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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신동흔의 휴먼 카페] 서울로봇高 노태석 교장

by joolychoi 2012. 8. 20.

 

 
 
            [Why] [신동흔의 휴먼 카페] 서울로봇高 노태석 교장
            고교 졸업장 없이 30년간 기업가로 살았던 남자의 '교육학 개론'

            로봇은 학력으로 움직이지 않더라
            가난이 나를 강하게 키웠다_16세 소년, 중학교 졸업 뒤 플라스틱 사출

            공장 들어가 독심 품고 일하며 공부… 공무원 합격해 KT 부회장까지
            개방형 교장 공모? "해보자"_기업하며 느꼈던 産·學의 벽 내 손으로

            깨보자 생각했죠 미래의 도구는 다 로봇 아이들과 함께 꿈꾸고 싶다
            대학 가는 것이 더 손해일 수도_취업해 사회생활 경험한 뒤 대학 가도

            늦지 않아요돈 한푼이라도 직접 벌어봐야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니까…

            "고등학교도 안 나온 제가 어떻게 교장을 합니까."

            올해 초 로봇협회 관계자들로부터 서울로봇고등학교의 교장에

            지원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노태석(58)

            당시 KT 부회장 겸 KTIS 대표이사가 처음 보인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교육계 경험이 전무할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졸업 후 공장에서 일하다가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고, 대학은 회사 생활을 하며 방송통신대를 나왔다.

            하지만, KT 부사장일 때 한국지능로봇산업협회장을 맡는 등

            로봇 산업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많은 이들이 등을 떠밀었다.

            학교가 바뀌려면 교육계 경험이 없는 것이 더 좋다는

            그럴듯한 이야기도 더해졌다. 서울로봇고는 1994년 강남공고로

            설립돼 2005년 서울로봇고로 이름을 바꾼 특성화고교.

            작년 12월 로봇 분야 '마이스터고'로 지정되면서 개방형 교장 공모제를 실시,

            지난 3월 노 교장이 부임했다.30년간 KT에 몸담았던 기업인 출신 교장은

            6개월째로 접어든 교장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었다.

            지난 6일 찾아간 서울 일원동 서울로봇고등학교에서

            그는 방학 기간에 진행된 교장 연수를 마치고

            출근해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틈틈이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참가하는 학생들이 연습하고

            있는 훈련장을 찾아 격려했고, 교실문을 두꺼운 철제에서 투명한 유리로

            바꾸는 작업도 진행 중이었다.그는 교장 임기 첫해인 올해

            연봉 1억2000만원을 학교 발전 기금으로 기탁했다.

            초보 교장으로서 '배우는' 만큼 1년간 월급은 받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CEO에서 교장으로

                     

                    ―부임한 지 6개월이 지났는데 교장이라는 호칭에 익숙해졌나.

                     

                    "지금은 부회장이라는 말이 더 낯설다. 교장 선생님이라는 말이 참 좋다."

                     

                    ―왜 하필 로봇고등학교 교장에 지원했나.

                     

                    "은퇴 이후 기회가 있으면 로봇 산업 쪽에서 계속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로봇고 교장 제안을 받은 뒤 어차피 로봇 쪽 일을

                    하기로 했으니, 학교에서 로봇에 관련된 사람을 키우는 것도

                     좋은 길이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키운 애들과 나중에

                    산업 현장에서 동료로 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방인으로서 지난 6개월을 돌아보면….

                     

                    "교육계가 사회·경제·산업 시스템과 간격이 많이 벌어져 있다고 느꼈다.

                    그동안 산업이 관 주도에서 스스로 발전해가는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동안 학교는 정체돼 있었고 정부가 바뀔 때마다 혼선과

                    난맥상을 겪은 것 같다.

                     조직이나 문화가 폐쇄적이고 지나치게 동질적인 체제가 구축돼 있었다.

                     지금은 그 틀을 깨는 것이 어렵다. 뭔가 자극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개방형 교장 공모도 도입한 것 같다."

                     

                    ―행정실에 부서 및 팀별로 월별 과제 진척 상황을 그래프로

                    그려 붙여 놓은 것을 보았다. 기업 출신 교장으로서 어떤 변화를

                    추구하고 있나.

                     

                    "고객 만족과 책임 경영 등을 내걸었다.

                    학교의 고객은 학생과 학부모에 산업체까지 포함된다.

                    진정한 고객 만족은 학생의 인생을 개척하고 기업에 우수한 인재를

                     보내주는 것이다. 책임 경영은 학교도 목표를 세우고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교사들이 그냥

                    주어진 일만 문제없이 수행하면 직장이 보장돼 왔는데

                    그런 자세로는 안 된다."

                     

                    ◇학교가 싫었던 소년

                     

                    1970년 16세 소년 노태석은 대구의 한 플라스틱 사출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자기 키보다 큰 사출기 압력 레버를 당겨 틀에서 플라스틱병이나

                    바가지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아 아무리 당겨도

                    레버가 내려오지 않는 때가 많았다. 그는 "내가 처음 만난 세상은 힘겹게

                     당기던 그 압력 레버의 느낌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가난했던 시절 2남 2녀의 장남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당시 한 출판사에서 그가 상급 학교에진학하면 장학금까지 주기로

                     했지만, 그에게는 그마저도 사치였다.

                    노 교장은 "나는 학교 갈 돈이 아니라 먹고살 돈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검정고시로 고교 과정을 마치고, 이어 9급 공무원 시험,

                    기술고등고시 등을 거쳐 한국통신(KT의 전신)에서 일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박사를 받았다.

                     

                    ―장학금까지 확보했는데 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나.

                     

                    "경제적으로 힘들었고, 무엇보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산다는 것이 너무

                    답답했다.고등학교 안 간다고 했다가 중3 때 담임 선생님한테 엉덩이도

                    많이 맞았다. 그렇게 학교를 싫어했던 사람이 교장을 하게 됐으니

                    인생의 아이러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주어진 대로

                     하는 것을 못 견딘다.지금도 틀에 박힌 강의 이런 것들을 안 좋아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무엇을 했나.

                     

                    "공장에 다녔고, 우유 배달, 신문 배달, 닥치는 대로 했다.

                     학교에 오니까 실습용 선반이 있던데 요즘 아이들은 만지기 싫어하더라.

                    그래서 내가 '너희만 할 때 만져본 것은 일생 손에 감각이 남아 있다'고

                    한 적이 있다. 나 역시 플라스틱 사출기에 대롱대롱 매달리고

                    선반을 만졌던 감각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검정고시를 본 것은 생각이 바뀌어서였나.

                     

                    "친구들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 나는 공장에 다녔다.

                    그제야 '내가 여기서 뭐하나' 생각했다. 혹시 나중에 대학에 가야 할지도

                    모르니까 조금이라도 중학교 시절 공부한 것이 머리에 남아 있을 때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고졸 검정고시를 봤다. 아마 겨우 합격했을 것이다.
                    검정고시 붙고 나서는 대구 칠성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했다.

                    그러다가 자격 연한 최연소인 18세에 9급 공무원(행정직) 시험에 합격했다."

                     

                    ―1970년대 사회는 중학교 졸업장만 가진 젊은이에게

                    가혹한 사회였을 것 같은데.

                     

                    "그래도 지금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그때는 다 같이 가난했고 동료가 있었다."

                     

                    ―중학교만 나온 자식이 시장에서 장사하는 것을

                    부모님이 말리지 않았나.

                     

                    "그 정도의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요즘은 중학교 2학년이 질풍노도의 시기다.

                    힘든 사춘기를 겪었겠다.

                     

                    "못된 짓 하면서 청소년기를 지낸 것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내 진로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한국 남자들 고등학교 대학 군대까지

                     끝내고 20대 후반에 하는 고민을 나는 10대 중반부터 했던 것이다."

                     

                    ―공무원 생활에 안주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내 체질은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대학 나오면 공무원 시험 안 쳤다.
                    나는 우체국에 근무했다. 경제가 뜨면서 대학 졸업생들은

                     다 기업으로 갈 때였다. 그러면서 슬슬 나도 이제 대학을 가야 되나

                    이런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군대를 갔다."

                     

                    ―제대 후 기술고등고시에 합격했다. 시험의 달인인 것 같다.

                     

                    "학교 다닐 때 그렇게 공부를 잘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에는 능했다. 80년 통신사무관 발령을 받았다가

                    한국통신이 공기업으로 바뀌면서 공무원에서 신분이 바뀌었다."

                     

                     

                    ◇"취업을 먼저 경험하는 것도 훌륭한 자산"

                     

                     

                    ―최근 '대학 가는 것이 더 손해'라는 말까지 나왔다.

                     

                    "앞으로는 더 그럴 것이다. 작년만 해도 특성화고교 학생의 절반 정도가

                    대학에 진학했다. 특성화고 졸업생에게 대학에서 혜택을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취업하겠다는 학생이

                     점차 늘고 있다. 학교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군대 다녀온 뒤 대학에 가도 된다. 오히려 부모들이 사회적

                    지위 이런 것 때문에 고졸 취업에 자긍심을 못 느끼는 것이 문제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지 않은가.

                     

                    "학부모들이 내 이야기를 들을 때는 솔깃한데 집에 가서 옆집

                     아줌마랑 이야기하면 바로 '그래도 대학은 가야지' 이렇게 바뀐다."

                     

                    ―학생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하나.

                     

                    "아이들한테는 돈은 많이 못 벌어도 좋으니 회사 생활 최소한 1년만

                    경험해보라고 한다. 실제로 돈을 벌기 위해 일해봐야 아는 것들이 있다.

                    청소도 하고 산업 현장에서 풋내기로 겪은 어려움, 그때 경험하는 인간관계,

                    기술자와 초보자 간의 느낌, 이런 것이다. 내가 사출기 레버를 당기며

                     느꼈던 '이것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인데… 이것을 내가 이겨내야

                    하는구나' 하는 느낌이다. 그런 것은 누가 가르쳐줄 수 없다.

                    현장에 던져져야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 로봇고 학생들의 진로는 어떻게 됐나.

                  "졸업생의 60%가 취업하고 40%가 진학했다."

                  ―마이스터고가 되면 상황이 달라지나.

                  "마이스터고는 졸업 후 100% 취업한다. 대학 입학 원서는 써주지 않는다.

                  로봇에 대한 이론과 실기 현장 체험을 3년 동안 하는 것으로

                  교재 개발도 끝났다.

                  학급당 20명으로 소수 정예다. 기술을 빨리 익힐 수 있고,

                  산업체에서 일하면서 공부는 평생 학습 모드로 들어가게 된다.

                  이런 인생 프레임워크를 선택한 아이들만 들어오기 때문에 효율적이다."



                  ―통신업체에 근무하면서 로봇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아톰이나 태권V만 로봇이 아니다. 사람이 사용하는 도구는 앞으로 다

                  로봇이 된다. 회사의 사업 다각화 아이템으로 로봇을 잡고 관심을 가졌다.

                  정통부에서 실시한 국민로봇 프로젝트에 KT가 참여하면서 연을 맺게 됐다.

                  "―로봇은 기업에서 경험해봤겠지만 학교 폭력 같은 것은 다뤄본 적이 없지 않나.

                  "나는 엄격하게 룰을 적용한다는 원칙이다. 학생들은 자기 주도적으로

                  자기 인생을 개척하지만 규칙에 대해서는 엄정해야 한다."



                  ―규칙을 엄정하게 적용하는 이유는.

                  "체벌·기합 안 되는 것을 알고 선생님들 약을 올리는 애들도 있고,

                  심지가 약한 선생님들은 힘들어하기도 한다. 교사나 학생 모두 만족도가

                  떨어졌다.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지 않으면

                  회사에 가서도 룰을 지키지 못한다."



                  ―교장과 기업 임원의 차이는 무엇인가.

                  "기업은 본부가 됐든 부문이 됐든 목표가 똑같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목표가

                  똑같기 때문에 효율이 높다. 그런데 학교는 각각 바라보는

                  방향이 다를 수가 있다.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집단이 어울려서

                  간다는 것은 효율성이 굉장히 떨어지는 일이다."



                  ―학교라는 집단에서 효율성만 추구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선생님마다 교육관이 다르다. 학생 인권을 더 중시하는 분도 있고,

                  교권을 더 중시하는 분도 있다. 학부모도 다들 다르다.

                  학교는 서로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어떻게든

                  같이 가야 하는 곳이다."



                  ―30년 이상 기업에 있다가 교장이 됐는데 학생들에

                  대한 교육 철학도 다를 것 같다.

                  "기업에서는 결정되면 금방 시행이 되고 했는데 여기서는 결정이

                  되어도 당장 안 따라오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 기업식으로

                  하다가는 제풀에 지쳐 쓰러지겠더라. 우리 학교를 통해

                  한국 교육에 대한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내 목적을 다 실현한 것이라고 본다.

                  로봇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에게 비전을 주고 우리나라

                  교육계의 정책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출처:chosun.com:사회 
                  신동훈 기자 이메일dhshi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