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개 내 (Gaenea)
좋은 미디어 기사

살맛나게 해주는 두 사람 이야기

by joolychoi 2013. 2. 24.

 

 

 

 

 

 

 
  살맛나게 해주는 두 사람 이야기    

<오래전 중앙일보 칼럼에 실렸던 글>

 

변신의 명수, 카멜레온 정치인들을 착찹한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기회주의자가 정치권에만 있을까 만은,

그래도 세상 살맛나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마음의 위안을 가져 봅니다.

(前略)

신임 대법관 조무제씨의 재산은 부산에 있는

25평짜리 아파트(시가 6,000여만원) 한 채와

예금 1,075만원이 전부였다.

그의 말대로 재산이 적은 것

그 자체가 자랑은 아닐런지도 모른다.

 

"비록 재산이 많지는 않지만

대법관 봉급으로 충분히 생활할 수 있다."며

칭찬이나 호의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은

일견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의도한 건 아니나 바로 그런 자세가

그를 더욱 더 돋보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딸깍발이'란 지칭 그대로 청렴과

원칙주의가 몸에 밴 사람이었다.

창원 지법원장 시절 부산에서 출퇴근하게 되자

그는 관용차는 창원 관내에서만 타고

부산에서 창원까지는 버스 이용을 고집했다.

"그 분은 마치 도를 닦는 사람같이 느껴진다."는

주위 법관들의 말도 과장이 아닌 것 같다.

 

양심의 자유에 반한다며 준법서약서 제출을 거부해

아직도 복역 중인 최연소 장기수 강영주(36)씨의

사연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그의 용기도 용기지만

그 어머니 조순선(72)씨의 꿋꿋함이

아들 못지않게 감동적이다.

 

12년 전 처음 면회 갔을 때 전향하면

3년만 살면 된다는 교도관의 말을 듣고

기뻐서 아들에게 전향을 권유했다. 그때 아들은

"그런 말 하시려면 다신 오지마세요"라고 잘랐다.

그 말을 들은 뒤로는 조씨는

이제껏 전향에 대해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다.

 

정부가 준법서약서 제도를 발표한 뒤 비로소

어머니는 12년 만에 말을 꺼냈다.

"너는 준법서약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 주세요."

형기는 2006년에 끝난다.

"내가 2006년이 되기 전에 죽으면 어떻게 할래?"

"우리 어머니는 절대 안 돌아가실 거예요."

다시 모자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래, 저승사자가 오라고 해도 절대 안 갈란다.

힘내고 건강하게 있어라."

"어머니, 감사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강씨와 생각을

달리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강씨의 신념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다른 견해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상과 신념을 위해

헌신하는 그 자세만은 평가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원칙과 신념을 지키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적다. 대부분이 현실주의자다.

 

여당에도 야당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얼굴들이

합류하는 데도 정치의 모습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은

그 새 얼굴들마저도 기존의 구조와 환경에

적응해 현실적 이득을 얻기에 급급했지

현실적 손해를 감수하면서 자신의 소신과 포부를

지켜나가는 용기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 인물이 부족한 게 아니라

신념과 용기가 부족한 것이다.

 

작금의 고액과외사건도 마찬가지다.

사연 하나하나를 들어보면 다 이유가 있고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다.

좋게 말하면 그들은 현실적 이득이나

필요 앞에 도덕적 책무를 잠시 잊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건 없다.

우리들의 사회는 결국은 상황에 뛰어난

적응력을 보이는 현실주의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현실적 불이익과 고통을 감수하면서

이상과 신념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에 의해

변화하고 발전하는 법이다.

 

조씨와 강씨의 사연이 다시 한번

읽혀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중앙일보 유승삼 칼럼 > 중에서--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