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개 내 (Gaenea)
와플클럽(wapleclub)

도시 한복판의 산사, 길상사(吉祥寺)

by joolychoi 2012. 11. 15.

 

 

 

 

 

 

도시 한복판의 산사, 길상사(吉祥寺)

 

 

안 갔으면 큰 후회를 할 뻔 하였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도시 한복판 산사의 가을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습니다.

 

성북동의 '길상사(吉祥寺)'입니다.

 

뒤쪽으로 오르는 삼각산 숲길은 흩어져 날리는 낙엽들로

 

 

가을이 짙어지고 있었습니다.

 

 

<길상사(吉祥寺)는 1987년 길상화(吉祥花-법명) 김영한님이 법정스님이

쓴 '무소유'를 읽고 감동하여 자신이 운영하던 음식점, '대원각'을 청정한

불도량으로 기증하기를 청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대지 7,000여 평과 지상

건물 40여 동으로 이루어져 1997년 대한 불교 조계종 송광사 말사 <대법사>

로 등록하였습니다.> -안내판 표지 참고-

 

 

 

1970~80년대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서울의 3대요정 중 하나인 대원각의

소유주였던 그녀.

1996년 고급요정이었던 대원각 부지 7000평을 법정스님에게 불도량으로

기증하고 사찰은 일년 뒤 완성되었는데, 그녀는 시주한 3년 뒤인 1999년

83세의 나이로 타계하였습니다.

 

 

대원각은 기부 당시 재산가치가 1000억 원대였다고 합니다.

"기부한 1000억이 아깝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1000억은 그 사람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고 그녀는 말했다고 합니다.

 

 

'자야(子夜)'라는 아호와 길상화(吉祥花)란 법명으로 유명한 공덕주

김영한 님.

재북 시인 백석(白石)도 함께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의 근대시인으로, 모더니즘풍의 세련된 언어감각을 바탕으로 토속적

이고 향토색 짙은 서정시들을 발표하여 현대 시문학사에 한 획을 그린 시

인, 백석을 온몸으로 사랑했던 여인이기 때문입니다.

 

온 가슴으로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알았던 그녀!

불자들의 신성한 불도량으로 내줘 다수의 사람들이 마음을 닦는 곳으로

쓰이게 하고, 자신은 빈손으로 귀천한 그녀!

그녀의 유해는 유언대로 화장해 한겨울 눈이 하얗게 쌓인 길상사 마당에

뿌려졌다고 합니다.

 

 

이 가을,

그래서 그곳은 더욱 불타듯 아름다운 곳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길상사 009.JPG

삼각산길상사 정문-

 

 

 

길상사 012.JPG

길상사 입구의 담넘으로 보이는 느티나무와 단풍나무

 

 

 

길상사 015.JPG

군데 군데 법정스님의 글을 걸어두어 행인들의 마음을 맑게해 주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수채화입니다.

 

 

 

길상사 021.JPG

 

 

숲에는 질서와 휴식이, 그리고 고요와 평화가 있다.

숲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안개와 구름, 달빛과 햇살을 받아들이고,

새와 짐승들에게는 깃들일 보금자리를 베풀어 준다.

숲은 거부하지 않는다.

자신을 할퀴는 폭풍우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법정스님 '서있는 사람들' 중에서-

 

 

 

길상사 013.JPG

 

 

 

길상사 014.JPG

입구에서 부터 두어 군데 감나무의 감들이 가을의 정취를 더해줍니다

 

 

 

길상사 085.JPG

극락전-

식구들과 이웃들과 친구들과 친지들과 모든 이들이 서로 사랑할 것을 빌었습니다.

 

 

 

 

길상사 079.JPG

 

 

 

 

길상사 025.JPG

극락전 앞의 보호수, 느티나무-

 

 

길상사 022.JPG

 

 

길상사 057.JPG

길상선원

 

 

 

길상사 016.JPG

길상사의 해우소, 정랑은 독특하게도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갈아신어야 출입할 수가 있었는데,

슬리퍼를 나란히 두고,'청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행동도 청정해야한다'는

 글귀가 신발을 저절로 벗게 하였습니다.

 

 

 

 

길상사 018.JPG

 

 

 

 

길상사 019.JPG

 

 

 

길상사 020.JPG

 

 

 

길상사 011.JPG

 

 

 

 

길상사 023.JPG

 

 

 

 

 

길상사 027.JPG

범종-

 

 

 

길상사 028.JPG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법정스님  '무소유' 중에서-

 

 

법정스님의 '무소유'에서 혹~ 이 글을 읽고 '길상화' 김영한 여사는 큰 감명을 받아

길상사 시주를 하였을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길상사 029.JPG

 

 

 

 

길상사 032.JPG

 

 

 

길상사 034.JPG

 

 

 

길상사 035.JPG

 

 

 

길상사 036.JPG

길상사 입구에 선 감나무-

이 감나무도 다 버렸습니다,

그 다음은 열매를... 

버린 잎은 다른 나무들을 위한 거름이 되겠지요.

열매는 새들에게 나눠 주고...

 

 

길상사 041.JPG

 

 

 

 

길상사 042.JPG

 

 

 

길상사 043.JPG

 

 

 

 

길상사 044.JPG

 

 

 

 

길상사 045.JPG

 

 

 

 

길상사 046.JPG

법정스님이 생전 거처하던 '불일암' 앞에도 주인을 잃은 빈의자가 쓸쓸하던데...

 

 

 

길상사 048.JPG

 

 

 

길상사 050.JPG

 

 

 

길상사 051.JPG

우리들은 말을 안 해서 후회되는 일 보다도

말을 해 버렸기 때문에

후회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법정스님-

 

 

그러고보니 말을 많이 한 날은 유독 마음이 허전하였습니다.

 

 

 

길상사 052.JPG

열흘이나 갈까요?

이 고운 나뭇잎들을 다 버리고 나무들은 벌거벗은 채 서 있겠지요.

 

 

 

길상사 066.JPG

 

 

 

길상사 053 - 복사본.JPG

 

 

 

 

길상사 054 - 복사본.JPG

 

 

 

길상사 055 - 복사본.JPG

 

 

 

 

길상사 056 - 복사본.JPG

 

 

길상사 058.JPG

 

 

길상사 059.JPG

 

 

 

 

길상사 062.JPG

 

 

 

길상사 066.JPG

 

 

 

길상사 067.JPG

 

 

 

길상사 069.JPG

 

 

 

길상사 070.JPG

 

 

 

길상사 071.JPG

옛 주인을 그리듯, '송월각'이란 요정이었을 때의 문패가 그대로 붙어 있습니다.

크고 작은 건물들이 수십 동이 있는데 그곳은 전부 스님들이나 불자들의 도량으로

쓰임에 따라 이름이 각기 달리 붙여져 있었습니다.

 

 

 

길상사 073.JPG

스님 숙소 앞의 문에 기어오르다 얼굴이 빨개진 담쟁이 네 잎-

 

 

 

길상사 076.JPG

법정스님의 필체-

이 액자는 어떤 작은 건물의 담밑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길상사 077.JPG

 

 

 

 

길상사 078.JPG

 

 

 

길상사 080 - 복사본.JPG

 

부처님과 동자승들-

 

 

길상사 081 - 복사본.JPG

 

 

 

길상사 084.JPG

 

 

길상사 087.JPG

 

 

 

 

길상사 088.JPG

 

 

길상사 089.JPG

 

 

 

길상사 090.JPG

 

 

 

 

길상사 091.JPG

길상사 불교대학-

 

 

 

길상사 092.JPG

이 불교대학에서 2주일에 한 번인가 템플스테이도 한다는 안내가 붙어 있습니다.

 

 

길상사 093.JPG

템플스테이 안내 표지판-

 

 

 

길상사 094.JPG

 

 

 

길상사 095.JPG

 

 

 

 

길상사 097.JPG

 

 

길상사 098.JPG

 

 

 

길상사 099.JPG

 

 

 

 

길상사 101.JPG

 

 

 

길상사 102.JPG

 

길상사(吉祥寺)는 1987년 길상화(吉祥花-법명) 김영한님이 법정스님이 쓴 '무소유'를 읽고 감동하여

 

자신이 운영하던 음식점, '대원각'을 청정한 불도량으로 기증하기를 청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대지

 

7,000여 평과 지상 건물 40여 동으로 이루어져 1997년 대한 불교 조계종 송광사 말사

<대법사>로 등록 하였습니다.

 

 

 

길상사 105.JPG

 

 

 

'백석(白石)과 자야(子夜)' 이야기

 

 

백석과 자야 김영한과의 운명적인 만남은 조선일보 퇴직 후 함흥 영생고보

영어교사로 재직하던 중에 이루어집니다.

 

"나는 시인 백석과 1936년 가을 함흥에서 만났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 내가 스물 둘이었다. 어느 우연한 자리였었는데, 그는

첫 대면인 나를 대뜸 자기 옆에 와서 앉으라고 했다. 그리곤 자기의 술잔을

꼭 나에게 건네었다. 속으로 나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지만, 그의 행동거지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자리가 파하고 헤어질 무렵, 그는

"오늘부터 당신은 이제 내 마누라요"하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의식은 거의 아득해지며 바닥 모를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듯

했다. 그것이 내 가슴 속에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는 애틋한 슬픔의 시작

이었다." -자야여사의 회고-

 

백석이 '자야(子夜)'라 부른 김영한(金英韓)은 관철동 반가(班家)에서 태어났

으나 가세가 몰락하자 조선 권번에 들어가 '진향(眞香)'이라는 기명을 받고 기생

이 됩니다.

 

그러나 평범한 기생은 아니었습니다. 정악계의 대부인 금하 하일규 선생에게 궁중

무와 여창가곡을 복원하는데 힘쓰면서 김진향이라는 기생 때 이름으로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도서출판 예음, 1993)을 펴냈습니다.

 

 

자야의 총명함은 조선어학회 회원이던 해관 신윤극 선생의 눈에 띄어 그의 주선

으로 1935년 일본 유학을 떠납니다. 이듬해 해관이 함흥교도소에 투옥되자 유학

을 포기하고 귀국, 함흥으로 가지만 면회가 이루어지지 않자 실력자와 접촉하기

위해 다시 권번에 들어가 기생 옷을 입습니다. 그때 마침 영생고보에 부임해 온

백석과 어느 연회 자리에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댄디보이

백석과 '문학기생 진향'은 운명을 직감합니다.

 

 

백석은 퇴근하면 으레히 진향의 하숙집으로 가 밤을 지샙니다.

 

어느날 백석은 진향이 사 온 <당시선집>을 뒤적이다가 이백(李白)의 시

'자야오가(子夜吳歌)'를 발견하고는 그에게 '자야'라는 아호를 지어줍니다.

 

'자야오가'는 장안(長安)에서 서역(西域)으로 수자리하러 간 낭군을 기다리는

여인 자야의 애절한 심정을 노래한 곡입니다.

 

 

하늘이 맺어준 여인에게 '자야'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은 백석이 자신이 두 사

람의 운명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나의 이 깊은 외로움도 그때 백석이 이 '자야'란 호를 나에게 붙여주었을 때

부터 이미 결정되고 마련된 운명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는 아직도 그의 원

정(遠征)이 끝나지 않아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자야 여사의 회고-

 

 

 

 

 

 

 

 

 

 

 

 

 

 

 

 

 

 

 

 

 

 

 

자야 김영한 여사의 젊을 때 사진-

 

정악계의 대부인 금하 하일규 선생에게 궁중

무와 여창가곡을 복원하는데 힘쓰던 시절의 김진향.(김영한).

 

 

그녀는 어느 돈많은 한량의 후실 자리를 거부하고 권번을

박차고 나와 백석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녀의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은 너무나 짧았습니다.

 

 

 

노년시절의 백석 시인 가족 사진(앞줄 오른쪽이 백석).-

남에는 정지용, 북에는 백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동안 남한에서는 백석이 1963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으나,

백석이 압록강변 삼수에서 농사일을 하다가 1996년 1월에 타계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김영한 여사가 타계한지 3년 전 사망한 셈입니다.

그녀는 이 사실을 모르고 귀천을 하였습니다.

 

 

 

젊은 시절의 백석(왼쪽)과 노년시절의 백석(1912~1996)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燒酒를 마신다

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출출이: 뱁새

* 마가리: 오막살이

* 고조곤히: 고요히, 조용히

 

 

서울로 간 아들이 기생과 동거한다는 소문을 들은 백석의 고향집에서는

그를 불러 결혼을 시켰습니다.

강제 결혼입니다.

그는 세 번째 도망길에 만주로 그녀와 함께 떠날 것을 원했으나 고향에서

결혼을 하고 온 그와 함께 떠나는 것을 거절합니다.

 

그는 만주로 홀연히 떠났습니다.

어떤 기별도 없이...

 

그리고 그 길이 자야와의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맙니다.

 

만주에서 백석은 여러 일에 종사하다가 해방 직전에는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소작 일을 하는 등 몹시도 고달픈 생활을 합니다.

일제가 패망하자 귀국, 신의주 변두리의 한 하숙방에서 잠시 묵게되는데

이때 시 한 수를 써서 서울의 친지에게 부칩니다.

이것이 남한에서 발표한 그의 마지막 시이자 오늘날 많은 시인들이 애송하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이란 유명한 시입니다.

 

 출처: 

Waple Life 현명한 사람들의 선택

와플(Waple)은 현명한 사람(Wise People)을 의미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