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가 이곳으로 온 건 6년 전. 1남 4녀를 둔 그는 금융기관에서
정년까지 근무했다. 집도 있었다. 그러나 아들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김씨는 전 재산을 모두 날렸다. 이후 아들은 미국으로 가서
소식이 끊겼다. 시집간 딸들도 형편이 좋지 못해 아버지를
돕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6년 전 김씨는 막내딸이
준 200만원을 들고 도봉동으로 왔다.
같은 동네 보증금 100만원짜리 반지하 방에 사는 박순임(가명·96)씨는
9년 전 이곳으로 왔다. 2남 3녀를 뒀지만, 누구도 그를 부양하지 않는다.
40년 전 남편이 죽자 아들이 있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나 며느리가
병에 걸리면서, 아들이 빚더미에 올랐다. 집까지 팔아 아들 빚을
갚아주고 나니 300만원이 남았다. 박씨 집 냉장고에는
김치·고추장·된장·물이 전부다. 일주일에 2번 노인지원센터에서
배달해주는 밑반찬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이 반찬을 일주일간
나눠 먹는다. 박씨 집 창문에는 스티로폼이 곳곳에 붙어 있다.
외풍을 막기 위해서다. 그는 이번 겨울에 보일러를 한 번도
켜지 않았다. 전기장판 온도도 최고 8단계 중 '3단계'
이상을 넘겨본 적이 없다.
◇"독거노인들, 가족에 피해 갈까 봐'가족 없다'고 말해"
도봉구 쌍문동에 거주하는 강복자(가명·87)씨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보일러는커녕, 전기도 거의 쓰지 않는다.
전기밥솥도 코드를 뽑아놓았다가 밥을 먹는 순간에만 꽂는다.
사회복지단체에서 지원품으로 나온 온풍기는 비닐도 뜯지 않았다.
그는 집 안에서 옷을 4겹씩 껴입고 지낸다. 이불도 2개씩 덮는다.
강씨는 50년 전 고부갈등으로 집을 나온 뒤 식당·파출부로 전전하며
살았다. 나이가 들어 이마저도 힘들어지자, 집세가 싼 곳을 찾아
이곳으로 왔다. 강씨는 이삿짐을 풀지 않고 지낸다.
자신이 죽고 나면 짐 정리할 가족이 없기 때문이다.
밀알재단 도봉재가노인지원센터 장경화 소장은 "독거노인 대부분이
처음에는 '가족이 없다'고 얘기한다"며 "혼자 사는 것이 부끄러
우면서도 혹시라도 다른 가족에게 피해가 갈까 봐 그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독거노인들은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서류상으로는 부양가족이 있지만, 실제로는 혼자서 살면서 끼니
해결도 제대로 못 하면서 사는 것이다. 장 소장은 "독거노인들에게는
한번 가서 손이라도 잡아주고 말이라도 건네주면 우울증·외로움
극복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출처:waple chosun.com./wapl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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