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현장에는 한 명도 없던 교사들, 사고 발생 1시간
20분쯤후에 실종 사실 들어
가족들은 밤 11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습니다. 차에서 내려 뛰어오던
한 아버지는 사무실 앞에 서 있던 제게 “애들 찾았대요?”라고
물었습니다. 초조한 얼굴의 어머니도 곧 뒤따라와 옆에 섰습니다.
제가 아직 못 찾았다고 하니 그 아버지는 “아니,
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 흘러가봤자 뭐 얼마나 많이
갔을라고….”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구명조끼를
입은 채 바다 위를 떠돌고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실종된 아이들이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가만히 있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잠시 후 아버지의 고함소리와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섞여서 들려왔습니다. 아버지는 교사들을 붙잡고
“그럼 당신들은 왜 여기 있는거야. 애들이 바다에 있는데
당신들은 왜 여기 있는거야”라고 소리쳤습니다.
해경의 수색은 자정쯤 중단됐습니다. 더이상 야간 작업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한 해경 잠수부는 “아이들이
실종된 오후 5시는 물이 빠졌을 때다. 밤 동안엔 물이 계속
들어와 있다. 사고지점도 정확히 모르는 상황이라 수색작전이
무의미하다. 안타까운 마음에 계속했지만 새벽에 물이
빠져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해경이 철수를 시작하자 어머니들은 “우리 아이 찾는 거
계속해주세요. 포기하지 말아주세요”라고 애원했습니다.
아버지들은 이런 어머니들을 옆에서 말렸지요. 몇시간 넘게
바다에 들어가 수색작전을 하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해경도 가족들의 애원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한참더 자리를 지키다 돌아갔습니다.
충남 태안 해병대 사설 캠프에서 고교생 5명이 실종된 사고가 일어난
다음 날인 7월 19일 오전, 실종자 가족이 백사장해수욕장에서 해경의
수색작업을 바라보고 있다. 실종자 5명의 시신은 이날 모두 인양됐다. /뉴스
현장에는 사고 당시 상황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학생들은 숙소에 있고, 교관들은 사건 발생 이후 아예 종적을
감췄습니다. 사건 발생 1시간 20분여가 지나서야 아이들이
실종됐다는 사실을 안 교사들은 당연히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현장에 있던 두 명의 학생을 불러 이야기를 듣기로 했습니다.
교사들이 숙소에서 학생들을 데리고 나오자 가족들이 그들
주위를 둘러쌌습니다. 고(故) 김동환(17)군의 어머니는
“우리 동환이 봤니? 정말 거기에 있었니?”라고 거듭 물었습니다.
혹시나 기적처럼 아들이 불쑥 다른 곳에서 나타나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한참을 망설이던 김모(17)군이 “동환이….
물 속에 있는 걸 봤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동환이 어머니는
혼절했고, 김군은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라며 울먹였습니다.
이들을 통해 비로소 당시 상황을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보트 탑승 훈련이 끝난 후 구명조끼를 다음 조 학생들에게
넘겨준 아이들은 해안가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교관 2명이 바다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점점 깊어져 신장 165㎝의 김군은 물이 목까지
차올랐습니다. 하지만 교관은 “괜찮아,
여기까지 와봐”라고 말했습니다.
김군은 “그 직후 파도가 친 것 같긴 한데 갑자기 바닥에
발이 안 닿았다. 옆의 애들도 마찬가지여서 서로 붙잡고
숨을 쉬기 위해 올라가느라 몸집이 작은 나는 맨 밑에
깔렸었다. 간신히 어떻게 해서 나와보니 아직도 저 안쪽에서
허우적대는 애들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두 명의 학생은 고 이준형(17)군이 안전한 곳까지 나왔다가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들어갔다는 친구들의 증언도
전했습니다. 이준형 군의 아버지가 흐느꼈습니다.
아이들이 사라진 걸 확인했지만 교관들은 곧장 119나 해경에
신고하지도 않았습니다. 사건 발생 20분이 지나서야 처음
해경에 신고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자체적으로 아이들을
찾아나선 겁니다. 물에서 허우적대는 아이들을 확인하고도
“혹시 숙소에 애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숙소를 찾아보라”며
한 아이를 숙소로 보냈습니다. 바닷가에서 숙소까지의 거리는
약 500m 입니다. 바다에서 사라진 아이들을 숙소에서 찾으려
하는 동안 소중한 20분이 사라졌습니다.
가족들의 통곡이 밤새 이어지는 동안 날이 밝았습니다.
오전 5시 30분 해경의 수색이 재개됐습니다. 그로부터 30분 후
“찾았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가족들이 바다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해경이 수습해 온 시신에는 흰 천이 덮여
있었습니다. 누군가 “누구야! 누군지 확인을 해!”라고
소리쳤습니다. 가족들이 시신을 둘러쌌습니다.
잠시 후 이준형군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오후 6시까지 새로 시신이 한 구씩
발견될 때마다 가족들은 시신을 향해 뛰었고,
누군가 비명을 지르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충남 태안군 안면읍 백사장 항포구 인근 해역에서 사설 해병대 캠프 훈련을 받다 실종됐던 공주사대부고 2학년이모 군의 시신이 19일 수색대에 의해 인양되는 가운데 유족이 오열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