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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내 (Gaenea)
世德叢覽(全州崔氏 按廉使公 宗會)

9. 효. 열부(孝. 烈婦)-3)정렬(貞烈)[3]-金氏-金氏-文氏

by joolychoi 2013. 7. 17.

 

 

 

 

 

세덕총람 (世德叢覽) 
 
  9. 효. 열부(孝. 烈婦)   

3) 정렬(貞烈)[3]   

ㅇ 김씨(金氏)
본관은 김해로 김영준(金榮俊)의 딸이며 최근홍공(崔根洪公)의 처이다.
남편이 병이 들어 7년동안 누워있었는데,의원이 황사(黃蛇)가 제일 좋다고 하자
김씨는 즉시 큰 자루를 만들어 몸사 독사를 잡으려고 숲속에 들어가 수백마리를
사로 잡았다. 이같이 몇달을 계속하였으나 효험이 보이지 않자 칼로 자기
허벅지 살을 떼 내어 그것을 달여 먹였더니 겨우 이틀의 연명에 불과하고
결국 운명하였다.김씨는 다라 죽으려 하였으나 시부모가 마음에 걸려
스스로죽을 것을 그만두고 시부모 봉양과 자식 가르침으로 마침내 가문을
일으켰다.(환여승람. 고성지. 고성문화유적지)
(주)최근홍(崔根洪 20世): 참봉공 최하(崔河)의 후이고 안락헌공(安樂軒公)
최태수(崔泰穗)의 자
ㅇ 김씨(金氏)
김씨는 김해인 김성옥(金成玉)의 딸이며 전주인 최문욱공(崔文郁公)의 처이다.
김씨는 출가할 때 시가가 너무 가난하여 끼니가 어려웠으나, 내조의 힘을 다하여
길쌈과 노력으로 조석봉양의 걱정이 없게하여 부모님을 편히 모시고 남편을
받들고 집안을 화평하게 그리고 일가들을 돈독케 하였다.
남편이 병이 들자 회복할수 없게 되어 급박한 사정에 이르자 김씨는 손가락을
부수어 피를 쏟아  넣어 며칠동안 소생하게 되였으나 미침내 별세하니 목숨을
끊기를 결심하여 식음을 전폐함으로 곁에서 깨우치기를 " 선조를 받들고
뒤를 이을 것을 생각하지 않느냐? 고 한즉, 김씨는 슬퍼하여 마음을 고칠생각이
]있었으니 그것은 남편의 사업과 뒤를 이어  끊어지지 않게함이 죽은 이를
위로 할 것이라고 맹세한 것이다.
이로 부터 조상과 제사에 정성과 예를 다한 뒤 허리띠를 졸라매어 밤낮을 모르도록
피나게 살림을 살아 적소성대로서 가산을 이루고 그 조카 최학찬공(崔學燦公)을
양자하여 사랑으로 길러 장성하자, 정씨(鄭氏)에게 장가들게하니 정씨 또한 착하고
효도하여 열부 김씨를 잘 받들어 차차 문호가 서게 되니 그 뜻한 일이 거의 이루워졌다
하겠으나 뜻밖에 그 아들이 낫기 어려운 황달에 걸렸다. 
 
잉어가 좋다는 의원의 말에 겨울이라 정씨는 하늘에 기도하여 소원을 빌고  강에 나가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와 먹이니 효과를 보았다. 몇해 뒤 병이 재발하여 재기하지
못하고 아들도 없음에 정씨는 이미 며칠 앞에 식음을 끊고 죽음을 결심하여 혼수에
빠지자 곁에 있던 사람이 열고(烈姑)의 한 일이 헛되지 않느냐는 고함소리에
문득 눈을 열어 생기를 차려 모든 일을 열고(烈姑)가 한 그대로 따라서 뒷일을
생각하며 부지런히 힘쓰고 종질 최낙헌공(崔洛憲公)을 양자하여 어여삐 기르고
엄하게 가르치니사람마다 정씨의 열(烈)을 일컫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것이 양대 열부로서 고금에 드문 일이며그 시어머니, 그 며느리가 잇지 못할
최문(崔門)의 대를 잇게 한 것이다.정씨는 사인(士人) 기동(基東)의 여이다.
열부 김씨와 열부 정씨를 사림에서 주청하여 포장이 내렸고 사적이 진양지에
실렸으며 고부 함께 녹각(錄刻)한 쌍열효부 사적비가 있다.
(고성문화유적지)
(주)최문욱(崔文玉 23세世):통훈공 최세창의 후이고 오정공 최여재(崔汝載)의 현손
 
ㅇ 문씨(文氏)
남평인 사인(士人) 문수빈(文繡彬)의 딸이며 해정공 후인 사인(士人)최순공(崔洵公)의
처이다. 축하여 10년에 못 미쳐 두 아들을 낳으니, 맏아이는 유약하고, 둘째는
강보에 쌓여 있을 때 남편이 병들어 눕자 백약이 무효하므로 단을 모아 몸을 재계하고
대신 죽기를 원하였으나 몇 달 만에 마침 일어나지 못하고  죽으니, 즉시 순종(洵從)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동혈(同穴)에 묻히고자 하였으나 역시 뜻대로 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마음은 이미 굳어져 있는 지라, 3년 상을 내고 눈물을 김추며 두 아이를 어루
만지며 의복을 깨긋이 하고 가묘를 배례한 후  방에 들어가 편안히 죽으니 참으로
열(烈)이라 자식에게 자비롭게 함은 인(仁)이요. 남편을 따라 죽음은 의(義)라
필부로서 인의(仁義)를 갖추었다.(고성문화유적지)
(주)최순(崔洵 16世): 해정공 최수강(崔秀岡)의 증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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