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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내 (Gaenea)
흔적을 찾아서

고향 성묫 길의 풍경 (6)

by joolychoi 2020. 2. 14.







  고향 성묫 길의 풍경

 
 며칠전부터 고향 성묘갈 계획을 세웠으나 여이치 않았다.
매년 이때쯤이면 고향에 자식들을 기다리고 계시는 부모님을 뵈옵고 온다.
오늘은 날씨도 맑은 가을 하늘이라서 아이스 박스에 간단한 간식을 준비해
막내 아들을 데리고 아내와 같이 성묫길에 올랐다.
 
성묫길 시골가는 길은 온 들판이 누렇게 황금빛으로 변해가고 있었으며
이제 가을이 깊어가며 곧 농번기가 오고 있음을 느끼게한다.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들판,건너편 야산 아래 논에는 벌써 익은 벼를 
논 바닥에 말리는 모습도 보여 어릴적 아버지께서 하셨던 농사일이 불현듯 
기억되기도 한다,분홍지붕,푸른지붕을 장식하고 있는 이름 모를 공장
지붕(농업용 사료 공장인 것 같이 느껴진다) 항금색들판,푸루름이
조금 퇴색되어 가는듯한 산야가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속의 풍경처럼
느껴진다.도로가에 색동으로 치장하여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와
양옆 도로가에 가로수로 심어놓은 백일홍꽃이 바람에흔들리며,
성묘길 가는 우리를 반겨 맞이해 주는 것 같고,가을 향기가 
더 한층 껴져 고향의 품속으로 안기는 것 같았다.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 산소는 아버님 생전에 “너희들 객지에 살고있기 
때문에 먼산으로 가면 힘들텐데 지나다가 잠시 들릴수 있도록 여기가 
나 갈곳“이라고 유언을 하신 곳이다.도로변 마을뒷산 아래 휴경된 
우리밭에 어머니와 함께 하시도록 자리를 잡아 주셨던 장소이다.  
지금은 어머니와 함께 쌍봉으로 모셔저,오순도순 살아온 이야기.
자식 이야기 하시면서 편히 쉬고 계시리라!.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이렿게 변해 갈 세상을 미리 예견하고 계셨을가? 
 
오늘도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며 아버지께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기도 한다. 산소관리를 하고 계시는 동네 옛 선배로 부터
 벌초(伐草)했다는 연락이 있은터라, 부모님 산소에 성묘부터 했다.
산소는 오래 휴경된 밭이라 금년같이 긴 장마철이라 걱정했는데 
산소는 물론 주위까지 말끔하게 벌초 해 마음이 가볍웠다.
고향에 계시는 초등학교 스승이자 집안 형님께 방문 했으나,
출타 중이시라서 뵙지 못하였다.사전전화로 소식은 전해 올렸지만.
마을 앞 정자나무가 처음 방문자를 맞이해 준다.산소를 관리해 주는 
고향 선배집에 둘렀다.나이도 곧 팔순인 어른 내외분이시다

 
우리 어릴적 젊어 쎴는데? 그동안의 이야기도 나누고 산소 주위관리
(대나무 숲이 가까이 침범하고 있다)문제등 협의도 하기도 하고 
당부도 했다.마을 뒤안길 골목에 벌어져 있는 정겨운 광경.멍석
(덕석:짚으로 땋아 만들 곡식을 말리는 자리.시골에서 행사때 앉는 
자리로도 사용)위에 나락(벼 낱알)을 널어두고 가래(나무로 만들 
기역자 연장)로 당기며,밀며 햇볕에 말리는 허리 고부랑 할머니...
닥아 오는 추석 준비일 것이다.고향오는 자식에게 햇쌀을 주려고.
몇 십년을 거듭하신 농사일로 숙달된 모습.자연스럽기도 정겹기도 
하지만 얼마나 힘드실가?.어렵게 키워 놓은 자식들이지만 농촌
생활 힘든다고 도시로 떠나버린 자식들.걱정스럽기도 하지만 
노인부부가 고향 지키며 노후를 보내고계신다.젊은이가 떠난 
고향의 뼈아픈 농촌의 일면이기도 해 마음 아프기도 하고
참 안타가운 일이기도 하다. 
 
잠자리 떼 하늘을 높게 날고,뭉게구름 둥실 떠가는 눈부시도록 
맑고 높은 가을하늘,오늘 유난히도 맑은 가을 하늘이다.
가을은 천고마비 제절이라고 하였는데,,,
옆집 외양간에 먹이를 먹으며 두리번 거리는 누렁이 한우5마리.
감나무에 달린 감들이 누렇게 익어 가고 있고.사랑채 앞 마당에 
대추가 발갛게 익어가며,알랑 달랑한 알갱이 사의를 넘어 쪽빛 
하늘이 더 넓고 높다.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가을하늘이 
한결 청명하기도 하다.
 
앞 마당 화단에 붉게 핀 맨드라미.밤나무에 달려 딱 벌어져 입
벌리고 있는 알암(알밤)들,담장 위에 누렇게 익은 호박.
하늘을 날고 있는 잠자리 떼.가을농촌의 정겨운 모습이다.
허지만 너무나도 고향은 변해 버렸음을 재 확인 할 수 있었다.
 
어릴적 기억속의 고향은 어디로 갔을가?.
골목안 정 들었던 초가집은 완전 사라져버렸다.
산 중턱에 있는 조부모님 산소 성묫길에 아들놈과 함께 산에올랐다.
이 성묫길은 옛 정취를 느끼게 한다.뱀(독사)등이 있어 위험하다고 
해 산에 오르는 준비는 완전 무장한 등산복 차림이다.
등산복,등산모,등산화,배낭.장갑,스틱등을 준비해 갔다.
하나 더 아내 모르게 혹시 싶어 밤을 주워 담을수 있는 비닐봉지다.
 
내가 조부모님 산소 성묘시 아내는 산에 오르지 못해 부모님 산소옆에 
있는 한그루 밤나무 아래에서 밤을 줍고 옛 추억을 떠 올리며 추억의 
되새김질 한다. 금년은 풀도 무성하고 모기,벌,뱀등이 극성이라서 
금년은 위험해 밤을 줍지 못하도록 하였었다. 산 오름에 있는 대나무 
숲을 지나 홍사산에 오르니 알밤이 바닥에 많이 떨어져있어 그때서야 
배낭에 준비한 비닐 봉지를 꺼내어 밤 줍기가 시작했다.옛 밤줍던 
기억을 떠 올리면서.혹시 싶어 뱀의 공포증으로 스틱으로 주위를 
살핀후 장잡낀 손으로 부지런히 밤 톨이를 주워담았다.

 
 
이리 저리 밤나무 밑으로 밤 찾아 다니면서...
옛날 어릴 때 검은 고무신 신고 밤 줍기할 때 기억이 살아 나기도한다.
매일 아침 남보다 먼저 일어나 밤나무 밑에 밤을 많이 주워 올 세라.
그리고 밤나무 밑의 시꺼멓고 검 붉은 많은 발을 가진 지내 생각도 
나 무척 조심한다.그 주위에는 우리가 고향 떠난 후 밤나무를 
식재했기 때문일가? 기억으로 큰 밤나무 한그루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데 밤나무의 밤이 땅에 떨어져 발아되어 자연으로
자랐기 때문일가? 생각해 보기도 한다.
 
또한 그 주위 밭에는 밤나무 식재한 지역이 따로 있어 
출입을 막고 있다. 같이 간 아들놈의 반응이 재미있다.
“그냥 성묘나 가입시더” 알았다 
 
조금 줍고 난뒤 천천히 가자고 했다.
밤이 떨어져있어 주워 보니 재미가 있나 보다.
“아버지 그전에 성묘시 삼촌과 많이 밤을 주었어요“하면서 열심히 
줍기도 하고 이야기하면서 막대기로 밤송이를 떨어 뜨리기도 하고 
밤나무를 흔들어 줍기도 했다.밤을 주어본 경험이 있나 보다.
떨어저 있는 밤송이를 신발로 부벼 까기도하며, 안 벌어진
밤송이는 신발로 밤송이를 밟고 나무로 후벼 까기도 했다.
밤송이 깔 때와 밤주워 담을 때 밤송이에 손을 찔려 피가 송송
나기도 하면 이빨로 손가락을 물어 나온 피를 더 짜 내기도하며.
밤송이가 손가락 끝에 찔려 가시를 빼내기도 한다.
 
몹시 쑤시고 아프지만 밤줍기에 정신이 쏠려 잠시 아픔도 잊기도한다.  
찔려서 아픈 손가락에 살펴보면 밤송이 가시가 있기 때문이다.
바늘로 가시 있는 곳을 찾아 빼내고 나면 괜찮아 진다.
밤송이에 찔렸던 아파했던 옛 추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성묘후 도로에서 차를 대기하고 있던 아내가 
“밤 많이 주었어요?” 하고 묻는다.“조금”대답한다.
밤을 주었다는 대답이다.아내가 하는말 “나도 밤을 주었는데,
내가 많이 주었을 것“이라고 했다.역시 맞았다.
 
우리보다 먾은 밤톨이 였다.싱싱한 호박 잎도 따고,.. 
못 하도록 당부했던 말이 부질 없었던 이야기 였다.
 
하산후의 이야기이다.
오는 길에 처가 조카가 운영하던 가든에서 점심으로 먹엇던 
돼지 숯불 갈비의 맛은 잊을수가 없다.어렵지만 꼭 계산하지 
않겠다고 한다.거기다가 여름 내내 냇가에서 직접 키워
수확한 토종 벌꿀도 고모님 내외분 잡수시도록 선물로 주니 
말할 여지가 없이 고맙다.
 
산에서 모기에 물린 자식놈 운전중에 가렵다고 야댠이더니 
팔목이 말이 아니다.깨끗이 씻고 난후 상쾌하나 보다.
같이 소주도 곁들이고..,
 
처가곳 성묘도 마치고 귀가하다 보니
고향 성묫길 풍경을 새삼 그려봐진다.
조금있으면 농번기라 참 바빠지겠구나?
올 가을도 풍성한 가을이 되었으면 바램이다

이 게시글은 2006년 9.30. 본 불로그에 게시했던 게시물을 
필자가 재 편집해 등재한 게시물입니다.(joolychoi) 




 



부모님 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