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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의 태평로] 인간의 조건-사내칼럼/view

by joolychoi 2013. 6. 2.

 

 

 
 
  
  [김광일의 태평로] 인간의 조건  

김광일 논설위원 입력 : 2013.05.28 03:09

英 주부도 테러범에 당당히 맞서는데 한국선 남의 일 끼다가

망신당하기 일쑤'방관자'가 편한 세상… 청소년 흡연도 못 본 척

인간다움 보여주는 조건, 사소해도 살아갈 이유

 


	김광일 논설위원
김광일 논설위원
 

'목격자를 찾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도로변 현수막이다.

교통사고의 잘잘못을 가리다 큰 시비로 번졌을 것이다.

뺑소니 사고일 수도 있다. 현수막엔 사고 날짜와 연락처를 적는다.

'후사하겠다'는 말도 넣는다. 그러나 목격자는 쉽게 안 나타난다.

괜히 남들 다툼에 끼어들었다 봉변할까 두렵다. 때론 소매치기

현장을 봐도 못 본 체한다. 범인과 마주치면 얼른 눈길을 돌린다.

"나는 당신 얼굴을 못 봤다"고 말해주고 싶다. 후환이 겁난다.

 

목격자나 증인이 된다는 건 귀찮고 위험한 일이다. 그럴 땐 방관자로

사는 게 편하다. 때론 실천은 못 해도 말만이라도 거드는 간섭자가

돼 양심을 슬쩍 다독인다. 행동으로 나서는 참여자가 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디든 악한(惡漢)만큼 의인(義人)은 꼭 있다.

사회를 지배하는 섭리는 묘하게 균형을 찾는다. 그게 세상 이치요

오늘을 살아가야 할 이유도 된다.

 

2011년 8월 영국 전역이 폭력 시위에 휩싸였을 때도 그랬다.

시위대는 흑인 청년이 경찰 총에 맞아 숨진 것에 항의했다.

그러나 이들은 곧 약탈·방화꾼으로 돌변했다. 상점을 닥치는

대로 털고, 건물과 차량에 불을 질렀다. 런던 동부 해크니

지역에 사는 마흔다섯 살 폴린 피어스라는 흑인 여성이

후드 티를 뒤집어쓴 동네 약탈꾼들을 막고 나섰다.

그녀는 물음표 모양을 한 지팡이를 짚고 섰다.

"흑인 사망에만 항의해라. 가게는 가만 놔둬라.

나는 오늘 해크니 주민이라는 게 창피하다." 텔레그래프지

기자가 이 장면을 찍었다. 트위터를 통해 백만 넘는

사람이 그녀의 행동을 봤다.

 

지난주에도 세계 신문들이 마흔여덟 살 영국 여성 사진을 실었다.

지난 22일 런던 남동부 울위치 지역에서 이 여성은 피 묻은 칼을

든 테러범에게 "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나에게 넘겨줄 수

있느냐"고 했다. 여성은 또 "당신이 원하는 게 뭐냐"고도 물었다.

그사이 경찰이 도착했고, 테러범들은 다른 행동을 하지 못했다.

캐머런 영국 총리는 "이 여성이 영국인 전체를 대변했다"고 했다

 

5월 12일 저녁 프로농구 선수 이모씨가 서울 양천구 집 앞

놀이터에서 중고생 네댓이 담배를 피우는 걸 봤다. 이씨는 다가가

"담배를 꺼라"고 했다. 오토바이를 탄 고교생에게

"면허증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무슨 상관이냐"며

대들었다. 이씨는 아이들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씨는 경찰에 불려갔다. 어떤 부모는

"요즘 세상에 이씨 같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고마운 일"이라고 인사를 했다.

어떤 부모는 "아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강력한 처벌을 요구한다"고 했다.

이씨는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갈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테러범과 청소년 흡연자는 견줄 대상이 못 된다. 그래도

그 아이들 앞에 서려면 이만저만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다.

보통 어른들은 못 본 척하고 싶다. 담배를 피우는 청소년에게

훈계를 하다가 집단 몰매를 맞은 어른도 있고 심지어

생명을 잃은 사람도 있다. 지하철에서 안하무인으로 떠드는
청소년을 나무랐다가 열에 아홉은 망신을 당한다.

 

무모한 영국 여성, 무모한 농구 선수였다고 해도 좋다.

고미카와 준페이(五味川純平) 소설 '인간의 조건'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장년 세대는 기억하는 독자가 많다.

주인공 가지(梶)는 전투에 나가기 전날 보급품을 졸병들에게도

나눠주라며 총을 들고 상사에게 덤빈다. 인간은 때로 달걀로

바위에 덤빈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건이

아무리 사소해도 우리는 그것 때문에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출처: /waple club-view

blog.choseu.com/waple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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