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엔 당시 '건물 없는 교회'로 유명했던
'높은뜻숭의교회' 교인들이 쪽방촌에 자원봉사를 오며
인연을 맺었고, 2003년엔 이 교회 사회선교 담당 전도사로
'스카우트'됐다. 교회의 사회봉사 사역과 쪽방촌 사역을
함께 돌보는 '양다리' 생활이 시작됐다.
"예전엔 밥 퍼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했지만,
복지가 발달하면서 자활이 중요해졌어요.
'일자리를 줘야 한다, 그래야 희망을 갖는다'고 생각했죠
."노숙인 직업교육과 창업 지원을 시작했다.
분식점 대리점, 차 흠집 수리점을 세워 노숙인
출신 사장을 배출했다. 2004년에는 중구 자활후견기관
사업을 따내 쪽방촌 자활사업을 전문적으로 진행하기
시작했다.쪽방촌 주민 50여명이 그렇게 자활하는 걸 보며
교회도 김 목사의 노력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2007년엔 열매나눔재단이 만들어졌다. 탈북자 자립을
위한 공장 5개를 세웠고, 베트남과 말라위 등 제3세계에서
'빵을 나눠주는 게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구호개발사업도 진행 중이다. '쪽방촌의 대부(代父)'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가난과 쪽방촌 사역이
오늘의 그를 만든 것이다. 김 목사는 얼마 전 쪽방촌
생활 15년 경험을 담은 책 '역전 - 좁은길에서
만난 하나님'(두란노)을 펴냈다.
책 제목 '역전'은 쪽방촌 자활사업이 시작된
서울 '역전(驛前)'이기도 하고, 인생의 '역전(逆轉)'이기도 하다.
김 목사는 "친절과 도움이 '독(毒)'이 되지 않도록,
어디서 어떤 사역을 하든 자립과 자활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제가 '스펙'도 없고 물려받은 재산도 없지만,'가난'은
잘 알거든요. '어떻게 하면 가난한 이들이 쪽방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도움받고 사는 데
익숙해진 아프리카 빈민들이 자립할 수 있을까'
늘 아이디어가 넘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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