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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충익공 곽재우 생가지와 현고수

by joolychoi 2006. 12. 19.

 

 

                         현고수(懸鼓樹)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7호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

 

이 느티나무는 520여 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5m, 가슴 높이 정도의 둘레는 7m이다.

현고수(현고수)는 북을 매어다는 나무라는 뜻으로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왜군이 부산포에 침입하자

당시 41세 유생이던 곽재우가 4월 22일 이곳 유곡면 세간리에서 이 느티나무에 북을 매달아 놓고 치면서

전국에서 최초로 의병을 모집하여 훈련을 시켰다고 전해 온다.

 

현고수는 임진왜란 때 의병이 처음으로 일어난 곳이라고 할 수 있고, 해마다 열리는 의병제전 행사를 위한 성화가 이곳에서 채화되고 있어 문화재자료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마을 입구쪽에서 바라본 현고수

 

                                     현고수 아래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동네 노인들

 

커다란 나무가 한쪽으로 기울어 여러 개의 받침대를 세워 보호하고 있다. 동네 노인들에게 "북을 매달았던 자리가 어딜까요?"라고 물으니, "우리들 알 수 있나요? 어딘가 매달고 쳤겠지예"라며 웃었다.

                  

 

                   

                   현구수의 밑 부분은 빈 속을 채워 나무가 더 이상 상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

                   었으며 민속신앙의 한 형태로 동네에 악귀가 들어 오지 못하도록 새끼줄을 동

                   여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현조정(懸鼓亭)

 

위 비는 순 자연석을 깎아 글을 새겨 놓았는데 단기 4320년 을유년 봄에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원래는 곽망우당 집앞에 있었다고 하며, "지금은 고목이 되었으나 봄이되면 다른 어린 나무 보다도 잎이 더욱 성하게 피어 오른다. 이것은 우리마을 사람들이 축대를 쌓고 나무를 정성으로 보살펴 주기 때문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문화재로 인정을 받아 더욱 관심을 갖고 보호하게 되었다."라고 새겨져 있다.

 

 

                                         곽재우 장군의 복원된 생가

 

                                                                           주소: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 817번지

 

 이곳은 임진왜란 때 전국에서 맨 먼저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무찌른 곽재우 의병장의 생가를 복원한 건물이다. 그는 본관이 현풍이고 호(號)가 망우당(忘憂堂)이며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황해도 관찰사를 곽원(곽원)공의 셋째 아들로 남면 조식(조식)선생의 외손서(외손서)이다. 1552년(명종 7년) 이 마을에서 탄생하시었고, 1585년(선조 18년) 별시과거에 급제하엿으나 글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 뒤늦게 파방(罷放)을 하여 벼슬길에 나가질 않고, 의병을 일으키기 전까지 기강(岐江) 변 돈지에 자그마한 강사(江舍)를 지어 은거하면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의병을 일으켜 가는데마다 신출귀몰하며 백전백승을 거두셨고, 임란후 여러 관직을 거쳐 함경도 관찰사를 잠시 역임한바 있다. 구 후 당쟁이 극심하고 민심이 불안한 정국이라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낙동강변에 망우정(忘憂亭)을 짓고 은둔생활을 하다가 1617년(광해군) 66세를 일기로 서거하셨다.

 

활달한 필체에 시문에도 능하시어 문필집 망우집(忘憂集)을 남기셨으며 장군의 체취가 배어 있는 큰칼 등 유물은 보물 671호로 지정되어 충읻사에 보관되고 있다.

 

이고 생가는 조선중기 사대부의 사저로서 전형적인 구조를 본떠서 안채, 사랑채, 별당, 큰 곳간, 작은 곳간, 대문, 문간채 등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민가로 2005년 복원하였다.

 

           

      

                                          망우당 곽재우 장군 생가 건물 배치도

 

 

큰 문간채/ 큰문간은 사대부층과 향반층의 주택에는 모두 솟을 대문으로 구성하고 있으며 대문이 달려

있고, 헛간과 집사들이 거처하는 방을 둠.

 

중 문간체/ 안채와 사랑채를 담으로 구획하며 중문을 통해 출입하므로 중문간채를 두고 같은선상에 집안 식구들의 방과 헛간을 둠.

 

            사랑채/ 주탣에서 가장 앞쪽에 자리하며, 바깥 주인이 주로 거쳐하는 방이 있는 집채.

 

                                  약간 측면에서 바라본 사랑채, 뒤에 별당이 보인다.

 

  별당/ 몸채에서 떨어져 따로 지은 별채로 처녀나 새댁이 거처하는 방이 있는 집채. 사랑채 뒤에 세워

           져 있다.

 

  안채/ 한국 주택에서 가장 안쪽에 자리하며 주로 아녀자들이 기거하는 생활공간이 있는 집채이다.

 

 큰곳간/ 곡식, 물건, 농자재, 등을 저장하는 곳이다. 안채 앞 안마당 양쪽으로 대칭이 되도록 지어 놓

            았다.

 

 우물과 장독대/ 앞 4각 대리석으로 만들어 세운 것이 우물이고, 장독대도 낮은 담장으로 둘렀다.

 

 

                      의령 유곡면의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 302호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

 

 이 은행나무는 곽재우 장군집 앞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나무는 나이가 500년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21m, 가슴 높이 둘레가 10.3m로 밑둥에서 2m부터 가지가 뻗어 있다. 마을 사람들은 바로 옆에 있는 느티나무와 함께 이 은행나무를 마을을 지켜주는 신성한 나무로 믿고 있다.

 

특히 남쪽가지에서 자란 2 개의 돌기가 여인의 젖꼭지 같다고 하여 젖이 나오지 않는 산모들이 찾아와 정성들이면 효험이 있다하여 많은 여인들이 이곳에 와 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찾아가는 길]

 

의령에서 적포. 신반쪽으로 17.2km 떨어져 있다. 이 일대에는 벽계관광지, 일붕사, 백산 안희재생가, 호암 이병철 생가, 수도사 등 볼거리가 많다.

 

맨 위 이정표로부터 12.2km를 달리면 의병장 곽재우 생가를 안내하는 표지

판이 나온다.

 

위의 이정표를 보고 10m쯤 달리면 왼쪽에 세간교가 있다. 이 다리를 건너

일직선으로 달리가면 곧 현고수가 나오고, 그곳을 지나 골목길로 들어가면

안쪽에 생가를 복원한 집이 나온다.

출처 : 반석 같은 친구
글쓴이 : 푸른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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