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개 내 (Gaenea)
편지 모음

편지로 나눈 대화가 사춘기 마음 활짝 열어

by joolychoi 2008. 10. 22.
편지로 나눈 대화가 사춘기 마음 활짝 열어
고교생 아들에게 3년간 편지 보낸 송한우씨
          '공부하라'는 말은 한 번도 적지 않아…
오선영 맛있는공부 기자 syoh@chosun.com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방문을 걸어 잠그고 부모와는 점점 멀어진다. 사춘기 무렵 아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열 수 있을까?

대학생인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아버지 송한우(49)씨는 "편지를 활용하라"고 권한다. 송씨는 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해 고교 졸업 때까지 편지로 대화를 나눴다. 아들 요훈(19·서울대 법대1)군은 "아버지의 편지 덕분에 힘들었던 고교생활을 흔들림 없이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이경호 기자 ho@chosun.com.
인생 선배가 들려주고픈 조언 편지

송씨는 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대화(소통)'를 꼽는다. 많은 아빠들이 자녀와의 대화를 어려워하지만, 그는 생활 속에 무궁무진한 대화거리가 있다고 했다.

"하루는 중랑천에서 아이와 자전거를 탔는데, 바퀴에서 바람이 빠지는 바람에 자전거가 잘 안 나갔어요. 아이한테 '왜 바람이 빠지면 자전거가 잘 안 나갈까?'라고 물었죠. 그리고는 '바람을 한 번 넣어보고, 뭐가 달라지는지 보자'고 했죠. 결국 '바람이 빠지면 바퀴가 지면에 많이 닿고, 마찰력이 커져서 속도가 느려진다'는 답을 구할 때까지 하루 종일 아이와 대화를 했어요."

송씨는 아들의 담임선생님은 누구인지, 짝꿍은 어떤 친구인지, 좋아하는 가수나 게임은 무엇인지, 작은 부분부터 관심을 갖고 대화를 이끌어갔다. 그러자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자연스럽게 정치, 경제, 사회문제에 관한 깊이 있는 대화도 가능해졌다. 송씨는 "부모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아이 스스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편지는 아들이 중학생일 때부터 보내기 시작했다. 워낙 대화를 많이 하고, 간단한 쪽지를 주고받는 일도 잦았기 때문에 사춘기인 아들에게 편지 쓰는 일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다. 요훈이가 고교 진학 문제로 고민하던 중3 무렵 특히 많은 편지를 보내 고민을 함께 나눴다. 공주 한일고에 진학해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대신했다.

송씨는 아들이 지쳐 보일 때 또는 자만하거나 느슨해진 모습을 보일 때 편지를 썼다. 단, '공부하라'는 말은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눈만 뜨면 공부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은 쓸데없는 잔소리에 불과하다"고 했다. 자신의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며 아버지가 아닌 '인생 선배'로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편지에 담았다. 타지에서 홀로 공부하는 아이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말도 잊지 않았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는 상투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미 승부가 정해져 있었지만, 의외의 결과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회자된다. 그러나 너는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교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거북이는 토끼와의 싸움이었으나 토끼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토끼는 거북이에게 패한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고 만 것이다." (편지 중에서)

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좋아하는 팝송 가사를 적어 보내거나 아이가 관심을 갖는 직업이 있다면, 그에 관해 조사한 내용을 쓰기도 했다. 외교관이란 직업을 궁금해 하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알려줬다.

아버지 편지로 잃었던 자신감 찾아

아버지의 편지는 요훈이에게 확실한 '동기부여'가 됐다. 공부할 의욕을 잃었을 때, 편지를 보면 절로 의욕이 솟았다. 요훈이는 "공부가 잘 되지 않을 때는 한 시간 동안 편지를 뒤적여보곤 했다"고 회고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고2 2학기 기말고사 전날 요훈이는 시험 걱정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집에 전화를 걸어 엄마에게 고통을 호소했다. 회사 일을 마치고 늦게 퇴근한 송씨는 아내로부터 "요훈이가 책을 찢어버리고 싶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는 당장 노트북을 켜서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한밤중에 차를 몰고 공주로 내려갔다. 새벽 6시, 기상시간에 맞춰 일어난 요훈이는 기숙사 문 앞에 서있는 아버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송씨는 편지를 건네주고 말없이 아들의 어깨를 두드려준 다음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자신감을 되찾은 요훈이는 시험을 치른 뒤 장학생으로 뽑혔을 만큼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1학년 때 내신 성적이 나빠서 2, 3학년 때 정말 열심히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 스트레스 때문에 위가 아플 만큼 컨디션이 바닥까지 떨어져 있었죠.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용기를 되찾았고 4일간의 시험기간을 버틸 수 있었어요. 비록 혼자 떨어져 살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며 늘 가족과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았죠."

또 아버지와 대화하면서 사회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단순하게 생각했던 일도 아버지의 의견을 들으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요훈이는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를 때마다 아버지가 적절한 조언을 해줘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