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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직불금 받으면 소작 떼여... 말도 못했다"

by joolychoi 2008. 10. 25.

 

"쌀 직불금 받으면 소작 떼여... 말도 못했다"

오마이뉴스 | 기사입력 2008.10.2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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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영균 기자] 


농민들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쌀소득보전직불금 부정수령 규탄, 농민생존권 쟁취 긴급 농민대회'에서 '가짜 농민 처벌하라'고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사실상 소작농인 우리는 쌀 직불금 달라고 한 마디 말도 못했다. (정부로부터 땅 주인 대신) 쌀 직불금 받으면 내년에 바로 소작이 떼이니까…. 그래서 쌀 직불금 안 받고 농사짓는 사람이 많다. (땅 주인들) 전부 강도, 사기꾼이다."

경기도 여주에서 농사를 짓는 박광백(52·가남면)씨는 '쌀 직불금'을 부당 수령한 땅 주인들을 향해 핏대를 세웠다. 24일 서울 여의도에 열린 농민단체의 '쌀 직불금 불법수령 규탄 긴급 농민대회'에서다. 가남면 한 마을의 이장을 맡고 있는 박씨는 마을 사람들의 쌀 직불금 수령에 직접 관여했다. 그래서 박씨의 '증언'은 더 생생했다.

"나도 소작을 하지만 땅 주인 마음이 좋다. 하지만 옆 농가의 경우, 쌀 직불금을 달라면 금방 (소작) 논을 뗀다. 땅 주인이 농민 대신 쌀 직불금을 받아서 절반 정도만 농가에 주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박씨는 "소작을 떼일까 봐 쌀 직불금을 못 받고도 농민들이 전전긍긍했는데, 오히려 탐관오리들이 먼저 (비리를) 터뜨려줬다"면서 "이제 더 묵과할 수 없는 일 아니냐, 농민들이 소작을 해도 떳떳할 수 있도록 전부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쌀 직불금 받으면 '땅 세' 더 내야..."


▲ 농민들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쌀소득보전직불금 부정수령 규탄, 농민생존권 쟁취 긴급 농민대회'에서 가짜농민. 탐관오리 허수아비를 불태우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 유성호
농민대회에서 만난 다른 농민도 땅 주인의 횡포를 고발했다. 경북 예천에서 쌀과 담배 농사를 짓는 임재국(57·풍양면)씨는 "만약 농민이 쌀 직불금을 타게 되면 땅 주인은 도지(땅 세)를 더 내놓으라고 하는 일도 많다"고 전했다. 땅 주인이 "내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정부 보상을 받았으니, 그 돈을 내놔라"라고 한다는 것이다.

임씨는 "지금 소작농의 도지는 661㎡(약 200평)당 쌀 1가마(80kg, 18~19만원) 정돈데, 어떤 이는 (쌀 직불금을 받았다고) 쌀 1가마 반 값(현금 30만원)을 주는 것도 봤다"고 전했다. 전근대적인 '지주의 횡포'가 여전히 살아 있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민들이 '알아서' 땅 주인에게 쌀 직불금을 찾아주는 일도 있다고 한다. 땅 주인으로서는 '꿩 먹고 알 먹기'다. 쌀 직불금도 받고,
양도소득세 감면 등 장기적 세제 혜택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임씨는 "농민들이 사실상 조공을 바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한숨을 쉬었다.

경남 진주에서 온 이기돈(61·정촌면)씨도 땅 주인들의 불법·탈법 행위를 비판했다. 이씨는 "그래도 땅 주인들 중에는 자기가 쌀 직불금을 타서 농민에게 돌려주는 사람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결국 양도세 등 세금에서 이득을 보니까 그렇게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쌀 직불금을 주는 땅 주인이 농민을 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론 '농사를 지었다'는 근거를 남겨 혜택을 보기 위해서라는 뜻이다.

농민단체 "국정조사보다 특검 도입"... 11월말 대규모 집회 예고


▲ 농민들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쌀소득보전직불금 부정수령 규탄, 농민생존권 쟁취 긴급 농민대회'에서 '가짜 농민 처벌, 농민 생존권 쟁취'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한편 전국농민회총연맹, 가톨릭농민회 등 농민단체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열린 긴급 농민대회를 통해 "철저한 조사와 처벌"을 요구했다. 특히 농민단체는 오는 11월 10일부터 예정된 '쌀 직불금 국정조사'가 여야 정쟁으로 흐지부지될 것을 크게 우려했다. 이 때문에 농민단체는 '특검 도입'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쌀 직불금 사태의 해결은 정치 공방의 장이 되기 십상인 국정감사로는 불가능하다"면서 "충분한 책임과 권한이 있는 특별수사처의 설치 혹은
특별검사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회에 참석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도 "11월에 국정조사가 있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계속 니탓, 내탓을 한다면 미 쇠고기 국정조사처럼 몸뚱이는 없고 꼬리만 잘라내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농민단체는 고위공직자와 언론인, 국회의원 등 2006년 쌀 직불금 수령자 28만명 명단을 전체 공개한 뒤 불법행위를 엄중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또 국정조사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오는 11월 25일 여의도에서 10만 명 규모의 집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4시께 긴급 농민대회를 마친 농민단체 대표들은 한나라당사로 가 항의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