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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아키노 대통령과 열애…한국인 방송 진행자 '그레이스 리'

by joolychoi 2012. 6. 26.

 

 

 

 

그레이스 리(본명 이경희)는 필리핀 방송가에서 가장 인기있는 진행자였다. 그랬던 그가 아키노 필리핀대통령과의 열애설로 다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레이스 리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아키노 대통령과의 만남과 연애과정을 털어놓았다. /문갑식 기자
 
  필리핀 아키노 대통령과 열애 … 한국인 방송 진행자 '그레이스 리' [Why] [문갑식의 하드보일드]   

대통령의 연인
열애 보도, 대통령보다 더 놀란 부모님 "왜 그 많은 남자 중에…"
필리핀의 '오프라 윈프리'- 보도·연예·스포츠… TV·라디오 종횡무진
22년 나이차 극복한 사랑- 일주일에 2번 데이트, 문자는 하루 10번씩

마닐라는 야누스 같은 공간이다. 우리가 보릿고개를 넘던 1960~70년대 세운 화려한 마천루가 객(客)을 놀라게 한다. 반면 40년간 멈춰 선 성장의 음영(陰影) 또한 급성장이 몸에 밴 객의 눈에 슬프다. 정치는 흥망(興亡)의 요술 방망이, 도시는 그 전시장이다.

6·25전쟁 때 유엔군의 일원으로 우리를 도왔고 한때 일본에 이어 아시아 제2위 경제 대국이었던 필리핀이다. 그러다 독재와 빈부(貧富) 격차로 몰락한 그 땅에 코리안이 몰려들고 있다. 상주 인구만 17만에, 한 해 관광객이 70만명에 달한다. 일제강점기 만주(滿洲)처럼 인종의 용광로가 된 이곳 한국인들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건실한 직장인과 자영업자 주변으로 주폭(酒暴)과 건달과 법망을 피해 달아난 흉악범들이 활개친다. 그 위로 몇 안 되는 유명인이 있다.

그레이스 리, 본명 이경희(李景熙·30)는 ‘필리핀의 여자 강호동’쯤 되는 인물이다. 필리핀 3대 민방인 GMA에서 그는 보도·연예·스포츠 분야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많을 때는 주중 5개, 지금도 3개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웬만한 연예인 뺨칠 만큼 인기 있던 그가 새삼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올 초 우리가 지금은 새누리당 의원이 된 이자스민 이야기로 열을 올릴 때였다. 느닷없이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과 열애한다는 설이 터진 것이다. 1982년생 젊은이 인터뷰가 성사된 배경엔 필리핀 한인들의 비원(悲願) 같은 게 있었다. 주요 8대 패밀리가 번갈아 대통령을 낸다는 나라에서 ‘퍼스트레이디’의 무게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혼인 성사까지 갈지는 하늘만 알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한국인인가 필리핀인인가?”

그레이스 리는 예상외로 크지 않았다. 신장 162㎝에 체중이 49㎏이라고 했다. 눈치 빠른 아가씨는 기자가 묻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꿈이 미스코리아가 되는 거였어요. 키 때문에 포기했지만요.”

―초등학교 4학년 때 필리핀으로 이민 왔습니다.

“1992년, 도곡초등학교 다닐 때였어요.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가 90년대 초부터 필리핀을 드나드셨어요. 너무 어려서 ‘이민’이 뭔지도 몰랐어요. ‘부모님이 가니 당연히 나도 가야 하는구나’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와서 차별이랄까, 놀림을 당하진 않았습니까.

“아주 어렸을 때 와서 그런지 그런 것은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필리핀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굉장히 친절한 편입니다. 말이 힘들었지만 영어는 8개월 정도 되니 의사소통이 됐고요. 필리핀어인 타갈로그가 어려웠지만 1년 반 만에 깨치니 언어도 별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역시 강남 출신이라 영어 선행(先行) 학습이 효과를 본 모양입니다.

“어휴, 아니에요. 80년대 강남은 지금 같지 않았어요. 저는 영어 알파벳 ABC를 이곳에 와서 배웠어요

―필리핀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바할라나’라는 말이 있어요. 영어로 번역하면 ‘Let it be’(그대로 놔두라)쯤 될 겁니다. 필리핀 사람들은 웬만하면 스트레스를 안 받아요. 큰 지진이 나서 집이 없어진 사람을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울고불고 했을 텐데 그가 ‘살아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걸 보고 속으로 놀랐어요. 한국인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잖아요. 그러니 50년 만에 그렇게 빨리 발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왜 한국인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생각합니까.

“이민 온 뒤 1년에 한 번씩은 꼭 한국에 갔어요. 그때마다 목격한 게 있습니다. 유치원생들이 학원 가는 버스 타는 모습이었죠. 한결같이 표정이 어둡더군요. 필리핀의 또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데. 전 이렇게 생각해요. ‘아이’로 불리는 시기는 길어야 10년이잖아요. 놀이터에 아이가 없고 학원에만 아이가 붐비면 곤란한 것 아닌가요.”

―이민 온 지 20년이 지나는 동안 다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겠죠.

"어려운 시절이 있긴 있었죠, 정체성의 위기랄까. 나는 한국인인가, 필리핀인인가. 제가 필리핀 사람처럼 되고 나니 '나는 왜 필리핀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하는 의문이 생겼어요. 친구들이 잘해주긴 했지만 그들의 그룹에 속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건 아마 부모님 영향도 있었을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필리핀에서 저희는 부모님과 지금 대학 다니는 여동생 딱 네 명뿐이었어요. 가족이 뭉치고 서로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죠. 부모님이 엄격했어요. 딸만 둘이어서 더 그러셨을 거예요. 친구들이 가는 파티 같은데 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초중고를 전부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닌 겁니까.
"아무래도 엄격하니까. 세인트 폴 파식(Pasig)이라고 초중고 재단이 같습니다. 수녀님들이 전부 교장으로 계셨어요. 대학은 아떼네요 마닐라를 나왔습니다."

―그 학교는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한국에선 이자스민 의원 나온 대학이 명문이냐 아니냐를 놓고 말이 많은데.
"한국으로 치면 고대(高大)쯤 될 겁니다(여러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이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전공은 처음엔 변호사가 될 생각에 정치학을 했는데 도중에 바꿨어요. 커뮤니케이션과 중국학으로요."

―변호사가 되려던 목표가 왜 방송인으로 바뀐 겁니까.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을 결국 직업으로 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필리핀에 와서도 학교 행사의 진행 같은 걸 도맡아 했거든요.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생각에 GMA에 응시했고 2007년 6월쯤 합격했어요. 오프라 윈프리를 좋아한 것도 이유가 될 겁니다. 저도 언젠가는 그분처럼 지성적이면서도 프로듀싱부터 대본 쓰는 것까지 다 해보고 싶어요."

―필리핀도 방송사 입사 경쟁률이 세지요.
"한국처럼 완전한 공채(公採)는 아닙니다. 응시해 이력서 내고 오디션 보면서 계속 탈락시키는 것은 같지만요. 그해 저를 포함해 동기(同期)가 9명이었는데 지금은 저 혼자만 남았습니다. 필리핀은 학교도 직장도 어디나 그래요. 입학은 쉽지만 생존이 힘들지요."

작년 연말 단독인터뷰를 하는 아키노 대통령과 그레이스 리.
 
"꿈을 꺾는 것은 그를 죽이는 것이다"

그레이스 리가 방송인으로 데뷔한 프로그램이 '스위트 레이트(Sweet late)'였다. 여성을 위한 매거진 같은 내용으로 여행·미용·피트니스까지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그는 성공 가도(街道)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지금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뭡니까.
"아침 6시부터 9시까지 3년 반 동안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 '굿타임스(Good times)'는 최근 리모델링을 하기 위해 중단한 상탭니다. 지금은 월·수·금 오전 9시 반부터 '스타와 요리를(Cooking with Stars)'과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엔터테인먼트 뉴스를 진행합니다. 주말에는 오후 6시부터 '24시간(24Hours)'이란 쇼를 맡고 있고요."
―뉴스부터 요리, 여성, 스포츠, 인터뷰까지 진행한다면 대체 직업을 뭐라고 해야 합니까.
"TV 호스트가 제일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프로그램을 이끌며 진행하는 자리죠."

―평소에 말을 잘하다가도 마이크만 잡으면 얼어붙는 사람들이 있지요.
"전 반대입니다. 무대 밑에서는 그렇게 떨릴 수가 없는데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달라지거든요."

―지금의 그레이스 리를 만든 프로그램이 뭔가요.
"라디오에선 최근까지 진행한 '굿타임스'였고 TV에선 '디스 이즈 잇(This is It!)'이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일종의 재능 경연(競演) 쇼인데 2년 반 동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유가 있어요. 워낙 유명한 프로덕션이 뒤를 받쳐줬거든요. 30년 가깝게 방영되는 '이트 벌라가(Eat Bulaga)'라는 프로그램이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장수(長壽) 쇼인데 바로 그걸 만든 프로덕션이 저희와 함께 한 거예요. 행운이었죠."

―실패한 프로그램도 있었겠지요.
"'이터리아(Eatera)'라는 음식에 대한 쇼였는데 3개월 만에 하차했어요. 경쟁 방송사에 대항하기 위해 제가 투입된 것이었는데 그쪽이 9% 시청률을 올릴 때 전 6%에 그쳤거든요. '그만하자'는 통보를 받고 마지막 촬영을 할 때가 생각나네요."

―그리 낮은 시청률은 아닌 것 같은데.
"그때 방송 일을 시작한 후 처음 울었어요. 제 이름을 간판에 내건 쇼였거든요. 너무 아쉬워 그날 밤에 친구들과 술을 마셨어요.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료품점에서 소주를 몇 병 슬쩍해 나갔죠."

―한국의 TV 호스트 중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강호동씨가 최고인 거 같아요. 마음도 넓고 깨끗한 분 같은데…. 신동엽씨도 좋아합니다. 유재석씨도 잘하는데 그분 조크는 제가 들어도 잘 이해를 못 하겠어요. 앵커 중에는 저녁 늦게 뉴스 진행하는 분, 목소리가 굵고 이목구비가 뛰어난 여성이 있는데 이름은 기억이 안 나네요."

―강호동은 각종 구설에 올라 TV를 떠났는데 만일 필리핀이었어도 그랬을까요.
"여기였다면 몇 달 정도 쉬는 걸로 끝났을 텐데…. 전 그분이 컴백한다면 언제든 환영할 겁니다."

―강호동의 사례를 얘기했지만 방송계에는 흑막(黑幕)이 많지요. 한국에선 연예인으로 데뷔시켜주겠다며 여성을 농락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필리핀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비슷해요. 전 나이 들면 후배들을 키우는 역할을 할 겁니다. 돈이나 다른 것을 노려 남의 꿈을 꺾는 것은 그들을 죽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필리핀 방송계는 여성 입장에서 안심할 부분이 있긴 해요. 남자 관계자 가운데 70~80%가 게이(Gay)거든요. 메이크업 룸에 들어오는 남자는 90%가 게이고요. 무섭진 않아요. 제 친구 중에도 게이가 많거든요."

―여성 입장에선 몸 관리도 스트레스가 되죠.
"제가 뭘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입니다. 다이어트에 특별히 신경을 썼는데도 마지막 5㎏이 정말 힘들었어요. 54㎏쯤일 때 한국 분의 도움을 크게 받았습니다."

―뭔가요, 그게.
"오칸(O'KHAN)이라는 한약(韓藥)이었습니다.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장을 지낸 김호순 원장님을 소개받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어요. 그분이 필리핀에 자주 봉사단을 보낸 게 인연이 됐어요."


그레이스 리는 각종 CF모델로도 활약하고 있다. 한때 연기에도 도전했으나 꿈을 접으면서“연기는 90%가 재능에 의해 결정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게 연기”라고 말했다. /그레이스 리 제공
휴대폰 문자로 온 데이트 신청

대화 도중 그레이스 리가 돌연 네티즌들의 악플을 화제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가 조롱받고 상처받았음을 간접 암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올해 2월 보도된 아키노 현 대통령과의 염문(艶聞) 때문이었을 것이다.

―본인에 대한 네티즌들의 평가를 읽습니까.
"예전에는 읽었지만 넉 달 전부터는 안 읽습니다. 처음엔 저도 반성할 부분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남들이 무책임하게 이야기하는 것에 제 삶이 휘둘리는 게 싫어졌어요.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계기가 '아키노 대통령과 사귄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입니까.
"제게는 한마디도 확인을 하지 않은 내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항의할 수도 없었어요. 3~4개 신문의 프런트 페이지에 나왔으니까요. 전 기자들이 사실 80에 20을 부풀릴 순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이건 100% 거짓말이었어요. 저는 억울한데 그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고 더 속상했어요. '그레이스는 왜 (데이트 사실을) 말하고 다니느냐' '김칫국 마시네' '이 일을 이용해 더 유명해지려는 속셈이다' 같은 비아냥 일색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싱가포르로 도망갔지요. 이틀 동안 꼼짝도 않고 있었어요."

―한국에 알려지기론 작년 6월 켐코가 필리핀 세부에서 파워플랜트 준공식을 할 때부터 관계가 시작됐다던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그때 그분이 한 말은 '호스트(그레이스 리)가 필리핀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한국인이어서 놀랐다'는 정도였어요."

―어쨌든 사귀는 건 맞잖아요.
"작년 말 이명박 대통령이 필리핀을 방문하기 직전에 말라카낭궁(宮·대통령궁)에서 연락이 왔어요. 이름을 밝히기 어려운 어느 장관님이었는데 '한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만찬이 있으니 필리핀에 사는 한국인이 10분 정도 스피치를 해달라'는 부탁을 하시더군요. 자기 아들이 제 팬이라면서요."

―그 자리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필리핀 사람들이 절 사랑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인기를 누리며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게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부자(富者)가 아니지만 꿈을 키워 결국 성공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우리 모두 희망을 가지고 살자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나온 아키노 대통령이 그 스피치에 감동했다?
"그건 아니고요. 그 장관께서 제게 그러더군요. 스피치를 해주는 대가를 주고 싶다고요. 전 돈은 필요 없고 부모님을 만찬에 초청해주시면 고맙겠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흔쾌히 수락하면서 '언젠가 신세를 갚겠다'고 하셨어요. 사실 만찬 때 굉장히 긴장했습니다. 양국 대통령이 모두 나오는 자리였으니까요. 스테이크가 나온 것으로 기억하는데 떨려서 입에 대지도 못했습니다."

―그 뒤 아키노 대통령을 다시 만난 겁니까.
"'한 해의 마지막(Year's End)'이라는 송년(送年)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을 인터뷰해야 하는데 그 장관님이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전화를 했죠, 도와달라고. 그분이 연결해주셔서 대통령과 20분간 독대(獨對)를 했어요."

―독대 자리에서 대통령이 '나는 그레이스가 마음에 든다'고 고백하시던가요.
"어휴, 그건 공식적인 자리인데…. 인터뷰가 끝난 며칠 뒤 휴대폰으로 문자가 왔어요. '친구들과 파티가 있는데 함께 가자'는 내용이었어요. 처음에는 누가 장난치는 줄 알았어요. 그 장관님께 '이 번호가 대통령 것이 맞느냐'고 확인해봤어요. 그런데 진짜였어요."

―첫 데이트인 셈인데 최고로 멋진 옷을 입고 갔나요?
"검은색과 하얀색을 믹스한 원피스였어요. 여자들은 누구나 옷장을 처음 열 때 마음이 끌리는 옷을 입습니다. 정말 친한 친구분들과 치른 작은 파티였는데 2시간쯤 함께 지내다 제가 먼저 나왔어요. 다른 파티 약속도 있었거든요. 전 그때만 해도 데이트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인터뷰해줘서 '감사하다(Thank You)'는 정도의 초청이었다고만 여겼어요."

―부모님이 엄격하다면서 이런 사실을 사전에 알렸습니까.
"어머니가 너무 놀라실 것 같아 말씀드리진 못했어요. 아마 말씀드렸으면 사소한 걱정을 많이 하셨을 겁니다."

"우리는 상처받을 관계가 아니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시작됐다. 그러던 올 2월 초 마닐라 중심부 마키키의 호텔 레스토랑에서 둘이 식사하던 장면을 누군가 목격했다. 그가 이 사실을 언론사에 트위터로 제보했고 그것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됐다.

―대통령이 그 뉴스를 보고 화내던가요.
"오히려 절 위로해주시던걸요. 본인은 더 심한 일로 언론에 당한 적도 있다면서요. 대통령보다 놀란 분은 부모님이었어요. 한참 말을 못 하시다가 '왜 하필이면 그 많은 사람 중에…'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큰딸이고 나이도 있으니까."

―주변에선 뭐라고 하던가요.
"다들 놀라긴 마찬가지였습니다. '행운을 빈다'(Good Luck)라고 한 분도 있고 '우리는 너를 믿는다'(We trust you)고 한 사람도 있습니다."

―두 분의 데이트 주기(週期)는 어느 정도입니까.
"스케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주일에 2번…. 평소에는 휴대전화 문자로 소식을 전하지요. 하루에 10차례 정도 문자를 합니다."

―만나면 뭘 하고 지냅니까, 서로 유명해서 갈 데도 별로 없고 할 일이 그리 많을 것 같지 않은데.

"대통령은 음악 밴드를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가수를 소수 친구들과 함께 초청해 즐기시죠. 대화를 편하게 이끄는 재주가 있는 분입니다. 취미 얘기를 꺼내 딱딱한 분위기를 풀어주기도 하시고요."

―시샘인지 여자의 적(敵)은 여자란 말이 맞는지 한국 여자 가운데 그레이스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이 많습니다. 이름을 알리려는 얄팍한 수작이라고.
"그런 시각엔 분명히 말씀드릴 게 있어요. 전 그분이 아니더라도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사람입니다. 뭐가 부족해서 그러겠어요."

―대통령이 52세인데 지금까지 왜 혼자 산 겁니까. 여자 친구도 많다던데.
"아시다시피 부친이 암살당한 베니그노 아키노 전 상원의원(1932~1983)이시고 어머니가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이십니다. 그런 부모를 둔 자식으로서 많은 것을 배우셨겠지만 제가 감탄한 것은 그런 비극을 겪으셨으면서도 사람을 편하게 해주고 잘 웃는다는 겁니다. 여자 친구가 많은 것은 당연하겠지만…. 아직 짝을 못 찾은 거 아닐까요?"

―나이 차이가 스무 살이 넘는데 서로 어떻게 부릅니까. 그레이스, 아키노 이럽니까?
"대통령은 절 그레이스라고 하십니다. 전 가능하면…호칭을 피하고요."

―'이렇게 미리 소문이 나면 정작 결혼하는 것 못 봤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부모님도 그런 걱정을 하시고 앞날을 제가 알 수는 없지만… 사귄 지가 육개월이면 알 만큼 알 시간이고. 저희의 관계(Relationship)가 서로 상처를 주고받을 레벨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친김에 미안한 질문 하나 더, 그런데 왜 저를 만난 겁니까? 그걸 보고 '거 봐라! 역시 그레이스가 유명해지려고 대통령을 팔아먹으려 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꾸 근거 없는 루머가 나오는 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정통 신문기자와 만나 제대로 진심을 밝히고 싶었어요. 물론 저와 인터뷰할 기자의 평판도 들어봤고요."

―TV에서도 인기고 대통령과 관계도 있는데 영화 출연 제의 같은 건 안 받아봤나요.
"받은 적은 있습니다. 이번 일이 있기 오래전에요. 그런데 1주일 정도 연기 지도하는 워크숍에 참가해보니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자꾸 캐릭터 연기하는데 웃음이 나서요.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연기에선 재능이 90%이고 노력은 10%라고요. 재능이 없는데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혹시 국내 방송에서 출연 제의가 온다면.

"해보고는 싶은데 아직 연락 온 적은 없는데요?"

이경희는 조국을 잊지 않으려 한국 요리를 배우고 1년에 한 번씩은 꼭 내한한다고 했다. 의례적인 수사(修辭) 같아 "이름을 한자로 써보라"고 했다. 거침없이 노트에 적어놓은 필체를 보고 그가 한국을 잊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문갑식 기자(입력 : 2012.06.23 03:08 | 수정 : 2012.06.25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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