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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내 (Gaenea)
정약용과 목민심서로 배우는 지혜

[스크랩] 다산의 호에 대하여

by joolychoi 2007. 2. 6.
 
본디 다산선생의 호는 사암(俟菴)이었습니다. 그래서 후손들이 편찬한 다산의 연보(年譜)도 <사암선생연보(俟菴先生年譜)>라고 이름하였으며 자신이 밝힌 <자찬묘지명>에서도 호는 '사암'이라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뒷날 강진군 도암면 만덕산 줄기의 다산(茶山)이라는 산에 있는 '다산초당(茶山艸堂)'이라는 정자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가르치면서 귀양살이를 했기 때문에 세상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다산에 살고 있어서 '다산'이라는 호칭을 하게 되자 호로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다산초부(茶山樵夫)'라고는 사용했으나 '다산'이라고는 사용한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다산은 서울의 한강을 옛날의 책에 나오는 '열수(洌水)'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고향마을이 한강의 상류에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열수 정약용(洌水 丁若鏞)이라고 기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열수'를 호로 부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자신은 언제나 한강가에서 꼴베는 농부라는 뜻으로 '열초(洌樵)'라는 자호를 많이 사용하였고, 해배뒤의 노년에는 '열상노인(洌上老人)', 즉 한강상류에 사는 노인이라는 호를 자주 사용하였습니다.
 
어떤 경우 탁옹(籜翁), 균암(筠菴)이라고 사용하기도 했는데 널리 알려진 호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백세이사성인이불혹(百世以俟聖人而不惑)'이란 <중용(中庸)>이라는 경서에 나오는 구절로 '백세토록 성인을 기다려도 미혹함이 없다'는 뜻으로 자신의 학문은 성인을 기다려 질문이나 할 수 있을까라는 자기 확신이 강한 내용을 담았다는 뜻도 되고, 성인을 기다려서야 자신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으리라는 뜻도 있는데 먼 뒷세상을 기다려야 자신의 본령이 드러날 수 있다는 미래 예약의 뜻도 담겨 있다고 보입니다.
출처 : 인왕산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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