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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德叢覽(全州崔氏 按廉使公 宗會)

주요인물(主要人物)-13)인물:正義24世-弘模24世-禎模24世-正蘊 24世-甲鎬 24世-斌鎬 24世 [31]

by joolychoi 2012. 12. 7.

 

 

 

세덕총람 (世德叢覽)  
 
 
  8. 주요인물(主要人物)   
13) 인  물(人 物)-[31]   
ㅇ정의(正義 24世)
자는 일부(逸夫)이고 호는 일사(逸史)이다. 타고난 천품이 뛰어나고 총명하여
재지(才知)와 기량이 범인보다 초월하였다.품행이 독실하여 히 치의 어긋남도 없었으며
효우 돈목하여 안빈낙도로 영달을 구하지 않고 문예릉 일찍 성취하여 경사(經史)에
박통하고 선조의 미덕을 이어받아 후진들을 민첩하게 가르쳐서 끝내 임천(林泉)에서
생을 마치니 사우(士友)들이 추중하였다.(향교지)
(주)최정의(崔正義):해정공 최수강의 후이고 만각재공 최필완(崔必完)의 증손
 
ㅇ홍모(弘模 24世)
일 휘는 제호(悌鎬)이고 자는 문거(文擧)이며 호는 심천(心泉)이다. 어릴때 부터
학문에 힘써 성장하매 문필이 뛰어나 지방에서 칭송과 존경을 받으니 사람들이
말하기를 " 공위 재주는 따를 수 있어도 그의 효우의 천성은 따를 수 없다.>"고 하였다.
0살에 자당을 여의고 계모 제씨를 침모와 다름없이 섬겼는데 계모 제씨마져  돌아가기매
계모 소생 여동생 넷이 병이 되도록 울어 불쌍히 거두었다.
천자(天姿)가 화순주밀(和順周密)하였고 넓은 기량이 있어 치가(治家)하며 살림을
이루었는데 여유 있는 것은 종족을 위해 썼다. 일찍이 종형께서 가업에 실패하여
여러 종행(宗行)들과 규합하여 돈을 모아 축리(蓄利)하여 가대(家垈)와 전답을 회복
하여 드리고, 또 제위답(祭位沓)을 사서 소종가의 봉제사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였고
또 일가들에게도 성신(誠信)과 겸양으로 대하였으며, 더욱 연소자를  ㄱ5ㅣㅍ이 생각하여 재지(才志)의 고하와 살림의 유익(有益)을 막론하고 사랑으로 돌보니 종족들이 모두
화목하여 의탁하였다.
문집이 있고 1955년 을미보 족보 편찬에 도청(都廳)을 맡아 종사(宗事)에
성력(誠力)을 다하였다.(아천문집)
(주)최흥모(崔弘模):통덕랑공 최흥호의 후이고 문천재공(聞天齋公) 최명진(崔鳴鎭)의 손
 
ㅇ정모(禎模 24世)
일 휘는 맹주(孟柱)이며 자는 도민(道敏)이고 호는 춘호(春湖)이다.1892년에
출생하였는데 성행(性行)이 강직하여 종향이 외흠(畏欽)하였으며 재사(才思)가
영명하여 경사를 박섭(博涉)하였고 춘호유고 등 문집이 있다.
봉양재(鳳陽齋) 신축에 적극 참여하여 상량문을 지었으며 후진 교육을 위해 거처.출입.
의식(衣食),언어. 작업 등의 거가오잠(居家五箴)을 지어 치가(治家)하고 소학언해절요
(小學諺解節要)를 지어 출가 전 여식들에 수학케 하여부도(婦道)를 다하도록 하였다.
사적이 고성향교지에 실려있다.(최현락)
(주)최정모(崔禎模):통덕랑공 최흥호의 후이고 츤강공 최동태(崔東泰)의 손 
 
ㅇ정온(正蘊 24世)
자는 도삼(道三)이고 호는 고헌(顧軒)이다. 어려서 부터 총명하여 향리에서
칭송하였으며 서당에 나가 글을 배우니 동료 학생들 보다 언제니 우월하여 스승으로
부터 칭찬을 받았다. 장성해서는 종중에 출입하여 대소사에 관여하였으며 부산 수영
사적공원내에 의숙공 최강의 유허비문을 찬(撰)하고 수비(竪碑)하기도 하였다.
고성향교의 전교(典校)와 성균관 사성(司成)을 지내고 안렴사공 종회장을 지냈다.
(족보)
(주)최정온(崔正蘊): 의숙공 최강의 후이고 최재악공(崔載岳公)의 5세 손
 

 

ㅇ갑호(甲鎬 24世)
자는 여인(汝仁)이고 호는 가정(佳汀)이다.성품이 온화하고 건전하여 절약하고

  소박 근면하는 기풍을 지녔다.  시조 문성공 주덕재의 도유사(都有司)와 의민. 의숙

양 선조의 고성군 구만면 광덕리 소재 신도비 수호정비에 성력을 다하고, 중국 공자

묘역에서  "만대첨양(萬代瞻仰)" 의 4자(四字)를 탁본하여 신도비 역내에 큰 돌에

새겨  세우는 등  종사 전반에 대하여 위선승조의 치산사업과 목종돈친의 화합을

다지고, 소목(昭穆)과 상하 질서를 밝혀 문중의 손세번연(孫勢番衍)을 위해

헌신하였다.이런 종사의 참여와 봉사가 후손으로서 당연한 사명이자 도리로 여기고 전력을 쏟아 종향(宗鄕)의 존경과 칭송이 높았다. 부공(父公)이 일찍 상배하자 살림을 공에게

맡기니 젊은 나이에 넉넉지 못한 살림을 이어받아 어린 남매들의 진학과 성혼 그리고

자신의 자녀들 교육과 혼사가 잇달았으나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성취 시켰으니

그 우애와 자애에 향당이 모두 앙모 찬양 하였다.(한국성씨 보감)

(주)최갑호(崔甲鎬):찰방공 최진호의 후이고 평와공 최상가(崔祥可)의 현손

 

ㅇ빈호(斌鎬 24世)
자는 명중(明仲)이고 호는 석남(石南)이다. 도량이 단아하고 자상하였으며 식견이
정밀하고 밝았다.공은 일찍 선공을 여위었으나 어머니를 지성으로섬겼으며
모친상을 당하여 3년간 상복을 벗지 않았고 술과 고기를 멀리 하였다.
자녀 교육에는 솔선수범적 태도로 근검절약을 가르쳤으며 가난한 생활속에서도
유유자적하는 군자의 도를 잃지 않았다.(세헌록)
(주)최빈호(崔斌鎬):해정공 최수강의 후이고 홍와공 ㅊ최필형(崔必衡)의 증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