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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법륜 스님과 최석호 법사

by joolychoi 2011. 12. 14.

 

 

 

 

사랑 가득 담으세요]
  [태평로] 법륜 스님과 최석호 법사 
 2011.12.08 23:14 

 

 

이선민 오피니언부

 

'안철수의 멘토'로 유명해진 법륜(58) 스님은 고등학교 1학년 때에

불가(佛家)에 입문(入門)했다. 경주에서 학교에 다닌 그는 분황사를

드나들다 그 곳에서 살게 됐다.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청소년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불교 교육을 벌이던 그는 1988년 불교

신행단체인 정토회(淨土會)를 만들면서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이후 환경운동단체인 한국불교환경교육원, 해외구호단체인

JTS,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재단을 잇달아

설립하며 활동범위를 넓혀 나갔다.

 

그는 국내외를 넘나드는 활발한 활동으로 막사이사이상·

만해상·포스코청암상 등을 받으면서 사회에 이름을 알렸다.

법륜스님은 10대 중반부터 절에서 생활했지만 승려가 되지는

않았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종단이 혼란스러우니 밖에서

활동하라는 은사의 말씀을 따랐다"고 했다. 그를 분황사 시절부터

지도한 문 스님은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이었던 용성 스님의

법맥(法脈)을 잇는 조계종의 원로이다. 오랫동안 불교계에서

'최석호 법사'란 속명(俗名)으로 불리던 그가 '법륜 스님'이

된 것은 1991년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머리를 깎은

이유에 대해 그는 "은사께서 이제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셨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조계종이 정한 승려가 되는

절차를 밟지 않아 승적(僧籍)은 갖고 있지 않다.

 

법륜 스님이 정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였다. 10년 넘게 북한 지원

활동에 힘을 기울여온 그는 2008년 5월 북한 동포들의 고통에

동참한다며 70일간 단식했다.그 후 그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다음 정권을 제대로 뽑아서 통일을 앞당겨야한다"

주장했다. 점차 현실정치에 대한 발언 수위를 높여가던 그는 지난

5월 시작한 청춘콘서트를 통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폭발적 인기를 확인하면서 본격적인 정치 행보에 나섰다.

 

법륜 스님의 이런 모습에 대한 불교계의 반응은 곤혹스러움이

었다. 그는 불교계에서는 '비승비속(非僧非俗)'으로 간주되지만

밖에서는 불교 승려가 정치에 깊이 관여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개신교 목사들이 정당을 만든다고 했을 때 반대 성명을 냈던

불교계로서는 난처한 상황이 된 것이다.

 

불교계의 한 인사는 "종교인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불교의 길이 아니다"며 "최근 법륜 스님의 언행은 아무래도

지나친 것 같다"고 말했다. 조계종의 한 중진 스님은

"승복을 입은 사람이 '정치의 달인(達人)'처럼 비치는

것을 많은 스님이 불편하게 생각한다"며 "정말 그가 정당을

주도한다면 종단 차원에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몇 달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던 법륜 스님의 정치 활동'은

안철수 원장이 신당 창당 의사가 없다고 밝히고,

법륜 스님이 "나를 '안철수의 멘토'라고 부르지 말라"고 한 데 이어

해외법회를 위해 출국하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법륜 스님의

현실정치에 대한 열정은 분명해졌고,그가 이끄는 조직들의 강한

결속력을 고려하면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다시 불이

붙을 수도 있다. 다만 그럴 경우 그 자신도 인정한 것처럼

승복(僧服)이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최석호 법사'로 20년, '법륜 스님'으로 20년을 살아온 그는 다시

'스님'과 '법사'의 갈림길에 서게 된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맞이하게 될 정치의 계절에 그는 어떤 상황에 놓이고,

어떤 선택을 할까.

 

출처: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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