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클린턴, 한국의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 3월
북한은 준전시상태 선포(3월 8일)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성명(3월 12일)으로 '벼랑끝 전술'을 구사했다.
당시 연초부터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미신고시설 2곳에
대한 사찰을 압박하고 한·미가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한다고 발표(1월 26일)하자 이를 빌미로 삼은 것이다.
당시 준전시상태가 선포(최고사령관 명령)되자 3월 9일부터
평양 상공엔 미그기들이 편대 비행을 시작했다. 도로엔 기관총을
탑재한 군용 차량이 위장 그물을 덮은 채 달렸다.
낮에는 대피훈련 사이렌과 함께 방공호와 지하철 역으로
대피하는 훈련이 반복됐다. 밤에는 공습경보 사이렌과 함께
집마다 검은 모포로 창문을 막는 등화관제(燈火管制) 훈련이
이어졌다. 당시 평양에 거주했던 탈북자 김모씨는
"가정마다 설치된 라디오에서는 훈련 진행 상황을
보도하면서 마치 진짜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분위기를 고조시켰다"고 회상했다.
북한 전역에서는 비상소집 훈련도 진행됐다.
주민들은 새벽마다 모포·쌀·소금·치약·칫솔·의약품·
마스크·비옷·군용밥통 등 10㎏의 물품을 채운 비상용
배낭을 메고 집결 장소로 뛰어가야 했다.
김씨는 "이때도 제일 먼저 챙기는 것은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상화"라며 "초상화를 넣는 함이 따로 있는데
그것만 해도 배낭 크기와 비슷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