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학교 폭력 간의 '1년 전쟁'은 학교 폭력의 역전승으로
끝났다. 학교 안에 경찰이 투입돼 해체되는 듯했던 학교 폭력은
죽지 않고 살아나 열다섯 살 소년의 생명을 또 앗아갔다.
그 비극이 있기 전 교육 관료들은 별의별 대책을 쏟아냈다.
그러고는 폭력 학생들을 양처럼 순하게 만들었다는 성공
사례들을 마치 승전보(勝戰譜)를 알리듯 시리즈로 홍보했다.
그 뒤에 날아온 경산 소년의 사망 소식은 희망을
절망으로 되돌려 놓았다.
경산 사건으로 보건대,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학교
곳곳에서 폭력이 발생하고 또 묻히고 있을 것이다.
정부의 땜질 처방과 자화자찬(自畵自讚)에 국민만 속았다.
이제 학부모들은 'CCTV니 스쿨폴리스니 하는 것들은 소용없고
결국 정부와 교사가 문제였다'고 믿게 됐다. 꽃다운 나이에
스러지는 자식들에 대한 애처로움이 분노로 변하고 있다.
교사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학부모들에게 이의를 달기는
어려울 것이다. 교사들 스스로도 "학생들이 나쁜 짓을 하는 걸
보고도 못 본 척한 적이 있다"며 무기력을 고백하고 있다.
하지만 교사들을 나약하게 만든 원인이 분명 있을 것이고,
그 원인을 찾아내면 해법을 구할 수 있다.
교사들의 가슴에 양심과 책임감, 용기 따위를 억지로
심을 수는 없는 일이다.
모두 "교사가 문제"라며 손가락질하지만, 한국 교육의 진짜 문제는
'중학교 교육 제도'에 있다. 세계에서 본받을 것 없는 최악의
교육 실패 사례들을 꼽으라면 '한국의 중학교'가 명단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중학교 3년은 목표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이다. 학습 열기는 차갑게 식어 있고,
학생들 체력을 길러주지도 않고, 독서를 열심히 시키는 곳도
찾기 어렵다. 한국의 중학교는 '수업 중 낮잠 자는 곳'이
돼버렸다. 교육 관료와 학교의 무책임, 학생의 무(無)목표,
교사의 무관심이 우리의 중학교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중학교들이 학교 폭력의 온상(溫床)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는 또래와 사귀며 공부에 적응하는 법을
가르치고, 고등학교는 대입(大入)과 취업이란 뚜렷한 목표가
있어 학생들의 일탈을 제어한다. 그런데 그 사이에 있는
중학교는 무관심·무책임·무목표의 고립된 섬으로
망가진 채 방치돼 있다.
과거엔 중학생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려면 연합고사를
통과해야 했다. 대부분이 통과하는 시험이지만, 학교와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에게 약간의 긴장감을 주는 목표 기능을 했다.
학교 간, 학생 간 성적 비교가 되니 교사들이 더 열심히
가르치려고 경쟁하고, 수업에 빠지는 학생들을 챙겨 고민을
나누었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을 비롯한 많은 지역에서
연합고사와 같은 최소한의 목표가 사라져 자동으로 고교에
진학한다. 그러니 학생들은 느슨해진 학교에서 아무 생각 없이
3년을 보내고, 교사들은 열의가 약해지고, 학부모의 관심은
작아졌다. 이렇게 긴장이 풀릴 대로 풀린 중학교에서 인생의
방향을 잃은 사춘기 학생들이 인터넷 게임에서 배운 못된
짓을 일삼고 동료를 죽음으로 내몬다.
한국 중학교의 이런 한심한 실상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교육 당국과 교사들이 너무도 잘 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수업만 들으면 통과할 수 있는 기초학력 시험,
기본 독서량, 기본 체력점수 같은 것을 고교 진학의 자격으로
테스트하는 최소한의 제어장치를 둬야 중학교에서 무책임·
무목표·무관심을 내몰 수 있다. 열심히 하는 교사들에겐
인센티브를 주어 사기를 높여야 한다.
이런 해법에도 무관심한 것이 한국의 교육 관료들이다.
교육 관료주의를 먼저 쇄신하지 않으면 중학교 개혁은 요원하다.
아이들의 꿈과 끼도 키울 수 없다.
출처: /waple club-view
blog.choseu.com/waple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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