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아들이 월드컵 스타가 되면서 집안이 안정을 찾자,
김씨도 자신의 삶을 되찾았다. 2007년부터는 인천 중구 구의회
의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아들이 스타가 되고 나도 덩달아
유명해졌지만 이력에 '초등학교 졸업'이라고 적혀 있는 걸 보면
바늘로 가슴을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최근 4년간 이 학교를 다니며
중·고 과정을 모두 마쳤던 것이다.
이날 성인반 졸업식엔 김씨 말고도 사연 많은 만학도들로 가득했다.
중국집 주방장, 철물점 주인, 택시 기사 등 갖가지 직업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김순자(57)씨는 간암 수술을 받고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후 "어려서 공부하지 못한 한을 품고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성인반에 입학했다. 남편은 "건강 생각해서 검정고시를
보라"고 만류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은 학교생활에
체중이 감소하고 감기에 걸리는 등 건강이 악화되기도 했다.
주치의는 휴학을 권했지만 김씨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수석졸업의 영예까지 안게 됐다.
그는 졸업 후 방송통신대에 진학한다.
두 다리에 장애가 있는 김영옥(57)씨는 체육대회와 수학여행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그는 "전교생이 기차를 타고 소풍을
갈 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따로 승용차를 타고 소풍에
참석했던 일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인천의 한 아파트 주민회에서 서기 일을 하고 있는
박춘옥씨는 "학교에서 회계원리, 세무회계, 엑셀을 배워서
이제는 관리소장, 회계, 총무까지 도맡아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날 182명의 졸업생을 대표해 답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올랐다. 답사를 읽는 박씨의 목소리가 울음으로
잠겨들자 181명의 동창들이 박수를 치며 격려했다.
"먹고살기도 바빴던 어린 시절 진학이란 꿈도 꾸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한을 가슴 깊이 묻어둔 채 자식들 뒷바라지에
정신없이 세월은 흘러갔습니다. 그러나 반백년이 훨씬
지나서야 이 나이에도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쁨과 설렘으로 온몸에 전율을 느꼈던 그때
일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모두들 그 전율을 잊지 말고
남은 생을 힘차게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