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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내 (Gaenea)
世德叢覽(全州崔氏 按廉使公 宗會)

주요인물(主要人物)-13)인물: 圭燁23世- 杜淳 23世-龜淳23世-鐘徹23世 [29]

by joolychoi 2012. 12. 4.

 

 

 

  

세덕총람 (世德叢覽)  
 
 
  8. 주요인물(主要人物)   

13) 인  물(人 物)-[29]   

ㅇ규엽(圭燁 23世)
일 후는 당순(淳)이고 자는 맹숙(孟淑)이며 호는 석남(石南)이다.
어려서 족숙 청계공 동익(東翼)에게 학문을 배웠고 또 이름난 선비들과 교류하며
견문을 넓혔다. 과거(科擧)는 학문의 길이 아니며 학문이란 실천할 수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라 하고 공부하여 엳은 것은 반드시 실천하였고 특히 인륜과
의로움을 독실히 닦았다.
아들 6형제중 둘은 아우와 사촌에게 양자를 보냈다. 숙부의 섬김도 부모와 같이
하였으며 홀로된 ㅈ제수를 정성껏 보살피기도 하였다. 자제들은 교육을 위하여
사숙(私塾)을 열고 지도하였으며 방에 도산 성학십도(陶山聖學十圖)를 걸어놓고
매일 자심을 반성하였다. 집뒤 무성한 숲, 그윽한 샘.기암괴석들이 있었는데 매년
봄과 가을에 친그들을 이곳에 초대하여 시와 여흥을 즐겼으며
유고가 있다(세헌록)
(주)최규엽(崔圭燁):의숙공 괴강의 후이고 최의악(崔義岳)공의 현손 

 
ㅇ두순(杜淳 23世)
공의 자는 봉조(奉助)이고 호는 인곡(仁谷)이며 통덕랑공 최흥호의 10세 손이다.
일찍이 보통학교를 3년만에 월반하여 졸업하고 경남공립사범학교 특과에서 수석
졸업한 후 소학교 교원 1종 시험에 합격하여 제2세 교육을 위해 초지일관 학생지도에
전력하였다. 공이 지니고 있는 청백리다운 강직성과 근면 성실한 성품에서 우러나온
교육철학은 공을 따르는 동료 및 후배 교육자들로 부터 전경의 대상이었으며 많은
제자들에게는 공의 훈화(薰化)에 힘입어 사회 각계각층에서 중추적인 역활을 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하겠다. 공은 부산 및 경남의 초, 중등 교육계 거목으로서 높이 평가
되는 귀감이 되고 있으며 경상남도 장학관과부산, 경남의 초, 중등 학교장을 두루
거쳤다. 부산중앙여중 교장때는 학생들의 학력신장 운영 공로로 홍조소성훈장을,
부산개성종고 교장과 개성중학교 교장때에는 국민포장을,부산중학교 교장때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부산배정고등학교 교장때에는 향토교육 문학상 부문의
눌원문화상(訥園文化賞)을 수상하였다.
 
1960년대 초 부터약 20년간 재부 종친회 회장을 맡아 초창기의 어려운 여건과 온갖
시련을 극복하면서 일가 찾기와 뿌리 찾기, 그리고 회원명부 발간등 조직의 활성화에
이바지 하였다. 더구나 종친회 지회를 각 구(區)마다 설치하여 숭조목종의 정신을
고취시켜 선산(先山) 참배와 시향(時享)참례를 정례화하고 운영위원회를 설치하여
종친회 운영에 묘를 기하였다. 그리고 시조 문성공 묘소 상석의 폭이 좁아 진설에
불편을 감안하여 종의(宗議)에 부쳐 종원들의 성력으로 대형 상석을 마련하기도
하였다.(전주최씨 언원지. 최현모)
 
ㅇ구순(龜淳 23世)
자는 우범(禹範)이고 호는 소갑(燒甲)이다. 공은 성품이 온후하여 사람을 대할때는
언제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고 집에서는 법도를 지켜 예에 어긋나는 일은 일체
하지 않았다.1892년 고종 28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오위(五衛)의
사과(司果正6品)을 지냈다.(최홍림)
(주)최구순(崔龜淳): 소연공 최게의 후이고 송파공 최필학(崔必鶴)의 손

 

ㅇ종철(鐘徹 23世)
자는 통숙(通淑)이고 호는 경재(敬齋)이다. 천품이 명석하고 서예에 유능
하였으며 법조계 권위자 였다. 대구로 이주하여 기독교 교세확장과 활성화에
헌신적인 노력을 경주하였다>(해평파보)
(주)최종철(崔鐘徹): 인재공 최현(崔晛)의 후이고 최운학(崔雲學)의 현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