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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미디어 기사

[스크랩] 아버지 어머니의 달콤 사랑 싸움, 오랫동안 계속됐음 좋겠습니다^^

by joolychoi 2006. 11. 15.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김장철이네요. 토굴새우젓으로 유명한 충남 홍성군 광천읍의 광천시장. 김장철이 다가와서인지 시장 안이 온통 새우젓으로 가득합니다.


 

“애비야, 아침 일찍 광천 좀 갔다 오자”

“뭐 살 거 있으세요?”

“새우젓! 김장 해야지”

“벌써 김장할 때 됐어요? 언제 하는데요?”

“한 보름 정도 있다가 해야지”


지난 주말에 사촌형님 환갑잔치가 있어 시골에 갔었는데, 어머니가 김장 준비를 해야 한다며 일요일 아침 일찍 광천으로 새우젓을 사러 가자 하셨습니다. 토굴 새우젓으로 유명한 광천 아시죠? 저희 시골집에서 차로 10분이면 갑니다. 매년 이곳에서 새우젓과 젓갈 등을 사서 김장을 합니다.


일요일 점심 때 환갑잔치를 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 어머니와 함께 광천시장에 갔습니다. 새우젓으로 유명한 곳인데다, 김장철이 다가와서인지 시장 안이 온통 새우젓 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어머니는 늘 가시는 단골집으로 가셨습니다. 뽀얗고 오동통 살이 오른 새우젓이 먹음직스럽게 보입니다.


어머니는 새우젓 말고도 젓갈과 김을 사셨습니다. 김은 굳이 사시지 않아도 됐는데, 세린이와 태민이가 김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생각나셨는지 집으로 오시다 말고 갑자기 다시 시장으로 가자하시더니 기어코 김 한 톳을 사주셨습니다. 

 

“아휴 그게 뭐랴? 푹푹 좀 뜨유!. 해마다 여기서 사는구먼. 많이 줘야 내년에 또 여기로 오쥬”

 어머니가 단골임을 내세워 아주머니를 협박(?)합니다. 결국 아주머니는 “알았슈!”하면서 푹푹 떠 주었습니다. 우리 어머니 시장 가서 에누리와 덤 장사는 끝내 주게 하십니다^^

 

 튼실하게 자란 시골 텃밭. 올 가을 가뭄이 무척이나 심해 채소들 성장이 힘들었는데,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신 어머니의 정성으로 이렇게 잘 자랐습니다. 어머니의 맛있는 김장김치가 벌써부터 그리워지네요.

 

 

아내가 챙긴 양보다 꼭 두 배를 더 챙겨 주시는 어머니의 깊은 사랑, 그 사랑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히 먹겠습니다!

 


새우젓과 젓갈을 사가지고 집에 오니, 아내는 벌써 텃밭 사냥을 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시골만 가면 마당 앞 텃밭이나 뒷담 텃밭을 수시로 오가며 “뭐, 가져갈 것이 없나?”하면서 늘 채소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시금치, 쪽파, 대파, 감자, 무, 배추, 상추, 고추, 호박 등 먹을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대로 부지런히 캐고 뽑고 다듬어서 박스에 부지런히 챙깁니다.


어머니는 늘 그런 며느리를 기특하다 하시며 웃음 띤 얼굴로 바라보십니다. 한 푼 두 푼 아껴 알뜰하게 살림하는 며느리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당신이 기른 채소들을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주는 기쁨에 어머니는 기분이 좋으신 거지요.


어머니는 이런 아내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다가도 팔을 걷어 부치시고는, 그만 됐다고 하는 아내에게 “아가야 더 가져가거라. 가져가서 친정에도 주고, 옆집에 친한 사람도 있다며? 그 집도 주고, 많이 가지고 가서 많이 먹거라. 엄마는 니들 이런 것 주는 게 재민겨. 많이 가져가거라.” 하시면서 뭐든지 아내가 챙긴 것의 두 배를 싸 주십니다.


그 날도 속이 꽉 찬 배추의 노란 속 부분을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맛있다며 2포기를 뽑은 아내에게 어머니는 부랴부랴 텃밭으로 들어서시더니 4포기를 뽑아 주셨습니다. 밭이 없는 처갓집에 같다 주라시며 무도 사료 포대로 두 포대를 뽑아 주셨습니다.


작년에는 굳이 심지 않았던 시금치까지 심으셨더군요. 가끔씩 아내가 시골에 갈 때 시금치를 사 가지고 가서 된장국을 끓여 드리던 것을 기억하시고는 아내가 시금치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심으셨나 봅니다.


"배추 뽑다가 우리 아버지 어머니 사랑 싸움 했습니다^^ "


 뒤늦게 텃밭으로 들어 선 우리 아버지. 어머니 옆에서 '이거 뽑아라, 저거 뽑아라'코치 하시다가 결국 우리 아버지^^

 

아버지께서도 덩달아 어머니를 따라 텃밭으로 오십니다. 아버지가 어머니 옆에 오시더니, 배추를 뽑고 있는 어머니를 향해 “그거 뽑지 말고 저거 뽑어” “어허! 저거 뽑으라니께” “아 좀 더 뽑어! 아꼈다가 이고를 갈겨 지고를 갈겨?” “대파는 왜 안 뽑는댜? 그거 다 먹을겨?” 하시며 슬슬 어머니를 자극하십니다.


참다 참다 못 견디신 우리 어머니, 갑자기 벌떡 일어서시더니 “이놈의 할아배! 뭐더러 와 가지고 잔소리는 늘어 놓는댜! 여긴 내가 알아서 헐팅게 가서 소밥이나 줘. 아무렴 내가 내 새끼들한테 못 난 것 주겄어? 워째 나이 들어갈수록 잔소리가 더 심해지는지 물러”하시며 아버지를 향해 펀치를 날리십니다. 


어머니의 기세에 눌리신 아버지. 아버지는 한동안 아무런 말씀 없이 어머니 옆에서 어머니가 뽑아 주신 배추와 무를 사료 포대에 담으시고, 시금치는 끈으로 가지런히 묶으셨습니다. 하지만 아뿔싸! 우리 아버지 결국 어머니의 엄명을 어기고 끝내 또 한 말씀 하셨으니, “파를 다듬어 줘야지, 흙 묻은 채로 그대로 주면 어떡한댜?”

 

저는 속으로 "이제 우리 아버지 큰일 났다^^" 생각하면서 어머니를 바라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어머니,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할아배! 거기 서서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만 하지 말고, 그럼 할아배가 직접 뽑어서 다듬지 그랴? 이놈의 영감탱이, 하지도 않을 거면서 옆에 서서 잔소리는 꿀 찍어 먹게 하고 있구먼. 어여 싸게 싸게 포대에 놓고 소밥이나 주러 가!"

 

 어머니 지시(?)대로 아무 말씀 안 하시고 사료 포대를 들고 다니시며 어머니가 뽑은 배추와 무를 사료 포대에 담으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남자는 늙으면 이렇게 된다며, 저보고 젊었을 때 아내한테 잘 하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인가요?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지 맞겠죠! 그래서 아내한테 잘 하려고요^^

 

아버지는 결국 그 한 말씀 참지 못하고 하신 바람에 어머니에게 쫓겨 소밥 주러 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뒤돌아 텃밭을 나서며 혼잣말로 하시는 말씀, "잔소리는 내가 하나? 할망구가 더 하면서..." 

 

어머니가 그런 아버지를 보시더니 "뭐라고 궁시렁거린댜 또" 하시며 마지막 쐐기를 박으십니다. 아버지가 다 나가신 후 어머니가 웃으시며 "희용아! 니네 아버지 이제 이 엄마한테 꼼짝 못혀. 옛날에는 그렇게도 성질 괄괄하더만 요새는 이 엄마한테 꼼짝 못헌다."고 하십니다.

 

어머니는 소밥주러 가시는 아버지를 보시며 뭐가 그리도 웃긴 지 한참을 막 웃으시고 나서는 "희용아 내가 언젠가 밤 늦도록 드라마를 보고 있는 데 니 아버지가 시끄럽다며 텔레비전을 확 끄더라. 그래서 내가 얼른 틀으라고 했지. 그랬더니 들은 체도 안하고 리모컨을 이불 속에 감추고는 꼭 끌어 안고 자더라"

 

뭔가 웃긴 일이 일어났을 것 같은 궁금증에 내가 "그래서요?" 했더니 우리 어머니, "그래서는 뭘 그래서여? 니 아버지 아침 밥 굶겼지" 하십니다. 우리 어머니, 얄미운 아버지 골탕 한 번 먹으라고 일부로 아침 일찍 이웃집으로 마실을 가 행방을 감추시고는 점심때가 다 되어서 집으로 왔다고 하네요. 집에 와 보니 배고프신 우리 아버지, 찬밥 남은 거 드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가끔씩 시골에 가면 두 분은 종종 티격태격 사랑 싸움을 하십니다. 어떤 날은 두 분이 경쟁적으로 “니 아버지가 이렇게 했다” “아니다. 니 엄마가 먼저 이렇게 했다”하시며 저와 아내를 번갈아 앞에 앉히시고는 그동안의 있었던 일들을 속속들이 말씀해 주시는 데, 듣고 있으면 슬그머니 웃음이 지어집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마치 사랑 싸움을 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에 기분 좋은 행복함이 듭니다.

 

하지만 어느 날 불현듯이 드는 생각에 그 행복함은 늘 마음에 그늘로 남습니다. 반 평생을 훌쩍 넘겨 오랜 세월 함께 하신 내 아버지와 어머니. 이제 일흔 다섯과 일흔 하나, 하루가 다르게 세월의 강을 빨리 건너시는 연로하신 부모님이다 보니 혹여 어느 한 분이 먼저 그 세월의 강을 건너시면 홀로 남은 세월 쓸쓸함을 무엇으로 채우며 보내실 지 이 자식은 그것이 늘 마음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그 빈자리, 자식이 아무리 채워주려 한들 어찌 채워지랴 싶습니다. 자식들 도시로 떠나보내고, 이렇게 시골에서 텃밭을 일구며 서로 의지하며 마치 친구처럼 저리 하시는 모습을 보니, 그저 두 분 모두 오래 오래 함께 하셔서 오늘처럼 알콩달통 사랑싸움 하는 모습, 언제까지나 오래 오래 뵜으면 자식으로서 소원이 없겠습니다. 저희 부모님 뿐 아니라 모든 부모님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 오래 자식들 곁에 있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가는 세월 막을 수 없다지만 부모님 세월만은 천천히 갔으면 좋겠습니다.

 

세월을 기다려주지 않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오늘도 글 말미에 정철님의 시를 옮겨 봅니다.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출처 : 텅빈 충만을 위한 진보
글쓴이 : 장희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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