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명(譜名)은 병열(柄烈)이다. 어려서 부터 지극항 정성이 있어 정성(定省)과
온정은 뜻에 따라순종하고 또는 체질에 적합하게 하여그 힘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어머니가 낙상으로 위급함에 공의 꿈속에 신인(神人)이
영초(靈草)를 지시 함으로 그 곳에 가니 그 약초를 얻어 효과를 보았으며
또 등창으로 공이 그 아내와 더불어 핥아서 완치케 하였고 어머니가 연로하여
설사를 함에 매일 손수 세탁하였다. 임종에 이르러 단지하여 명을 연장하였으나
대고(大故)를 당함에 5일을 단식하고 장사 후에는 반드시 매일 성묘하며
3년을 하루같이 하였다. 그리고 유복으로서 그 아버지 얼굴을 알지 못함을
한탄하여Tr도 또는 장지가 불리함으로 근처에 이장함에 그 때 혹한으로
종보(從步)하여 그 시신을 뫼시고 20여리를 행하였으니 두 발이 터져 갈라졌다.
타인이 대신하고자 하면 “ 내 이것으로서 만분의 일이라도 정을 보답하겠다.”
하고 애통함을 초상과 같이 하였으니 처자들이 그 정성에 감화되었고
향중이 그의 이(理)에 굴복하였다. 향중의 인사들이 그 사적을 편찬하여
국지(國誌)에 등재하였고 마을에 효자비를 세웠다.
(주)최주봉(崔周奉):참봉공 최하의 후이고 추봉공 최달성(崔達城)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