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고산재(古山齎)
고산재(古山齋)
고성군 마암면 삼락리 고장산(古長山)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이 있는데 이름하여 욋골(外洞)이라 한다. 땅은 비옥하며
평평한 들은 오목 깊숙하여 농사짓기 좋고 바다가 깊숙이 들어와
살짝 감추어진 지형이다. 소호공 최균(崔均)의 증손인 처사공 최유중
(崔由重)이 구만 세장(九萬世庄)에서 이곳으로 옮겨 덕을 숭상하고
전원을 가꾸며 시끄러움을 마다하고 청렴하게 살아온 세월이 우금
200여 년이라 후손들은 근검하고 치산(治産)하여 아쉬움 없이
효제충신하며 마음의 선당을 중히 여겨 왔었다.후손중 최우열(崔又烈)
최만순(崔萬淳) 양공이 주축이 되어 성력을 모아 이곳에 처사공
(崔由重)의 재실을 지어 주산(主山)의 이름을 따라 고산재(古山齎)라하였다.
최만순공이 족형되는 중암공 최양섭(崔養燮)에게 청하여
기문을 지었는데『재실을 지어서 두고두고 조선(祖 先)을 흠모함은 비단
재력이 넉넉해도 어려운 일인데 지금 우열공(又烈公)과 만순공(萬淳公)이
주축이 되어 9세손 진호(進鎬)는 대지(垈地)를 희사하고 행랑 마당터를
7세손 우열공이 희사했으며 6세손 일본 거주 필옥(必玉)은 거액을
협찬하는 반면,욋골 종친은 가사에 어려움에도 몸소 협력하여 성사
시켰으니 공사가 끝날 때까지 다함께 협조한 공로와 감사는
후손들에게 길이 귀감이 될 젓이라.』고 하였다.(최양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