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州崔氏 文成公子孫의 系譜圖
文 成 公 崔 阿(문성공 최아)
중랑장공 최용봉 판사공 최용갑 대호군공 최용각 안렴사공 최용생 중랑장공파 판사공파 대호군공파 안렴사공파
2세 3세 4세 5세 6세 7세
최용생(龍生) 최전우(田雨) 최담(潭) 최사필(斯必) 최자경(子涇) 최수지(水智)
★ ***************** ★ 大護軍公派 (대호군공파) ★ ******************* ★
2세 3세 4세 5세 6세 7세
최용각(龍角) 최 옹(邕) 최 반(盤) 최량맹(良孟) 최자문(自汶) 최자유(自洧) 최학전(學全) 최계량(季良) 최 철(哲) 최광제(光濟) 최중소(仲紹) 최득우(得雨) 최진손(震孫) 최균우(均雨) 최갑손(甲孫) 최린손(鱗孫) 최윤우(潤雨) 최 치(淄) 최치우(致雨) 최 진(津) 최흥우(興雨) 최계노(季魯) 최자진(自進) 최인한(仁漢) 최화수(和粹) 최화후(和厚) 최화중(和重) 최의한(義漢) 최 징 (澄) 최예한(禮漢) 최화미(和美) 최 경(瓊) 최 수(粹) 壻 최원지(元之:화순최씨 시조)
★ ***************** ★ 判事公派 (판사공파) ★ ***************** ★
2세 3세 4세 5세 6세 7세
최용갑(龍甲) 최 영(濚) 최종수(宗守) 최의지(義之) 최의수(聃壽) 최중좌(仲佐) 최복생(福生) 최온지(溫之) 최희현(希賢) 최연조(戀祖) 최연석(連石)
★ ***************** ★ 中郞將公派 (중랑장공파) ★ ***************** ★
2세 3세 4세 5세 6세 7세
최용봉(龍鳳) 최을인(乙仁) 최 담(潭 ) 최광지(匡之) 최생명(生明) 최수손(秀孫) 최직지(直之) 최성명(誠明) 최 해(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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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렴사공파, 대호군공파, 판사공파, 중랑장공파 등을 대파(大派)라고 부르고 대파 안(內)에서 다시 중파(中派) 그리고 중파 안에서 다시 소파(小派)가 나누어진다.
* 본인이 무슨 파(派)라고 말 할 때 보통 가문(家門)이 번성(繁盛)하여 후손이 많은 경우 중파나 소파를 그렇지 못한 경우 대파를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파는 대개 족보 작성 때만 사용되고 중파를 본인의 파라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중파의 한 예로서 중랑장공파 안(內)에서 나누어 진 중파를 살펴보면 3세 한성공 최의(漢城公 崔<立義>)를 파조(派祖)로 하는 한성공파
☞ 按廉使公 崔龍生(안렴사공 최용생) ****************************************
전주최씨 문성공계 시조 문성공의 큰아들로 휘(諱)는 龍生이다. 1350년 고려 조정에서 지평 벼슬을 하다가 경상도 안렴사가 되었다. 원나라 내시들과 연결된 간신姦臣(간신)들의 죄를 들추어 폭로하여 내시 朱元之(주원지)가 왕에게 참소하여 파직되어 경상도 사천으로 귀양을 갔다.
按廉使公派(안렴사공파)
전주최씨 문성공계 2세 안렴사공 최용생의 후손. 주로 진주를 비롯한 경남 서부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작은아들 崔田雨(최전우)은 판도정랑을 지냈다. 경남 고성군 구만면 효락리의 약 200여 호를 비롯하여, 산청군, 하동군, 사천군, 통영군 그리고 경북 선산군 등지에 약 1,700여 호가 살고 있다.
☞ 大護軍公 崔龍角(대호군공 최용각) ****************************************
시조 문성공의 둘째 아들로 휘는 龍角이며 1357년에 검교대호군이 되었다. 공은 어려서부터 문장에 뛰어나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벼슬이 시제 보문각 대제학에 오르고 무관으로도 검교대호군이 되었다고 完山誌(완산지)와 삼강록에 적혀있다.
★ 大護軍公派(대호군공파)
대호군공 최용각의 후손들. 큰아들 崔邕(옹)은 版圖典書(판도전서), 둘째 아들 崔哲(철)은 版圖判書(판도판서), 셋째 아들은 崔瓊(경), 넷째 아들은 崔粹(수)이다. 전라북도 김제, 완주, 익산, 남원, 임실 등지에 약 900여 호가 살고 있다.
☞ 判事公 崔龍甲(판사공 최용갑) ********************************************
전주최씨 문성공계 시조 문성공의 셋째 아들이며 휘는 龍甲(용갑)이다. 소년등과로 진사시에 합격하고 1320년에 문과에 급제했으며 1323년 12월 안축, 조렴과 함께 원나라 빈공과에 급제하여 銀甁(은병) 50냥과 쌀 100석을 상으로 받았으며 벼슬이 이부상서, 판사, 삼중대광에 올랐다.
★ 判事公派(판사공파)
전주최씨 문성공계 2세 판사공 최용갑의 후손들. 큰아들 최영(崔濚)은 한림학사, 둘째아들 최복생(崔福生)은 부정(副正)을 지냈다. 후손 죽헌 최활은 부모가 돌아가신 후 여막에서 산소를 지킬 때 호랑이와 표범이 지켜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북 무주군 무풍면에 전해오고 그 여막 터가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 큰아들 최영의 후손이 대구시 수성구 범몰동에 약 100여호, 둘째 아들 최복생의 후손이 전북 무주군 무풍면 철목동에 약 100여호 등이 살고 있다.
전주최씨 문성공계 시조 문성공의 막내 넷째 아들로 휘는 龍鳳이며 고려 충정왕 때 중랑장을 지냈다.
中郞將公派(중랑장공파)
전주최씨 문성공계 2세 중랑장공 최용봉의 후손들. 아들을 많이 낳았으나 후손은 사온동정공 최을인의 후손과 한성공 최의의 후손들만으로 사온 동정공의 후손은 송애공파, 송파공파, 소윤공파, 연촌공파가 있고 한성공의 후손을 한성공파 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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