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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및기타

환율의 악몽 10년전(前) '그때'와 닮았다

by joolychoi 2008. 10. 14.
환율의 악몽 10년전(前) '그때'와 닮았다
변동폭 심한 요즘 환율 흐름 외환위기 때와 '판박이' 상황
"순식간에 폭락할 가능성 커" 수출 늦추는 기업들 주의해야
조의준 기자 joyjune@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그래픽 이동운기자 dulana@chosun.com
IMF 외환위기가 터진 후 약 1년이 지난 1998년 12월 11일, 한국무역협회는 '원화 환율 하락에 따른 수출 업계 애로'란 긴급 자료를 배포했다. 협회는 "원화 강세가 너무 빨리 진행돼, 수출업계 40%가 적자 수출을 하고 있다"며 환율 하락의 고통을 호소했다.

당시 환율이 계속 오를 것으로 보고, 수출업체들이 쌓아 둔 외화만 130억 달러(대기업 85억 달러, 중소기업 45억 달러)에 달했다. 무역협회는 "3개월간 산술적 환차손 규모만 1조9000억원"이라며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부가 환율 하락을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1997년 말만 해도 달러당 최고 1995원까지 폭등했던 환율이 불과 1년 만에 최저 1186원까지 급락한 것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환율이 올라갈 것으로 보고 수입은 빨리 하고, 수출을 뒤로 미뤘던 기업들이 당시 거액의 환차손을 봤다"며 "현재도 당시 상황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커지는 일일 변동폭…폭락의 전조(?)

한국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 신청을 발표한 1997년 11월 21일 이후 환율의 움직임과, 지난 9월 15일(한국시간)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신청으로 촉발된 이번 금융위기 때의 환율 상황은 거의 판박이로 움직인다.

1997년 11월 21일 정부의 IMF 구제금융 신청이 있던 당일, 환율은 전날보다 160원 급등한 달러당 1056원으로 마감했다. 그러나 급격한 장중(場中)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환율은 보름(12월 5일까지)여 동안 1100원대 안팎에서 움직였다. 이번에도 9월15일 리먼 파산 신청 이후 보름이 지난 10월 들어서야 달러 부족으로 인한 환율 급등이 시작된 것과 같다.

1997년 12월5일 이후 원화 환율은 하루 변동폭이 20~291원을 기록할 정도로 폭등·폭락을 거듭하다 12월23일 마침내 외환위기 당시 장중 최고가였던 달러당 1995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심리적 정점'인 2000원 수준에 도달하자, 이후엔 정부의 개입 없이도 환율은 급락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12월 26일에는 하루에 무려 338원(18%)이 폭락한 달러당 1498원으로 마감하기도 했다. 30일에는 장중 최고가(1715원)와 최저가(1220원)의 차이가 495원에 달할 정도로 변동성이 극에 달했다. 이후 환율은 러시아 외환위기(8월)와 엔화 급락(8월) 등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NH선물 이진우 부장은 "이번에도 지난 10일 하루 변동폭이 235원에 달할 정도로 컸다"며 "변동폭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이 아래로 꺼지기도 쉽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 늦추고 수입 앞당기는 기업들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상 우리 외환시장은 정부 개입보다는 대기업들의 달러 매각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K은행 외환딜러는 "정부가 달러를 풀면 '싸게 살 기회'라며 주머니를 채우지만, 대기업이 풀면, 환율이 꼭짓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삼성전자가 수억 달러를 시장에 매각하면서 환율을 달러당 113원(1485원→1372원)이나 끌어내렸고, 10일에는 현대자동차포스코가 각 1억 달러 안팎을 시장에 풀면서 장중 235원(1460원→1225원)이나 한꺼번에 폭락하기도 했다. 대기업들이 달러를 내놓자 10일 장 막판에는 달러 투매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기업들은 환율 상승을 기대하며 달러 지갑을 닫거나, '수출 늦추기, 수입 앞당기기' 전략을 펼치고 있다.

실제로 이달 1~8일의 하루 평균 수출액은 15억2200만 달러로, 지난 9월 하루 평균 수출액(16억8000만 달러)보다 9.5% 줄었다(관세청). 반면 수입액은 21억5300만 달러로 9월 평균(17억6000만 달러)보다 22.5%나 늘어났다. 달러는 없는데, 기업들이 수입은 당기고 수출은 늦추면서 환율 급등의 악순환을 일으킨 것이다. 연구소나 각 무역관련 기관들이 예상하는 우리의 적정환율은 990~1100원대 안팎이다. 삼성선물 전승지 연구원은 "당분간 환율의 변동성은 커지겠지만, 현재의 환율은 분명히 고평가 돼 있다"며 "수출업체들이 환율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달러를 시장에 내놓기 시작하면, 환율은 순식간에 폭락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