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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德叢覽(全州崔氏 按廉使公 宗會)

8.主要人物-14)효자(孝子)효행(孝行)[5]-應德20世-必漢21世-必鴻-必湜-國亨-必廣21世

by joolychoi 2013. 3. 28.

 

 

세덕총람 (世德叢覽) 

 

  8. 주요인물(主要人物)   

14) 효자(孝子) 효행(孝行)[5]  

ㅇ 응덕(應德 20世)
자는 일려(一呂)이고 훈신 최강공(崔堈公)의 8세 손이다. 아우 최응정공(崔應鼎公)과
더불어 부모 봉양의 뜻을 깆추고 부친이 병들자 형제가 용당(龍塘)앞 개울에서 얼음을
깨니 두자 되는 잉어가 뛰어 올라와 잡아서 드렸다.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모처(某處)를 파보라고 하여 파보니 새겨진 글자가 없는
깎은 비석을 얻게 되었다. 이는 하늘이 효성에 감동한 소치라 하고
향도(鄕道)에서정려를 추천하였다. 고성군 구만면 광덕리 도로변에
효자비가 있다.(환여승람. 고성문화유적지)
 
 
ㅇ 필한(必漢 21世)
통덕랑공 최흥호의 후이고 효자 최광첨공(崔光瞻公)의 손이다.
뷰모의 병환에 상분열지(嘗糞裂指)의 정성을 다하니 모두 그 효심에 경탄하였으며
아우 필진공(必震公)과 함께 자극한 행의로서 향리의 추증을 받았다.(고성지)
 
ㅇ 필홍(必鴻 21世)
자는 대달(大達)이요 호는 이정(耳亭)인데 통덕랑공 최흥호의 후이고
백인재공 최상집(百忍齋公崔祥集)의 자이다.
매년 봄에 유행하는 역병(疫病)에선공(先公)께서 걸리지 않도록
거처를 옮겨 모시고 피접하였으며 의원을 불러 아이들은 반드시
종두(種痘)를 부접(付接)토록 하였고, 세역(歲疫)이 끝난 뒤에라야
본 집으로 모셨다. 환우로 편치 못할 때에는 상분(嘗糞)의 정성을 다했고
평소 넉넉한 살림인데도 비단옷을 걸치는 일이 없었으며 검소한 생활로
후손들을 깨우쳤다.돌아 가신 후에유림에서 누차 장계를
올려 천거하였다.(고성지)

ㅇ 필식(必湜 21世)

자는 태현(泰見)이고 호는 죽포(竹圃)이다. 명망 최제회공(崔際會公)의 현손이다.

재종숙 경재공 최상순(絅齋公崔祥純)에게 수학하고 학문을 생각함이 날로 

나아갔다. 성품은 효성이 지극하고 부친이 등에 종기로 고생하자 밤낮으로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고 기력이 쇄진하여 육(肉)으로서 보하지 아니하면

회복하기 어렵게 되자 몸소 도끼를 들고 소를 잡으려는 때에 기(箕)를  짊어진

백정(白丁) 한 사람이 찾아와서 능숙한 솜씨로 도축한 후 삯도 받지 않고

가버리니 사람들은 지극한 효성에 하늘이 감응한 소치라고 하였다.(환여승람) 

ㅇ 국형(國亨 21世)

자는 국노(國老)이고 통훈공 최세창(崔世昌)의 8세 손이며

가선공(嘉善公) 최상옥(崔尙玉)의 자이다.

효행에 있어 증 지평(持平)이고 정려가 있다. (환여승람)

ㅇ 필광(必廣 21世)

자는 응원(應遠)이고 호는 매줄(梅崒)이며 유일 최거산공(崔巨山公)의 후이다.

효성이 출천하여 부모 봉양이 극진하고 부찬 병이 중하여 앉지도 눕지도

못하자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대소변을 친히 받아내고 별세하자 3년 상을

예를 다하여 받드니 향리에서 찬양하였다>(환여승람)

(주) 족보등재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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