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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내 (Gaenea)
편지 모음

편 지

by joolychoi 2009. 4. 15.


꽃 필 때 널 보내고도 나는 살아남아
창모서리에 든 봄볕을 따다가 우표한장 붙였다
길을 가다가 우체통이 보이면
마음을 부치고 돌아서려고

내가 나인 것이 너무 무거워서 어제는
몇 정거장을 지나쳤다 내 침묵이
움직이지않는 네 슬픔같아  떨어진 후박잎을 우산처럼 쓰고
빗속을 지나간다
저 빗소리로 세상은 여위어가고
미움도 늙어 허리가 굽었다.

꽃 질 때 널 잃고도 나는 살아남아
은사시나무 잎사귀처럼 가늘게 떨면서
쓸쓸함이 다른 쓸쓸함을 알아 볼 때까지
험한 내 저녁이 백년처럼 길었다 오늘은
누가 내 속에서 찌륵찌륵 울고 있다.

마음이 궁벽해서 새벽을 불렀으나 새벽이
새, 벽이 될 때도없지  않았다  그럴 때
사랑은 만인의 눈을뜨게한 한사람의
눈먼 자 를생각한다  누가 다른사람
나만큼 사랑한 적 있나
누가 한 사람을 나 보다 더 사랑한 적이있나 말해봐라
우표 한장 붙여서 부친적이 있나      

 

 표 한 장 붙여서 / 천양희

C9.jpg

 

소설가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나는 소설을 쓰면서 다른 사람들의 편지를 대필하는 일을 했었다.

특별히 간판을 내건 것도 아니고, 명함을 찍은 것도 아니다.

공공연하게라기보다는 반은 입소문으로 알려진 아르바이트였다.

소설은 전혀 팔리지 않는데

편지를 대필하는 일은 한 달에 몇  통씩,

많을때는 일주일에  두 세통의 의뢰가 들어와

이대로 대필을 생업으로 하는 건 어떨까

고민스러울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C94.jpg

 

                                             (사진은 네이버에서 퍼왔음)

  

편지에는 신기한 힘이 있다.

휴대전화, 이메일 전성시대인 요즘에도 역시 중요한 일은 편지여야 한다는 사람이 많다.

얼굴을 맞대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 있다.

이메일이나 팩시밀리로는 조금 실례가 되는 것 같을때,

편지는 대단히 든든하고 유효한 메신저가 된다.

편지로 밖에 전할 수 없는 마음이 있고,

또 편지이기 때문에 마음을 토로 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

편지지나 엽서에는 스피드만을 요구하는 요즘의 시대 감각과는

정반대인 평온함과 그리운 손길도 있다.

편지에는 이제부터 마음을 전하겠다는 무게가 전해지며,

편지 봉투를 뜯는 사람은 다소의 차이는 있어도 오로지 자신에게만

전달 된 그 특별한 우편물에 얼마간 기대와 흥분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편지를 받는 일은 누구나 기뻐하면서

어찌된 영문인지 쓰기는 쉽지 않다.

입을 모아 소설가처럼 술술 쓸수만 있다면 하고 말한다.

하지만 소설가라고 해서 마음먹은대로 술술 써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훌륭한 문장이라도 상대에게 진심으로 닿지 않는 편지라면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편지를 잘 못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한때 편지를 대필했던 내가 뻔뻔스럽지만

편지 쓰는 방법을 전수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딱딱한 문장 교실 같은 것은 다른 책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여기서는 당시 내가 대필한 편지를 몇 통 인용하고

 -물론 비밀 엄수이기 때문에

의뢰인과 수취인의 이름은 가명으로 한다-,

누구나 쓸 수 있는 간단하고도 진지한 편지 쓰기를 실용적인 면 뿐만 아니라

가볍게 문학작품으로도  즐 길 수 있도록 모아 놓았다.

 

 

편지를 대신 써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소설가 츠지히토나리가

그의 대필 편지들을 묶어 놓은 책 [편지]

 

그의 의뢰인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의 빗장을 풀고 들어가는 방법을 몰라서

마치 열쇠를 잃어버린 사람이 열쇠 수리공을 찾아 가듯

그를 찾아 갔습니다.

진정한 열쇠 수리공은 각자의 문을 열 수 있게 도움을 줄지언정

자신이 그 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은 하지 않죠.

그는 정말 양심적 입니다.

 대필한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지고

성공한 후에야 보수를 받는 후불제를 택했습니다.

돈을 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그때 받기로 했다고 하니

편지 대필을 부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돈만 날리는게 아닐까 ....걱정 할 필요가 없었겠죠.

게다가 글씨를 못쓰는 사람을 위해

의뢰인을 대신해 글씨체를 바꾸기도 ....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면 붓펜을 사용하고

젊은 여성인 경우 가로쓰기용 편지지에 파란색 만년필로 쓰고

결코 같은 편지지를 사용하지 않는 답니다.

진심으로 간절히 최선을 다해 소비자의 마음을 읽고

수신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편지를 써주었던 그는

편지 대필가로 꾸준히 돈을 벌 수 있었고

소설가로도 이름을 날릴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a22.JPG

 

 

요즘 같으면 그도 일거리가 없어

거리에 나 앉을 판....

 

출처 : 진흙 파이 blog.chosun.com/sh1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