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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에 관대한 한국 사회

by joolychoi 2010. 5. 26.

 

 

성범죄에 관대한 한국 사회

성범죄에 관대한 한국 사회
서보희  sahili 님의 블로그 더보기
입력 : 2010.05.23 06:52

부자(父子)는 가해자, 모녀(母女)는 피해자였다.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같은 운명의 길을 걸어가는 모녀의 뒷모습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당시 28세였던 건강한 딸은 엄마를 성폭행해 자신을 임신시켰던 남자의 아들로부터 대를 이어 성폭행을 당하고 그 충격으로 정신질환을 앓다가 정신장애 2급이 되었다.


그런 아픈 딸에게 돈없고 힘없는 엄마가 해 줄 수 있은 것은 녹차 잎을 우려 녹차를 만들어 주는 것, 그리고 장애자인 딸을 대신하여 공소시효 만료 전에 증거불충분으로 4번이나 기각된 성폭행 사건을 재고소하는 것.


조선일보 인터넷 판 22일자 사회면 기사 «파렴치한 부자(父子)에 인생 빼앗긴 모녀(母女를 읽어면서 분노가 일었다. 믿어지지 않아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연쇄살인자의 인권도 미성년자 성폭행범의 인권도 존중해주는 나라에서 당연히 보호받아야 할 인권은 어떻게 그렇게 철저히 유린될 수 있었는지 현실이 참으로 참담스럽다.


정신장애는 심신장애와 동의의로 사물을 판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불완전한 상태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는다.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전혀 없는 상태의 성폭력 피해자를 후견인없이 가해자와 대면시키고 진술을 하게 했다는 사실은 한국의 검,경찰이 성범죄를 어떻게 대하고 있느냐는 현주소를 간접적으로 시사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이 모녀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좀 있었다면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었을 테고, 무료로 국선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더라면 그토록 힘든 과정을 거치지 않았어도 되었을 거라는 안타까움을 갖게 된다. 약자라서 피해를 당했고 가진 게 없어서 또 피해를 당하는 이중 고통을 과연 누가 보상해줄 수 있을 것인가?


상황은 좀 다르지만 나는 이 기사를 접하면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성범죄사건을 떠올렸다. 작년 9, 영화 «피아니스트로» 2002년 황금종려상, 2003년 오스카 감독상을 수상한 폴란스키 감독이 스위스에서 경찰에 체포되었다.


예술성이 얼마나 훌륭한지 거장이라는 명예를 이름 앞에 항상 달고 다니는 폴란스키 감독이 32년 전(1977), 미국 LA에서 저지른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으로 미국에서 발부된 31년짜리 구속영장(1978)의 효력의 발생에 따른 체포였다.


당시 폴란스키 감독은 13세 소녀에게 퀘일루드(Quaalude)라는 진정제를 샴페인에 타서 마시게 한 후, “No”라고 연신 거부하는 소녀에게 남색(男色)을 포함한 성폭행을 감행했다. 감독은 유죄를 인정하고 49일 구금되어 있다가 영국을 경유해 프랑스로 도망쳤다.


프랑스 국적을 갖고 있어서 프랑스 정부로부터 신변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고, 그 이후 30여년을 미국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지 않은 나라들을 자유롭게 들락거리며 작품활동을 했다. 일각에서는 그의 예술성과 예술계의 기여도, 피해자와의 조정 등을 이유로 사면을 요청하였지만 결국은 미국 검찰의 강력한 의지에 꺾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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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피아니스트로 칸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수상하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사진 Dagbladet)


현재 폴란스키 감독은 45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석방되었지만 전자발찌를 착용한 채 스위스의 한 별장에서 가택연금의 상태로 지내며 미국으로 인도되길 기다리고 있다. 감독은 이런저런 상황을 설정하면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그가 33년 전에 행했던 성폭행 사실은 결코 부인할 수 없다.


천재적인 예술성, 거장 영화감독, 든든한 배경(권력자들), 피해자와의 조정, 재력 그리고 77세의 고령...그 아무 것도 폴란스키 감독이 33년 전, 미성년자에게 행한 성범죄의 면죄부는될 수 없었다.


비록 폴란스키 감독의 일례는 죄질이 더 나쁜 경우지만 일반적으로 성범죄는 선진국가에서 아주 심각하고 신중하게 다뤄진다.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게는 법의 잣대는 더 엄해지고 반면에 피해자에겐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배려가 따라 주는 것이 선진국에서 성범죄를 다루는 기본적인 원리임을 나는 여러 사례를 통하여 확인하였다.


한국에서는 모녀(母女)가 대를 이어 한 통속의 부자(父子)에게서 성폭행을 당했다. 그로 인한 비극과 삶의 무게는 사회적 약자인 모녀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가혹하다. 모든 범죄가 그렇듯이 성범죄 또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에겐 불리하다. 이제 한 달 남은 공소시효 기간 내에 어머니는 검찰이 원하는 명백한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


딸은 3차례 성폭행을 당한 후, 바로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어머니는 그 사실을 6개월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는 유능한 정신과 전문의들이 많은데 딸이 당한 성폭행과 정신장애의 연관성을 밝혀 전문가의 입장에서 증인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면 성폭행을 확인시켜 줄 증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폴란스키 감독은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정계, 예술계로부터 정상참작, 사면을 해주자는 동정을 받았다. 돈없고 능력없는 한국의 엄마와 딸은 대를 이어 성폭행을 당하고도 DNA증거를 제 때 제시하지 못 해 피해자로서의 인정도 못 받고 있다. 증인의 진술도 인정되지 않았다. 한국의 법조항이 어떻게 되는지 자세히는 몰라도 결과를 보면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겐 법은 관대하고 피해자에겐 너무 인색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시대가 바뀌면서 선진국에선 어린이와 여성의 권익을 개선하는 차원에서 관련법을 개정하고 있다. 유럽의 한 법무무 장관은 이러한 법개정을 하면서 개정의 이유를 “현존하는 법은 남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남성을 위한 법으로 시대에 뒤떨어지기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우리 나라에도 이렇게 참신한 사고를 실천하는 정치가와 법조인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