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개 내 (Gaenea)
여행

[스크랩] 콜로세움, 포로로마노

by joolychoi 2007. 1. 6.

 

 

 

 

콜로세움

 

 

치루크스"(원형이라 뜻의 라틴어) 에서 circus(보여주다)란 말의 어원이 되었고 곧 원형경기장에서

모든 보여주는 것들을 공연했고 오늘날에는 서커스의 기원이 돼었다
로마인은 원형 경기장을 극장으로 사용한데 비해 그리스인들은 반원형 경기장을 사용했다.

 

둘레 527m, 높이 48m로 로마에서 가장 큰 원형경기장으로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세웠다. 로마시대 이 건물 바로 옆에 네로 황제의 38m 청동 동상이 서 있는

지나가는 사람마다

 

"콜로소"(Colossale, 거대하다)라고 감탄하다가→"콜로세오"→"콜로세움"으로

되었다고 전해진다.


1층의 도리아식, 2층의 이오니아식, 3층의 코린트 양식들로 그리스식의 아치를

세움으로써 건물의 규모가 커졌다. 총 4층으로55,000명을 수용할수 있고 80개의

아치문이 있어 10분이내 많은 관중이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한다.

 

 

 

 

어쩌다 실수로 수평이 기울어지게 잘못 찍었네요~

 

 

꼰스딴띠누스 개선문의 정면

 

    꼰스딴띠누스 대제가 막센티우스(Maxentius)를 밀비안 다리 전투(312년)에서

물리친 것을 기념해 315년 세운 개선문으로 높이 21m,

벽에는 그의 업적과 전쟁장면을 새긴 부조가 있다.

후에 파리 개선문의 모델이 되었다.

 

반토막 난 듯이 보이는 것은 로마에 자주있던 지진으로 허물어진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왕궁, 다리, 성 베드로 성당을 짓는데 건축자재로 이용하려고

마구 훼손하였다.

건물내벽에 있는 수많은 구멍은 벽과벽 사이를 연결했던

수많은 청동파이프가 박혀있던 구멍으로 추정된다.

 

 

산타 프란체스카 로마나 성당


  
 로마네스크 양식의 종탑을 가진 교회로 15세기에 로마의 빈민들을 돌본

프란체스카라는 여인의 이름에서 따온 교회이다.

1608년 프란체스카가 교회에서 성인으로 추대되자 교회 이름이 '산타 마리아 노바'에서

'산타 프란체스카 로마나'로 바뀌었다. 그녀는 자동차 운전자의 수호신으로 여겨져

매년 3월9일이면 이 교회에서 축복을 받으려는 운전자들로 만원이다.

 

 

티투스의 아치(Arco di Tito)

티투스 개선문

 

 

세나토리오 궁전 


     12세기 경부터 로마원로원으로 사용되어왔으며 1536년 교황 바오르 3세가

미켈란제로에게 재건축을 지시하여 1546년 짓기 시작하였으나  

미켈란제로가가 죽은 후에야 완성되었다. 훌륭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

고대 타불라리움의 페허 위에 세워졌으며 지금은 로마 시장의 사무실로 쓰인다.

 

 

카스토르와 폴록스 신전 


   주피터의 두 쌍둥이 아들인 카스토르와 폴록스를 위한 신전으로

BC5세기 경 세워졌다.   

 

 

 

 

 

팔라티노 언덕(Palatino)

 

BC10세기의 철기시대 살았던 오두막의 흔적이 남아있는 팔라티노 언덕은

BC 8세기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설한 곳으로 추정된다.

 
    숲이 우거져 쾌적하며 거주하기에 매우 훌륭하여 로마시민의 선호하는 장소로

400년간 황제와 귀족들이 거주하였다.

위대한 웅변가 키케로, 서정시인 카툴루스가 살았고

아우구스투스가 이곳에서 태어나서 황제가 된후에도 살았다.

 

 

 

쎄띠미우스 세베루스의 개선문
    (Arco do Settimio Severo) 

 

오른켠에
   AD203년 황제 쎄띠미우스 세베루스의 즉위 10년을 기념하여 건설되었다.

포룸의 기념물중 가장 보존이 좋고 부조는

파르티아(이란과 이라크 지역)와 아라비아에서

승리한 황제를 묘사하고 있다.

 

좌측엔 바실리카 율리아
       (Bacillica Giulia)

   율리우스가 세운 법정으로 이곳에서 민사 소송을 하던 

180명의 변호사는 돈을 주고 관중을 매수해

자신에게 갈채를 보내고 상대방에게 야유를 보냈다고 한다

 

쎄띠미우스 세베루스의 개선문
    (Arco do Settimio Severo) 

 

 

 

 

 

 

 

Foro Romano

 

로만 (포럼) 토론장소

 

원래 늪지대였던 곳을 메워공회당을 만든 곳으로 고고학적 발굴이 시작된 18세기 까지

셉티우스 세베루스의 아치와 새턴 신전 기둥은 반쯤 땅에 묻혀있었고 포럼의 발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포럼: 고대 로마의 정치, 상업, 사법, 생활의 중심지로 법률재판이 열리는 바실리카(공회당)가

가장  큰 건물이었고 로마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BC46년 줄리우스 케사르가 새로운 포럼을

건설했고 이것이 아우구스투스에서 트라야누스에 이르는 황제들의 포룸의 전례가 되었고

포럼 뿐 아니라 콜로세움, 놀이공간, 개선문등을 건설했다.

 

원로원(Curia) 


 고대 로마 원로원들의 모임 장소로 공화제 시대의 최고 정치기관으로 입법,

자문기능과 집정관을 선출하던 곳이다. 화재로 전소되어 3차례에 걸쳐 재건 되었는데  

출입문으로 쓰는 청동문은 고대 원로원의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 계단에서 AD44년 시저가 저 유명한

 

'브루투스! 너 마저'(Et tu,Brute)란 말을 남기고 암살 당했다.

 

 


콜로세움 전경과 포로로마노, 기원전 4세기 경의 로마법이 제정된 장소...등

여행 7째날인 9월 16일, 오늘도 하루종일 로마시내의 유적지를 찾아 관광하다.

 

※사진에 첨부된 글은 여행자료에서 많이 발췌하여 사용했습니다.

 

어느덧 시월의 마지막 새벽 입니다. 오늘은 이곳에선

할로윈축제가 있는 날이기도 하구요.

11월이 오면 날씨가 많이 차가울터이니 모두

평안하시고 건강히 지내시기 바랍니다.

 

2006.10.31. 지금은 텍사스에서~ 손채린

 

 

출처 : 렌즈로 세상 바라보기
글쓴이 : 손채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