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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내 (Gaenea)
농암(籠巖)최낙인 시인방(1.2 시집)

서 리(霜)/籠巖 최낙인

by joolychoi 2013. 12. 8.

 

 

 

 

 



 

 

 
 
 
 
 
 
 
 
 
 
 
 
 
 
  

서 리(霜)/籠巖 최낙인

 

 

새벽 달빛 받아

갈잎에도 낙엽에도

하얀 서리가 내렸습니다

 

간밤에

휘몰아치는 차가운 밤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은 몸을 떨었고 산노룬 밤새 울었습니다

 

밤새 떨던 잎새에도 서리가 내렸습니다

밤새 울던 노루 등에도 서리가 내렸습니다

 

서리 내린 잎새엔 아침 햇살이 내려옵니다

햇살은 다시 서릿발 타고 하늘로 피어오릅니다

 

노르 등을 태워 주고 언 잎새를 녹여주는 서리는

따스한 온기 같은 우리들의 감미로운 입김입니다

 

잎새에 피어로른 서리는 정작 얼어붙은 물안개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심 깊숙이 이글거리는 열기들이 분출하여

동토(凍土)의 지표 위에 솟아오른 지열의 잔해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만 살아가는 어리석은 우리 사람들은

잠시 스쳐가는 그 찬바람이 싫고 견디기 어렵다고

온풍기 열풍기로 추위를 데워 내며 호들갑을 떱니다

 

그러기에 산에도 들에도 풀에도 나무에도

이젠 서리는 사라지고 스산한 바람만 일렁입니다.

 

서리 내리지 않은 낙엽 덮어쓰고 잔 반달곰은

목이 마르고 발이 부어 긴 겨울 편안하게 지낼

따스한 동굴을 찾아내지 못해 하산해 버렸습니다

 

된서리 짊어지고북녘 땅 가리라던 겨울 철새는

계절 감각 상실하고 어미 잃고 고향 잃은 외로운

텃새되어 밤마다 달 쳐다보고심한 향수병을 앓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사랑스런 대지는

온풍기 열풍기에 생명을 잃고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더운 바람으로 추위만 잠재웠을 뿐 살아 숨쉬는

귀중한 생명의 기운을 상실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잎새에 피어난 서리발은

사라져 갈 물안개의 피붙이가 아니라

제 몸 살라 온 대지에 온기(溫氣) 품어 내어

새 생명 이어 내는 우리들의 영원한 본향의 전령사요

어머님의 포근한 젖가슴이 품어 낸 새하얀 꽃들의 행렬입니다.

 

--최낙인 시집<“엉겅퀴”제6부憤心> 중에서  

A Time To Love - Damita 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