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州崔氏 文成公(諱阿)系 分派圖 | |
始祖 문성공최아 (文成公崔阿) |
전주최씨 문성공계의 시조(始祖) 문성공(文成公)은 휘(諱)가 아(阿)이며 자(字)는 형지(衡之)이고 시호(諡號)는 문성공(文成公)이며 완산군(完山君)이라는 존호(尊號)를 받았다. 고려 충숙왕 때 문하시중을 지냈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태어나고 돌아가신 해 그리고 할머니에 대한 기록은 전해오지 않는다. |
2세1자안렴사공 최용생(按廉使公 崔龍生) |
전주최씨 문성공계 시조 문성공 최아의 큰아들로 휘(諱)는 용생(龍生)이다. 1350년 고려 조정에서 지평 벼슬을 하다가 경상도 안렴사가 되었다. 원나라 내시들과 연결된 간신(姦臣)들의 죄를 들추어 폭로하여 내시 주원지(朱元之)가 왕에게 참소하여 파직되어 경상도 사천으로 귀양을 갔다. |
안렴사공파.(按廉使公派) | |
2세2자대호군공 최용각(大護軍公 崔龍角) |
시조 문성공 최아의 둘째 아들로 휘는 용각(龍角)이며 1357년에 검교대호군이 되었다. 공은 어려서부터 문장에 뛰어나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벼슬이 시제 보문각 대제학에 오르고 무관으로도 검교대호군이 되었다고 완산지(完山誌)와 삼강록에 적혀있다. |
대호군공파.(大護軍公派) | |
2세3자판사공 최용갑(判事公 崔龍甲) |
전주최씨 문성공계 시조 문성공 최아의 셋째 아들이며 휘는 용갑(龍甲)이다. 소년등과로 진사시에 합격하고 1320년에 문과에 급제했으며 1323년 12월 안축, 조렴과 함께 원나라 빈공과에 급제하여 은병(銀甁) 50냥과 쌀 100석을 상으로 받았으며 벼슬이 이부상서, 판사, 삼중대광에 올랐다. |
판사공파.(判事公派) | |
2세4자중랑장공 최용봉(中郞將公 崔龍鳳) |
전주최씨 문성공계 시조 문성공 최아의 막내 넷째 아들로 휘는 용봉(龍鳳)이며 고려 충정왕 때 중랑장을 지냈다. |
중랑장공파.(中郞將公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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