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는 야누스 같은 공간이다. 우리가 보릿고개를 넘던 1960~70년대 세운 화려한 마천루가 객(客)을 놀라게 한다. 반면 40년간 멈춰 선 성장의 음영(陰影) 또한 급성장이 몸에 밴 객의 눈에 슬프다. 정치는 흥망(興亡)의 요술 방망이, 도시는 그 전시장이다.
6·25전쟁 때 유엔군의 일원으로 우리를 도왔고 한때 일본에 이어 아시아 제2위 경제 대국이었던 필리핀이다. 그러다 독재와 빈부(貧富) 격차로 몰락한 그 땅에 코리안이 몰려들고 있다. 상주 인구만 17만에, 한 해 관광객이 70만명에 달한다. 일제강점기 만주(滿洲)처럼 인종의 용광로가 된 이곳 한국인들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건실한 직장인과 자영업자 주변으로 주폭(酒暴)과 건달과 법망을 피해 달아난 흉악범들이 활개친다. 그 위로 몇 안 되는 유명인이 있다.
그레이스 리, 본명 이경희(李景熙·30)는 ‘필리핀의 여자 강호동’쯤 되는 인물이다. 필리핀 3대 민방인 GMA에서 그는 보도·연예·스포츠 분야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많을 때는 주중 5개, 지금도 3개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웬만한 연예인 뺨칠 만큼 인기 있던 그가 새삼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올 초 우리가 지금은 새누리당 의원이 된 이자스민 이야기로 열을 올릴 때였다. 느닷없이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과 열애한다는 설이 터진 것이다. 1982년생 젊은이 인터뷰가 성사된 배경엔 필리핀 한인들의 비원(悲願) 같은 게 있었다. 주요 8대 패밀리가 번갈아 대통령을 낸다는 나라에서 ‘퍼스트레이디’의 무게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혼인 성사까지 갈지는 하늘만 알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한국인인가 필리핀인인가?”
그레이스 리는 예상외로 크지 않았다. 신장 162㎝에 체중이 49㎏이라고 했다. 눈치 빠른 아가씨는 기자가 묻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꿈이 미스코리아가 되는 거였어요. 키 때문에 포기했지만요.”
―초등학교 4학년 때 필리핀으로 이민 왔습니다.
“1992년, 도곡초등학교 다닐 때였어요.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가 90년대 초부터 필리핀을 드나드셨어요. 너무 어려서 ‘이민’이 뭔지도 몰랐어요. ‘부모님이 가니 당연히 나도 가야 하는구나’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와서 차별이랄까, 놀림을 당하진 않았습니까.
“아주 어렸을 때 와서 그런지 그런 것은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필리핀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굉장히 친절한 편입니다. 말이 힘들었지만 영어는 8개월 정도 되니 의사소통이 됐고요. 필리핀어인 타갈로그가 어려웠지만 1년 반 만에 깨치니 언어도 별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역시 강남 출신이라 영어 선행(先行) 학습이 효과를 본 모양입니다.
“어휴, 아니에요. 80년대 강남은 지금 같지 않았어요. 저는 영어 알파벳 ABC를 이곳에 와서 배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