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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내 (Gaenea)
농암(籠巖)최낙인 시인방(1.2 시집)

눈오는 날에/籠巖 최낙인

by joolychoi 2013. 5. 10.
      눈오는 날에/籠巖 최낙인 정초에 눈이 내리니 모두들 서설이라고 기뻐하는데 눈 오는 날 나의 집엔 아내는 십대의 애 띤 소녀가 되고 나는 차가운 전선을 지키는 군인이 된다 아내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닥터 지바고” 의 못다한 사랑을 그려내고 나는 밤새워 막사와 진지를 오르내리며 쌓인 눈길 쓸어내는 초라한 한 병사가 된다 눈 오는 날 아내는 하늘을 나는 새를 꿈꾸며 현란란 춤사위에 경외의 찬탄을 보내지만 나는 빗자루 든 전방의 초병이 되어 철책선 눈밭에 울고 있던 산노루를 떠올린다 눈이 내려준 저마다의 의미가 왜 이렇게 다른가? 호국의 대사님은 이른 새벽 눈 덮인 벌판을 걸으시며 뒷사람을 위한 길잡이 발자국을 남기셨는데 난 왜 그 발자국을 한사코 쓸어내기만 하였을까? 나 이제라도 눈 내린 산사 찾아가는 새벽길 나서야겠다 --최낙인 시집<“엉겅퀴”제3부思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