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개 내 (Gaenea)
가족과 가정에 대하여

전주 최씨 문성공(文成公)게 분파도

by joolychoi 2007. 4. 2.

全州崔氏 文成公(諱阿)系 分派圖

始祖

문성공최아

(文成公崔阿)

전주최씨 문성공계의 시조(始祖) 문성공(文成公)은 휘(諱)가 아(阿)이며 자(字)는 형지(衡之)이고 시호(諡號)는 문성공(文成公)이며 완산군(完山君)이라는 존호(尊號)를 받았다.  고려 충숙왕 때 문하시중을 지냈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태어나고 돌아가신 해 그리고 할머니에 대한 기록은 전해오지 않는다.

2세1자안렴사공 

최용생(按廉使公 崔龍生)

전주최씨 문성공계 시조 문성공 최아의 큰아들로 휘(諱)는 용생(龍生)이다.  1350년 고려 조정에서 지평 벼슬을 하다가 경상도 안렴사가 되었다.   원나라 내시들과 연결된 간신(姦臣)들의 죄를 들추어 폭로하여 내시 주원지(朱元之)가 왕에게 참소하여 파직되어 경상도 사천으로 귀양을 갔다.

안렴사공파.(按廉使公派)
전주최씨 문성공계 2세 안렴사공 최용생의 후손.   주로 진주를 비롯한 경남 서부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작은아들 최전우(崔田雨)은 판도정랑을 지냈다.   경남 고성군 구만면 효락리의 약 200여 호를 비롯하여, 산청군, 하동군, 사천군, 통영군 그리고 경북 선산군 등지에 약 1,700여 호가 살고 있다.

2세2자대호군공 

최용각(大護軍公 崔龍角)

시조 문성공 최아의 둘째 아들로 휘는 용각(龍角)이며 1357년에 검교대호군이 되었다.  공은 어려서부터 문장에 뛰어나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벼슬이 시제 보문각 대제학에 오르고 무관으로도 검교대호군이 되었다고 완산지(完山誌)와 삼강록에 적혀있다.

대호군공파.(大護軍公派)
대호군공 최용각의 후손들.  큰아들 최옹(崔邕)은 판도서(版圖書), 둘째 아들 최철(崔哲)은 판도전서(版圖典書), 셋째 아들은 최경(崔瓊), 넷째 아들은 최수(崔粹)이다. 전라북도 김제, 완주, 익산, 남원, 임실 등지에 약 900여 호가 살고 있다.

2세3자판사공 

최용갑(判事公 崔龍甲)

전주최씨 문성공계 시조 문성공 최아의 셋째 아들이며 휘는 용갑(龍甲)이다.   소년등과로 진사시에 합격하고 1320년에 문과에 급제했으며 1323년 12월 안축, 조렴과 함께 원나라 빈공과에 급제하여 은병(銀甁) 50냥과 쌀 100석을 상으로 받았으며 벼슬이 이부상서, 판사, 삼중대광에 올랐다.

판사공파.(判事公派)
전주최씨 문성공계 2세 판사공 최용갑의 후손들.   큰아들 최영(崔濚)은 한림학사, 둘째아들 최복생(崔福生)은 부정(副正)을 지냈다.  후손 죽헌 최활은 부모가 돌아가신 후 여막에서 산소를 지킬 때 호랑이와 표범이 지켜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북 무주군 무풍면에 전해오고 그 여막 터가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   큰아들 최영의 후손이 대구시 수성구 범몰동에 약 100여호, 둘째 아들 최복생의 후손이 전북 무주군 무풍면 철목동에 약 100여호 등이 살고 있다.

2세4자중랑장공

최용봉(中郞將公 崔龍鳳)

전주최씨 문성공계 시조 문성공 최아의 막내 넷째 아들로 휘는 용봉(龍鳳)이며 고려 충정왕 때 중랑장을 지냈다.

중랑장공파.(中郞將公派)
전주최씨 문성공계 2세 중랑장공 최용봉의 후손들.   아들을 많이 낳았으나 후손은 사온동정공 최을인의 후손과 한성공 최의의 후손들만으로 사온동정공의 후손은 송애공파, 송파공파, 소윤공파, 연촌공파가 있고 한성공의 후손을 한성공파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