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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내 (Gaenea)
世德叢覽(全州崔氏 按廉使公 宗會)

8.主要人物-14)효자(孝子)효행(孝行)[11]-圭崙23世 -圭庠- 圭升- 智鎬24世- 淙鎬24世

by joolychoi 2013. 5. 6.

 

 

 

  

세덕총람 (世德叢覽)  

  8. 주요인물(主要人物)   

14) 효자(孝子) 효행(孝行)[11] 

 
ㅇ 규륜(圭崙 23世)
통훈공 최세창(崔世昌)의 후이고 최명주공(崔命柱公)의 5세손이다. 노모의
맹증(盲症)으로 앞을 볼 수 없는데 백약이 무효하여 치천치성(祈天致誠)하니
우연히 한 마리의 기러기가 품 안으로 날아들어 오므로 달여 드렸더니
곧 치유되어 광명을 되찾았다. 또 전후  상에는 예에 지나칠 정도로
애훼통심(哀毁痛心)하였으며 향도에서 이 사실을 듣고 포상을 내렸다>
(고성지)
 
 
ㅇ 규상(圭庠 23世)
자는 도숙(道淑)이요 호는 쌍임(雙岩)인데 소계공 후인 죽재공 최전(竹齋公 崔銓)의
손이다. 성품이 침착온자(沈着醞藉:침칙하고 너그러움)하고 효심이 돈독하였다.
선친이 술을 좋아 하였으므로 자신은 술을  끊어술이 부족하지 않도록 준비하였으며
만년에 중풍을 앓아 전신불수가 되었으므로 자신도 지쳐 초훼하여 병아 났으나
간호에는 조금도 소홀함이 없이 오히려 약 시중을 맡아하니 동리에서 은수저로
표상하자 받지 않고 물리쳤다. 마침내 병이 위독함에 이르러 부자가 각 방에서
서로 뉴어 일어나지 못하니 보기가 딱하고 가여웠으나 아버지 보다 먼저 몰(沒)하니
사람들이 모두 애석하게 여겼다. 사립문에 두 돌이 마주하고 있었으니
그 이름을 쌍암(雙岩)이라 하였다.(고성지) 
 
ㅇ 규승(圭升 23世)
일 휘는 규노(圭魯)이고 자는 기언(琪彦)이며 호는 약산(藥山)이다. 4살에 부친을
여위었는데 어머니께서 통곡하면 그 때마다 어머니를 부여잡고 슬프게 따라
통곡하였다. 어머니에 대한 효성도 지극하였는데 어머니 마저 일찍 돌아사시니
애통을 무릅쓰고 상예의 법도에 따라 무사히 상예를 치루었다.
가세가 빈한하였으나 오로지 농사를 지으며 편안한 마음 가짐으로 살았다.
뜻과 기운이 굳세어서 남에게 아부하는 일이 없었고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자신을 낮추었으나 의(義)와 이(利)의 구분에는 날카로운 칼날 같았다.
1930년에 작약산 아래로 집을 옮기고 그 집을 약산유거(藥山幽居)라 하였으며
세상에 나서지 않고 오직 성령(性靈)을 기르고 수양에만 전념하였다.
자신의 몸에 세상의 먼지가 없는 것을 보았고 법도를 실천하며 집안에서는
가르침으,ㄹ 행하니 향리에서 효성.우애. 학문이 뛰어난 집안을 말할 때는
언제나 공의 집안을 첫째로 꼽았다고 한다. (세헌록)
(주) 최규승(崔圭升):찰방공 최진호의 후이고 최필해(崔必海)공의 손
 
ㅇ 지호(智鎬 24世)
자는 응삼(應三)인데 통훈공 최세창(崔世昌)의 후로 오정공 최여재(梧亭公崔汝載)의
5세 손이며 통훈공 최문권(崔文權)의 자이다.
친수(親壽) 84세에 환우 위독하여 의원도 투약을 중단하고 임종을 맞으니
통곡하며 대신 죽기를 원하여 두 주야를 잠을 자지 아니하고 단하(壇下)에서
노숙하였으며 다시 3년을 시묘살이를 하였다. 87수로 향수하니 관에서 사실을
 듣고 동몽교관의 증직을 내렸다.(고성지)
 
 
ㅇ 종호(淙鎬 24世)
자는 명보(明甫)이고 호는 약암(約庵)이다. 의민공 최균(최均)의 후이고
농호공 최상석(崔祥錫)의 현손으로 숭조경현(崇祖敬賢)의 정성이 독실하였다.
상모(相貌)와 용력(勇力)이 출중하여 효심이 남보다 지극하여 모친이 병석에서
수년간 신고할 때 어린 나이에 백방으로 약을 구해  시탕하였으며,부공(父公)에게는
저녁에는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을 드렸으며 외출할 때는 고(告)하고
돌아와서는 찾아 뵙고 또 맛있는 음식으로 봉양하였음므로 2003년 5월
고성향교에서 포상(褒賞)하였다.
부모 상중에는 아우와 함께 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성묘하여 그 효성이
지극하여 종향으로 부터 칭송이 자자하였다.(향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