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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내 (Gaenea)
흔적을 찾아서

정든 우리 시골집의 향수[3]

by joolychoi 2020. 2. 12.



 

 





 정든 우리 시골집의 향수[3] 



우리 어렸을 때 살던 초가집을 잊을수가 없읍니다.

시골이 고향인 사람들은 꿈과 추억이 서려있던 

고향을 잊을수가 있나요?

 

우리는 지금도 고향의 풍경을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시골에 가보면 다들 떠나고 초라한 모습으로 덩그러니 

남아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던 집은 개내의 윗동네 한 길가(도로가)에 

접한 집이였습니다.초가삼간으로 된 초가집으로 매년 짚으로 

지붕을  잇기도 하였으며,또한 헛간이 있었습니다.

 

싸리 대문집이 었고,사방이 돌 담장이 였으며,

도로에 접한 담장은 돌로 높게 쌓인 돌 담장이였고.집뒤에는

터밭(나무새 밭)이 있어 봄이 되면 씨앗뿌려 상치.시금치

파,마늘,고추,가지등으로 항상 찬거리가  되었습니다.

텃밭 모서리에 소풀(부추)을 심어 가끔씩 베어오셔서 식초에 조려

주셨던 어머니 생각이 간절히 납니다.터밭 한쪽에는 단감나무가 

있었으나,익은 단감을 동네 아이들이 몰래 따먹곤 하였으며,

약초로 심어 놓은“욋제피”나무는 어머님께서 산후풍으로 

고생하셨는데.이 나무를 쪼아 약 단술을 만드셔서 잡수시고 

낳으셨던 기억도 납니다.이 약초는 외가 곳에서

 어렵게 구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마당 한쪽 구석에는 돼지 

우리를 만드셔서 길러 농비 일부 마련하신 것으로 기억됩니다.

 

남은 돈으로 장에 가셔서 고기도  사시고

 고무신도 사시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렵게 살았지만 7남매 였습니다.

행복했습니다.우리를 이렿게 키워주시며 

고생하신 부모님이 정말 그립습니다.


 

헛간에는 한쪽은 욋양간(소 마구)으로 소를 키우셨고 

거름 무더기도 있었으며,한쪽은 통시(화장실.뒷간)로 

사용 하였습니다.겨울밤 바람불고 추운날  쪼그리고 앉아 

무서워서 노래 부르며 볼 일을 봤던 일,여름밤이면 

모기떼가 내 엉덩이를 물어 종기가 나서 고생했던 일,상상의 

나래를 펴보며 그 기억들의 흔적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부억 옆 장독대 부근에는 맨드라미.봉숭아.채송화.나팔꽃.

해바라기등 심어  가꾸어 집을 한결 꾸미기도 했습니다.

 

꽃이 피면 벌,나비등이 꽃에 날라와 앉고,고추 잠자리가 

장독대에 앉으면 잡기도 했습니다,여름 아침 일찍 일어나

 장독대 주변에 가보면 활짝핀 나팔꽃이 이슬을 덤뿍 머금고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면 기쁘기도 하고 반가웠습니다.

 

봉숭아 꽃잎 따다 손톱에 예쁘게 물 드리 던 누나,동생들이 

정답게 웃으며 소리치던 정겨운 광경도 선하게 기억됩니다.

우리집 초가지붕 처마 밑에 즐비하게 달아걸었던 정감넘치는 풍경.

옥수수,꽃감,마늘이랑 깨.메주 등.그 풍경이 

지금도 가물거리기도 합니다.

    

 


우리집 초가 지붕 위에 주렁주렁 열렸던 호박과 박.지붕위에 

자리 잡아 앉은 호박과 박의 정겨운 옛 모습도 생각납니다.

 겨울이면 소죽 끊였던 가마솥에 소 먹이(소죽)준 후 남은 여물로

형제자매 모여앉아 손등에 달라 붙은 때를 씻었던 생각.

목욕탕이 없어 가마솥에 물을 끊여 큰 통안에서 하던 

목욕이 고작이 였을 때입니다.

 

앞마당과 뒤뜰,터밭은 우리집 닭의 놀이터 이기도 했습니다.

앞발,뒷발로 땅을  후벼가며 먹이를 찾아 쪼아

먹던 일.“꼬꼬댁,꼬꼬댁.꼬끼요”울부짖기도 하며

암수사랑 놀음이 시작되면 어릴 때 우리는 신기하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겨울 채비로 비를 맞지 않는 헛간이나 빈 공간에 

겨울 난방용(군불)장작을 비축해 쌓아 두었던 무더기.마당 한쪽에 

 겨울 연료로 땀흘려 준비해 쌓아 둔 땔감 무더기들... 

좁은 마당에는 한치의 여유도 없습니다.

 

추운 겨울밤 온돌방에서의 구들막 차지 경쟁,이불 하나로 

서로 끌어당기는 이불전쟁,하다보면 잠이들고,자다가 추워 

일어나 보면 이불은 당겨가 버리고 같이 잠을 잔 형제들의 발만

 옹기종기 끌려간 이불 밑에 모여있었던 모습.

생각하면 추억이 되기도 합니다.

 

서로 싸우기도 해 울고 있으면 들에 갔다 돌아오신 아버지가 

무서워 울음을  뚝 그치기도 했습니다

부엌 큰 가마솥에 펄펄 끌고 있는 음식.활활 타오르는 

부엌 아궁이,바닥에 놓여있는 장작개비 들.가마솥에서 

“휙.푸우욱 푸우욱--시시”하며 뿜어내며 우렁차게 

내뿜는 김의 소리 모두 그립습니다.

 

집 돌담을 맨발로 걷다가 발밑에 느껴지는 이상 야릇한 감촉

.“물끄덩” 해  놀라 발밑을 보니 돌담 사의로 

지나가는 큰 넝구렁이를 밟아 놀랐던 그때의 기억.아찔했던

 그때의 생생했던 기억이 지금도 느껴 지는 것 같습니다. 

 

공해 때문인지.넝마주의가 산아래 그물망을 쳐 잡아간 

때문인지 농촌에서는 보기 어려웟던 현상이 뱀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 였습니다.그러나 지금은  자연생태 감시로 

뱀을 잡지 못하게 하여 독사로 인한 농민의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고 하니 걱정 스럽기도 합니다.이틈에 잘난 꽃 뱀도 

어스렁 거리기도 한답니다.지금은 고향에서 초가집도 

돌담도 볼수가 없습니다

   

 

구렁이와 쥐들의 싸움 구경을 하신적이 있나요?

어느날 옆집에서 있었던 그 싸움의 현장을 보았습니다.

구렁이와 쥐의 생명을 건 격전이 일어 났습니다.

거짖 같은 이야기 입니다.

큰 구렁이(진댸)가 배가 곺았는지 집 써가래를 타고 

부엌 옥상 천정으로 올라가 쥐의 새끼있는 집을 공격하게 되었읍니다.

그때는 쥐의 천국이던 때였읍니다.


구렁이가 새끼있는 집 가까이 닥아가자 그 주위에 있던 

쥐떼들이“찍찍”소리 내며 구렁이 앞을 가로 막고 

생존 본능과 모성애로 반항했고,일부 쥐떼들은 뱀꼬리 

 부분에서 울부짖으며 사투가 진행 되었습니다.

그래도 구렁이는 계속 직진할 때.꼬리 부분에 있던 쥐 한녀석이 

뱀의 꼬리를 물었읍니다.놀란 구렁이는 몸을 사리기 시작했고 

승패없이 끝이 났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어릴 때 목격했던 일화입니다.

 

해질녁 저녁때가 되었는지 우리집 굴뚝에서 연기나니.옆집,

온마을 초가집  굴뚝에서 함께 연기가 납니다.

저녁밥을 짖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저녘 노을타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도 정겹기도 합니다.

고향은 늘 그립기도 합니다.이제 잊혀져 가고 변화 해가는 

고향이지만 항상 마음 한구석에는 고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고향은 계절마다 그 느낌이 다르고 철마다 느낌은 달리하지만 

언제나 마음의 쉼터 입니다.어릴적 살던 정들었던 

우리 초가집은 없어지고 옛날 한 마을에 살았던 분이 주위를 

정리하여 다 헐어버리고 현대식 건물로 집을 지어 살고 있습니다.

그 집앞을 지나 올때면 내가 살던 그 때의 초가집 향수가 

느껴 집니다.그때의 추억은 남았어도 모두 없어졌습니다.

돌맹이가 밟혀지고 맨발로 걷다가 돌에 부딛혀 

깨진 발가락도 이제 낳은지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흉터는 그냥 그대로 흔적으로남아 있습니다.

 

그때 그 도로도 포장 되였습니다,

고향에는 그때 있었던 초가집은 하나도 없이 변해 버렸습니다,

혼자 그때의 시골 초가집을 스케치 해보기도 합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 갈수 없기에 추억과 함께하는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 때의 주렁주렁 열었던 초가 지붕위의 

호박과 박의 넝쿨이 그립습니다.


이 게시글은 2006년 9.22. 본 불로그에 게시했던 게시물을 
필자가 재 편집해 등재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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