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 맞고 수혈 받으면서 엄마가 잠들었다. 잠든 엄마 손 잡고 물끄러미 엄마 얼굴과 손 바라보는 데, 그런 부모님 모습 보고 어떤 자식인들 마음이 아프지 않을까? 너무도 많은 세월의 흔적이 하나씩 하나씩 내 가슴으로 밀려올 때마다 마음이 아렸다. 잠든 엄마 간지럽혀 깰까봐 엄마 얼굴에 내려 온 머리카락 하나를 쓸어 올리려는 데 엄마가 잠에서 깼다. 한참을 있다가 엄마 손 잡으며 “엄마도 많이 늙었네.” 했더니 엄마가 그냥 웃으셨다.
엄마 손이 많이 꺼끌꺼끌 했다. 내가 엄마 손 문지를 때마다 살 없는 엄마 손은 내 손을 따라 위 아래로 힘없이 따라 움직였다. 고단한 농사일과 자식들에게 부담주지 않으려 용돈이라도 마련할 셈으로 까고 있는 마늘의 독한 기운 탓에 손은 갈라지고 손 톱 밑은 온통 검었다. 엄마에게 많이 죄송했다.
생각해 보니 엄마는 지금껏 당신의 삶을 살으신 적이 없다. 늘 자식과 아버지가 먼저였다. 병원에 누워 계시면서도 자식 굶을까봐 당신 드시는 병원 밥 반만 드시고 자식 먹으라 남겨주시던 엄마. 엄마라는 존재는 늘 이렇게 주기만 하셨다.
내 기억속에 엄마는 늘 강한 존재였다. 오랜 세월 지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 대신 힘든 농사일을 하셨고, 그 힘듦 속에서도 아프다는 말씀 한 마디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난 지금까지 엄마는 늙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을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엄마 그대로 엄마가 늘 그 자리에 계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엄마를 사람들이 자꾸만 할머니라고 불렀다. 의사도 간호사도 병실에 같이 입원해 있던 분들도 엄마를 자꾸만 할머니라고 불렀다.
'왜 엄마를 자꾸만 할머니라고 부르지?' 듣는 난 할머니라는 말이 영 낯설고 이상하기만 했다. 병실 침대에 붙어 있는 74라는 숫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연세를 보면 분명 우리 엄마는 할머니였다. 하지만 난 단 한번도 내 마음속에서 엄마를 할머니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간혹 허리를 펴지 못하는 엄마의 굽은 허리를 보면서 ‘늙으셨구나!’하는 생각이 든 적은 있었지만 내 마음속에서 엄마가 할머니라고 생각이 든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사람들이 우리 엄마를 자꾸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정말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진짜 할머니인가?’ 하고 잠든 엄마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정말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검은 머릿속에 흰 머리가 그리도 많은 줄 정말이지 몰랐다. 엄마는 그냥 엄마인 줄 알았는데, 엄마가 정말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이 땅의 모든 엄마가 그러하듯, 아파도 아프다는 소리 한 번 안 하시고 그 긴 세월 자식과 남편을 위해 희생만 하신 엄마. 나에게는 영원히 그냥 엄마로 남아있을 줄 알았던 그 엄마가 어느 덧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할머니가 된 엄마. 내색하지 않아 늘 강한 줄만 알았던 엄마가, 그 긴 세월 자식들을 위해 사신 엄마가 이제는 할머니란다. 그리고 할머니가 된 엄마가 내 앞에 이렇게 환자복을 입고 누워 계신다. 자주 간다고는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아프고 난 뒤에야 엄마 주름진 얼굴과 마른 손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니, 후회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기다려주지 않는 부모님 세월 앞에서 후회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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