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서울 상도동의 한 24시간 편의점.
등산용 점퍼와 빛바랜 목도리 차림을 한 초로(初老)의
남성이 계산 카운터에서 열심히 돈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주고 있었다. 기자가 지켜본 1시간 동안 손님 10여명이
다녀갔다. 막걸리, 담배, 껌, 커피 등을 주로 사갔다.
계산대의 이 남성은 꼭 "○○원 받았습니다"라고 했고,
거스름돈도 "○○원 맞지요?"라고 확인한 뒤 건넸다.
이 사람은 바로 전날 중앙선거관리위원장직에서 퇴임한
김능환(62·金能煥)씨다. 33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친 다음 날
아내가 얼마 전 시작한 편의점의 '알바(아르바이트)'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물건을 사는 손님들은 그가 누구인지 한 사람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담배를 사가는 할아버지의 목이 쉬어 있자
"담배 끊으셔야겠다"고 했다.
엄마 손잡고 온 아이에게는 사탕을 건넸다.
약 8평(25㎡) 정도의 편의점은 매우 좁았다.
몸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카운터에서 서서
일하는 김 전 위원장은 가끔 가게 밖으로 나가
스트레칭도 했다. 그는 이곳에서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8시간 일하기로 했다.
나머지 16시간은 아르바이트생 2명이 8시간씩 일한다.
부인 김문경(58)씨도 수수한 차림으로 물건을 진열하고
창고 정리를 했다. 두 사람은 김 전 위원장이 1980년
전주지법 판사로 임용된 직후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김씨는 33년간 집안 살림만 했다. 김씨는 "남편은 판사
생활을 하는 동안 혹시 내가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릴까 봐 항상 '아무것도 하지 마'라고 했다"며
"이제는 내 마음대로 장사하니까 행복하다"고 했다.
김씨는 남편이 지난해 대법관을 퇴임하자
생활비를 벌기 위해 퇴직금으로 편의점과
채소 가게를 냈다. 두 가게는 바로 옆에 붙어 있는데,
겨울이라 채소 가게는 운영하지 않고
창고로 쓰고 있었다.
김 전 위원장에게 편의점이 잘되느냐고 묻자
"잘될 리가 있겠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아내가 알아서 하고 나는 도와주는 거니까
하루에 얼마나 팔리는지는 모르지만
잘되진 않는 것 같더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