴지더라구요.

에미는 에미라서 아이 시험보기 100일 전부터 성당으로 뛰어다니며 기도하고 있었지만,

남편은 그런 모습 겉으로 안 보여주니 자식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점심까지 굶어가며 집에서 두문불출하는 걸 보면서 또 한 번

'아버지는 아버지구나.' 를 느꼈씁니다.

아무런 감정도 보여주지 않던 사람이 자식에 대한 그 무언가를 몸으로 보여주는 걸 보면서

남편에 대한 감정이 아이에 대한 참 사랑으로 다가왔습니다.

 

큰 아이 우여곡절 끝에 턱걸이 걸쳐서 대학보내고, 군에 보내고 나니

이제는 남자대 남자로 술잔을 기울이며 군대 얘기하니 아이한테 에미는 뒷전이 되니

에효~~ 이 맛에 아들 둔 기분을 내는 것인지요.

 

요즘은 큰 아들 군에 보내고, 작은 아들 중국으로 유학 보내고 나니

우리 두 부부만 남는데,

평소에는 내색 않고 남자의 근성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술만 한 잔 걸치면 일 열심히 하느라 남편보다 서너 시간이나 늦게 퇴근하는 나에게

"여보~~ 언제 와. 나 불꺼진 집 들어가기 싫은데, 지금 택시 타고 빨리 오면 안돼."

이렇게 보채는 남편을 보면서

외로움이 많은 사람이란 걸 알게 해주곤 합니다.

 

그러니 이제 결혼 한지 스무 해 넘으니 어떤 것도 이해해 줄 수 있는 참으로 사랑스런 부부가 돼감을 느낍니다. 그렇게 스스로 느끼는 것은 어쩌면 아이 키우면서 내 마음이 커졌기 때문일 거고, 남편 마음도 더불어 커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이를 통해서 부부가 자라고, 아이의 힘든 상황에 빠질 때  아이와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 '우리 부모님도 내가 시험 볼 때 이런 마음이었겠지' 그 날 하루만이라도 진정으로 내 부모를 생각하는 것은 위에서 받은 사랑을 아래로 이어주는 참 사랑의 순리 때문이리라.

 

우리 부모님들이 준 사랑으로 내 삶의 버팀목이 되었듯 우리가 엮어서 내려 준 사랑으로 우리 아이들도

튼튼한 삶을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청해 봅니다.

(2006년 수능 보는 11월 16일 낮에 )

 

출처 : 카페가 만든 뉴스
글쓴이 : 강미카엘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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